혼자서 버스를 타는 일

by 코알라

나는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다니던 학교가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학교가 그리 많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학교가 적어서 한 학급당 인원수가 5,60명은 족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버스요금은 50원이었다. 그 5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버스 타는 일 말고도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양한 군것질거리들이었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굉장히 힘들었고 덕분에 버스를 타고 다녔던 날보다 걸어서 등하교했던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 1시간 정도 걸리는 친가에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간 적이 있었다. 그날은 제삿날이었는데 나는 학교가 끝나고 가야 해서 엄마가 혼자서 와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필 장시간의 버스 탑승에 졸음이 쏟아져서 내려야 할 정거장을 한정거장 정도 더 지나쳐버리게 되었다. 비록 한 정거장 차이이지만 아주 어렸던 터라 주변이 낯설어 혼란스러웠지만 다행히 할머니 집 전화번호를 기억해 주변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집안 어른들과 무사히 연락이 닿아 안전하게 친가에 도착했다. 나는 어른들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보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가면서 책임감이 막중했는데, 동생이 무서워할까 봐 무서워도 울지도 못하고 동생을 달래느라 두려운 마음을 꾹꾹 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고, 제법 먼 거리도 혼자서 잘 찾아다니는 아이가 되었다. 이 날의 기억은 어릴 때 기억 중 아찔하면서도 스스로 대견했던 기억 중 하나이다.



나는 아이가 혼자서도 버스를 잘 타고 다니길 원했다. 학원에 가든, 친구를 만나든 원하는 목적지마다 내가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혼자서 버스를 타는 연습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았던 시골 마을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녔다. 비록 두 노선의 버스가 운행이 되지만 운행 노선도 비슷하고, 시간대도 다양하지 않아 시간표를 항상 갖고 다니며 버스 시간을 잘 맞춰서 다녀야 마을로 오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바쁜 어른들은 주로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바쁜 어른들 속에서 아이들도 덩달아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느라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조차도 버스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지만 나는 내 아이가 버스를 타고 다니길 원했고 아이는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약간은 난이도가 있는 버스 탑승이었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아이도 스스로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처음 피아노 학원이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드디어 생각으로만 했던 아이 혼자 버스 타보기를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학원을 찾아서 갈 수 있도록 버스시간표를 알려주었다. 아이는 별로 두려운 기색 없이 알겠노라 하며 매우 당당했는데 엄마랑 자주 타보았던 버스라 뭐 어렵겠는가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당시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아이 혼자 집에서 버스를 타고 나와 학원을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아이가 학원에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가서 나는 시종일관 문자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아이가 학원에 도착하면 그 아이 앞으로 등록된 전화번호로 문자가 가는 알림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문자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도착했는데 시스템 오류로 문자가 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학원에 전화를 해보았다. 학원에서는 아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아이가 도착하면 알려주겠다며 일단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당시 아이는 전화기가 없었기에 아이와 연락이 닿을 방도는 없었다. 걱정은 커져 갔지만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좀 더 기다려보다가 아이의 소식이 닿지 않으면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학원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는 무사한 지 알아보기 위해 즉시 전화를 걸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써가며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버스 방향을 잘못 알아서 반대로 가버렸어.”

하며, 아이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어떻게 왔어?”

“그냥 종점까지 가서 기다렸다가 다시 타고 나왔는데?”


아! 나는 낮게 탄식했다. 굉장히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아이는 닥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버스 종점은 다행히 집에서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되었다. 차 안에서 언제 내려야 할지 고민할 새도 없이 잘못탄 것을 인지할 즈음에 마침 종점에 다다랐을 것이다. 아이가 무사히 도착해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니 아이의 실수가 어이없고, 또 그런 실수를 당황해하지 않고 태연하게 해결한 아이의 모습에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일을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답게 잘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일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아이는 내 걱정보다 훨씬 믿음직스럽게 그런 일들을 잘 헤쳐나갔었다. 또 한 가지 일화가 생각이 난다. 아이랑 가끔씩 지역에 작은 도서관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참여하는 일이 있었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아침 일찍 시작하는 프로그램이어서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며 겸사겸사 아이 아빠에게 그날 일정을 설명해주고 아이를 잘 데려다주도록 알려주었다. 그런데 프로그램 일정을 내가 잘못 알고서는 한 시간이나 일찍 아이를 데려다준 것이었다. 아이의 아빠는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도서관 앞에 아이만 내려주고 자신의 볼 일을 보러 가 버렸다. 아이는 혼자서 도서관에 들어가려다가 도서관이 열려 있지 않아 한 시간이나 혼자서 서있어야 했었다. 나는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받으니 익숙한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도서관 문이 아직 안 열려있어.”

“뭐? 그런데 이건 누구 전화야?”

“도서관 밑에 슈퍼 사장님 전화야.”


아이가 도서관을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사장님이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아이는 슈퍼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았고, 사장님은 흔쾌히 전화 통화를 허락해주셨다. 이렇게 아이와 통화 후 도서관 관계자에게 사정을 알려 아이가 도서관에 일찍 들어갈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그날의 도서관 프로그램을 매우 즐겁게 참여하고 주말 동안 아빠와 즐겁게 지낸 후 집에 돌아왔다. 물론, 그날의 일로 아이 아빠와 싸웠던 일은 아직 아이도 모르는 일이다. (시간을 잘못 안 것은 내 잘못이지만, 아이가 안전하게 도서관에 들어가 지도 선생님을 만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일러주어야만 했다.)

그날의 일 뿐만 아니라 아이는 자신의 핸드폰이 없어도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주변의 어른들에게 전화를 사용해도 되는지 씩씩하게 물어보는 편이었고, 나는 낯선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아이를 혼자 세상에 내놓는 일은 매우 불안하다.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며 걱정은 걱정을 낳기도 한다. 우리 아이는 어쩌면 좋은 어른들을 잘 만났을 수도 있다. 만에 하나라도 나쁜 마음을 먹은 어른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매우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여긴다. 동시에 곤란한 일을 겪게 되면 주변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곧장 생각해내는 우리 아이가 참으로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은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좋은 지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에 아이가 항상 함께하도록 했다. 주변이 신뢰할만한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경험하고 자란 아이는 조금씩 세상에 스스로 나서면서 주변의 모든 어른이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용감하게 그들을 만나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좋은 어른으로 살아야 했고, 아이는 그 덕분에 더욱 세상을 믿으며 단단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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