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대안학교를 선택해 청소년기의 남은 3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학교를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인데 그 학교가 처음 인가를 받고 학생을 받던 때였었다. 주변에 자신의 아이를 그 학교를 보내는 사람이 있어 알게 되었다. 가끔 그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재밌게도 사네.' 할 정도로 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언젠가는 내 아이도 그 학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이에게도 은연중에 자꾸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 학교의 다양한 매력 중에서도 가장 끌렸던 점은 '지구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 나라의 유명한 여행지에 가서 구경하고 오는 단순한 해외여행과 선을 긋기 위해서 그런 작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해외여행이라고 하는 것보다 지구여행이라는 단어가 내게도 더 끌리는 단어였다.
아이가 다닌 학교는 도시에 있는 아주 작은 문화예술 대안학교였다. 특별히 아이들의 문화적 소양이나 예술적 소양을 기술적으로 쌓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들의 생활과 다양한 배움의 내용이 지향하는 바가 그것과 닿아있을 뿐이다. 학교는 1년 제로 운영되고 있고 학기마다 각각의 담당 선생님들이 준비한 프로젝트 수업에 아이들이 선택해서 들어가게 된다. 주로 글쓰기반, 음악 프로젝트반, 여행반 등이 있다. 각각의 반이 가지고 있는 목표가 있지만 1년 내내 그것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이 있으면 신청해서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의 요구사항은 매우 다양해서 요리부터 페미니즘(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고 있다는 뜻)까지 다양한 내용의 수업을 신청한다. 심지어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해(비인가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졸업을 해도 학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검정고시반이 마련될 때도 있었다. 내 딸아이는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주로 음악 프로젝트반에 들어가고, 신청하는 수업도 음악 수업이 주를 이루었는데, 선생님들은 아이가 편향된 배움에 빠지지 않게 여러 수업들을 추천해서 다양한 관심사를 갖도록 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아이의 의지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어서 언젠가는 영어수업을 신청했다가 한 학기 내내 수업시간에 졸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고 2년째 되는 해에 지구여행반이 모집되었다. 지구여행은 특별히 담당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로 나가자니 경험이 매우 중요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그 선생님이 해외여행을 매우 좋아하셔서 그랬을 수도 있다. 예전엔 아이들과 매년 가기도 했다는데 여행을 준비하고 갔다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최근 들어 2년에 한 번 가는 것으로 바꿨다고 했다. 직접 아이가 지구여행을 준비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행을 준비하고 직접 여행을 떠나 현지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선생님 혼자서 짜는 계획도 아니고, 준비모임 또한 몇 번의 모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년 내내 아이들은 선생님과 여행에 대해 치열하게 계획하고 준비했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고단한 일이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선생님을 보며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지구여행은 최대 인원 5명을 채우고 시작한다. 선생님이 낯선 곳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기 위해 가장 최적의 인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 채워지지 않을 때도 있고, 최대 인원을 넘길 때도 있었지만 결국 5명 정도가 지구여행을 가게 되더라고 한다. 지구여행반의 여정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기 전 시작되기 때문에 신입생은 참여하기 힘들다. 그리고 신입생이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가 없다. 5명 아이들의 단결력은 매우 중요해서 새로운 아이가 들어왔을 때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고 해서 사이가 좋으리란 법은 없다. 아이들은 수없이 많이 티격태격하며 다투고, 화해한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과정은 계속되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면 서로가 끈끈한 사이가 되기도 하지만 또 끝까지 사이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서로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여행의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서로를 배척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모든 인생의 과정이 그렇지 않을까.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좋아하지 않아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여행 속에서도 세상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지구여행은 선생님이 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나는 왜 여행을 가려고 하는가?’
내 아이는 이 질문을 매우 어려워했다. 왜냐하면 지구여행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엄마가 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낸 이유가 지구여행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이도 알고 있어서 지구여행반이 꾸려지고부터는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이라고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여행의 이유를 물으면 할 수 있는 답은 ‘엄마 때문에’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그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 엄마가 가라고 했어도 이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아이 스스로 그 이유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며칠 동안 아이는 매우 괴로워했다. 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것을 적어서 가져가면 선생님은 다시 써서 오라고 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것이 이유인데 왜 거부당하는지 아이는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여행을 준비하고 경험하는 동안 가져야 할 수많은 힘든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매우 간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듯했다. 하지만 아이로서는 그런 이유를 알턱이 없다. 어떤 이유를 대야 합격이 되는지 알 수 없어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 동안 괴로워하며 이유를 찾던 아이가 어느 날 결국 내 앞에서 울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여행 안 가면 안 돼? 난 내가 왜 여행을 가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다른 아이들은 잘 해내는데 나만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속상해. 차라리 여행을 안 가는 것이 좋겠어.”
첫걸음부터 이렇게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매우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야 하는지 마음속에 갈등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런 기회가 많지도 않겠지만 특히 신경이 쓰였던 것은 이미 하기로 했던 마음을 번복하는 것에 있었다. 이번에 해보지 않으면 아이는 앞으로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포기부터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우는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무척 힘들었겠네. 맞아. 네가 여행을 가는 이유가 엄마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인데 니 스스로 그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런데 엄마는 이렇게 힘이 들어도 네가 이 여행을 꼭 갔으면 좋겠어. 무엇이든 처음 하는 일, 도전하는 일은 매우 힘든 법이야.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네가 하는 일들을 지지하고 즐겁게 살도록 엄마가 은신처 역할을 해주기도 했어. 하지만 엄마가 언제까지 너의 보호막이 되어줄 수는 없어.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고민해 볼 시점이 된 거야. 엄마는 너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니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해. 대학이라는 인생의 목표지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있어. 너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어서 죽어라 공부하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그 아이들만큼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것을 하고 나면 너는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만큼 한 뼘 더 성장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알거든. 어쩌면 그들보다 더 성장해 있을지도 모르지. 다른 아이들이 대입을 위해 지금을 포기하는 것처럼 너도 조금만 견뎌봤으면 좋겠어. 엄마가 지금까지 너에게 바랐던 것은 없었잖아. 지구여행은 니 인생에서 엄마가 너에게 바라는 단 한가지야.”
아이는 매우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는 조금씩 진정하고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물론 아이는 지구여행을 포기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나름의 이유를 적어서 선생님께 제출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