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들의 큰 고민은 방학일 것이다. 방학이라고 아이들은 쉬지만 부모들은 쉬지 않으니 말이다. 아이들을 혼자서 하루 종일 집에 두는 것도 찜찜하고, 그렇다고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리는 것도 쉽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학 동안 혼자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야 하는 아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이 많았다. 1, 2학년 때는 학교에서 돌봄 교실을 하며 방학 동안 돌봐주기도 했는데 고학년이 되니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방학 동안 아이가 부족했던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건 애당초 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친구들과 신나게 놀아야 할 방학 기간에 친구들을 만나기가 더 힘들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학이 되면 아이와 방학 계획을 짰다. 엄마 없이 아이 혼자 하루종일 무얼 할 것인지, 무얼 먹을 것인지 함께 계획을 짜고 있다보면 내가 방학을 맞은 것처럼 같이 설레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방학이 되면 가장 첫 번째로 했던 일은 아이와 점심 식단을 짜는 일이었다. 점심을 아이가 스스로 해 먹을 수 있을 만한 식단으로 구성해서 나는 밑 작업만 조금 준비해주고 가면 아이가 알아서 해 먹도록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잔치국수를 해 먹기로 하는 날에는 내가 육수만 미리 끓여주고 가면 아이가 국수를 삶아 함께 먹으면 되게 해주는 식이었다. 시중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레토르트 식품들도 많아 스파게티나, 만두 같은 것들도 해 먹을 수 있었지만 재료를 썰고, 기름에 볶아 제법 요리다운 요리를 해보기도 했다. 메뉴 구성면에서 보면 매일 메뉴가 겹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때 해보았던 요리 경험이 -사춘기가 되면서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면서는 아예 요리에 손도 대지 않고 살았음에도- 가끔 무언가를 만들어 먹어 보겠다고 하는 시도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매년 엄마 생일이면 끓여주는 미역국이라든가, 가끔 빵을 만들어보겠다고 온 부엌을 헤집어놓는 일까지 해보자고 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결과물도 그 정도면 만족스럽다 싶게 만들어냈는데, 아이에게 요리 경험을 갖게 해주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인 듯 하다.
방학 동안 아이가 해야 했던 일은 요리만이 아니었다. 매 방학 때마다 아이는 엄마가 내주는 한 달간의 프로젝트 숙제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수작업 공예였다. 바느질, 뜨개질, 심지어는 목공일까지 다양한 숙제를 내주었다. 처음엔 아이가 어려서 수작업이 미숙했을 때는 코바늘 뜨개질로 기본 작업부터 시작해다. 이후 대바늘 뜨기, 바느질, 수놓기, 수놓은 천으로 파우치 만들기처럼 다양한 바느질 작업을 경험해보게 했다. 목공 활동도 아이가 해보면 좋을 것 같아 근처 나무 공방에 가서 아이가 작업할 만큼의 크기의 목재들을 구해 가져다주었는데 방학이 끝날 즈음에는 튼튼한 나무 상자가 완성되어 있기도 했다. 가끔 직장에서 일하다가 아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전화를 해보면 아이는 하루 종일 톱질하느라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사포질은 그만하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다고 하면서도 다음날이면 또 그렇게 집중해서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며 속으로 뿌듯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했던 목도리며 파우치, 나무상자는 아직도 아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다.
몇 주 전, 아이가 집에 와서는 개구리 인형 한 마리를 보여주며 자신이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청소년 동아리 지원사업에 공모해 또래 아이들 몇 명을 모아 뜨개동아리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한 작업이라고 했다. 개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조금 징그럽지 않냐고 하는데, 나는 열쇠고리처럼 매달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꽤 맘에 들었다. 그전부터 아이는 어버이날 카네이션이나 아이팟 케이스를 코바늘 뜨기로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팔아보겠다고 주변 아이들에게 선물처럼 돌리기도 하고는 했다. 이렇게 만든 작품들을 끊임없이 ‘얼마에 팔지?’라는 즐거운 고민들을 하는데, 사실 노력 값과 재료값을 포함해서 가격을 매기자면 아주 큰 적자가 날 장사라는 걸 알고 아쉬운 마음을 매번 접는다. 어쨌든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주저 없이 도전하는데, 몸을 움직여 여러 활동을 해보았던 경험들이 분명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살면서 직접 맞닥뜨려 행동에 나서야 하는 모든 일들에 두려움 없이 나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문득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나. 그날도 방학 어느 날이었는데, 그 전날 나는 교사회의를 하느라 늦게서야 집에 들어갔다. 아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있어 계속 아이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순간 마침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아침에 하기로 한 것 다 했는데 치킨 먹어도 돼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에 갑자기 울컥했다. 그 치킨이라는 것이 어제 늦게까지 회의하느라 교사들이 시켜 먹고 남은 것인데, 딸 갖다 주라며 나머지 교사들이 내게 싸준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며 아이에게 아침에 하기로 한 것 다 하고 나면 먹어도 된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나였다면 그 치킨이 눈앞에 아른거려 엄마랑 했던 약속 따윈 잊고 '설마 엄마가 알겠어?' 치부한 채로 당장에 먹어버렸을 텐데 아이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할 일을 다해놓고 그마저도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먹겠다고 전화까지 했던 것이다. 그 식어빠져 맛도 없을 치킨이 뭐라고 아이는 그 치킨을 먹기 위해 엄마와의 약속을 찰떡같이 지켜내었으니 짠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라 아이에게 칭찬을 한 바가지 쏟아부어줬던 것이 생각이 난다.
방학은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이다. 엄마가 없는 시간에, 학교 선생님이 없는 시간에 아이는 오롯이 혼자서 그 시간을 꾸려야 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굉장히 유의미한 시간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러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느라 하루, 이틀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요리면 요리, 숙제면 숙제 어느 것 하나 게을리하지 않고 즐겁게 해낸 아이가 고맙고 사랑스러웠던 나날들이 가끔 그립게 생각이 난다. 내게도 아이에게도 방학은 분명 성장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