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남미 여행 방랑기
새벽부터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공항을 가기 위해 공항버스를 타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터미널에 가보니 먼저 와 있던 아이들과 환영단이 보였다. 터미널을 전세 낸 듯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아이들을 모아 버스를 타기 전 지구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의 각오를 한 마디씩 들어보았다. 가장 나이가 어린아이가 16살이었는데 어리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야무지고 단단한 각오였다.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다섯 명의 아이들이 개성 넘치는 각오들을 한 마디씩 하는 것을 보며 긴 여정 동안 그들이 어떻게 서로 화합하며 살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지켜보는 부모들과 친구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그들을 응원했고 힘차게 배웅해주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거의 하루의 시간이 걸려 첫 번째 여행지인 에콰도르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부모들의 단체 톡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부모들은 보내진 사진 한 장 한 장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 도착한 에콰도르에서의 풍경 등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기대고, 안고 서서 아직은 기운이 넘치는 모습으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숙소를 찾아서 가고 아이들이 짐을 푸는 동안 혹시라도 통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무심한 아이는 며칠이 지나도 감질맛 나게 카톡에 짧은 단문만 보낼 뿐이었다. 결국 내가 끈질기게 요청해서 첫 통화에 성공했다. 국제전화는 하기 힘들어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영상통화로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첫 통화에서 아이는 조금 울먹이기는 했지만 이후로는 여행지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즐겁게 전해주었다.
“엄마, 남미는 위험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
“여기는 식당마다 음식이 너무 짜서 항상 소금을 조금만 쳐달라고 해야 해.”
“우리는 이제 ‘뽀요(스페인어로 닭이란 뜻)’만 먹기로 했어.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음식이거든.”
“오늘 래프팅을 했는데 죽는 줄 알았어. 배가 한 번 뒤집어져서 다 물을 먹고 난리도 아니었어.”
아이와의 통화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남미에서의 하루하루를 생동감 넘치게 아이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있다 보면 나도 함께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솟구쳐 올랐다. 영상통화로 하다 보니 아이가 지내는 숙소를 볼 수도 있었고, 사막 한가운데 숙소에서 묵을 때는 사막의 풍경을 배경으로 통화를 할 수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일어난 일이며, 같이 간 일행들과의 소소한 일들을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넘게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남미는 매우 낯설고 신기했으며, 또 광활하고 아름다웠다. 사진으로 전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변화무쌍한 날씨를 이겨내느라 시간이 지날수록 꾀죄죄해져서 그것을 관망하는 재미도 있었다. 험한 산을 만나고 더없이 푸르른 호수를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아이들은 여행지에서 반삭을 하거나, 레게머리를 하며 그곳의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기도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여행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모습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개성대로 아이들은 여행을 즐겼고 그 과정에서 힘든 일들을 만나면 함께 다독여가며 격려하고 아이들끼리 서로 의지하기도 했다. 특히 여행 도중에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을 위해 모두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즐겁게 축하해주는 모습은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내 아이도 생일을 맞은 아이 중 하나였는데 여행지에서 맞이한 생일에 따뜻한 미역국도 챙겨 받지 못했을 아이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낸 사진들을 보고 안도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생일자들에게 큰맘 먹고 술 한잔씩 해도 된다고 허락해주기도 했다는데 아이들은 애써 사양하며 남미 최고의 음료, 잉카콜라만 찾았다고 한다.
여행은 즐거운 일만 생기지는 않는다. 여행을 다니는 과정에서 위험한 일도 있었는데 소매치기를 당할뻔한 이야기는 사실 위험한 축에도 끼지 않았다. 에콰도르에 있을 때는 에콰도르 시민들이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며칠 동안 계속하는 바람에 숙소 밖을 나갈 수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에콰도르 일정을 포기하고 페루로 넘어가려는 과정에서 시위대에 쫓겨 매우 긴박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던 얘기는 부모들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날의 일을 두고 죽을뻔했다고 표현했는데 정말로 그날의 시위 분위기가 매우 험악해서 시위대에게 붙잡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아찔한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볼리비아에서는 장기집권을 하고 있던 대통령의 연임을 반대하는 세력이 시위를 하는 바람에 또 며칠 동안 한 곳에 머물러야 했었다. 아이들은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부모들이 겪었던 반정부 시위나 최루가스들을 경험하는 아이러니한 여행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생동감 있는 소식은 남미 정치에 관심조차 없던 부모들이 남미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할 정도로 빅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 위험한 순간들로 인해 여행은 조금씩 계획과 다르게 변경되기도 했는데, 가능하면 안전하게 여행을 다니기 위해 선생님은 무리하지 않고 여행을 리드하셨다. 부모들은 선생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매일 선생님께 감사드렸다.
어쨌든 이토록 다사다난한 여행의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목적했던 것들을 대부분 경험하고 왔다. 에콰도르에서는 적도에서 에그마스터가 되고,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그네를 타고, 번지점프를 해보기도 했다. 페루에서는 사막을 경험하고 아마존을 탐험하고, 마추픽추를 보며 경이로운 역사적 현장에서의 감동을 경험했다. 볼리비아에서는 우유니 사막의 쏟아지는 별들과 아름다운 소금사막을 한껏 사진에 담아서 왔다. 나는 아이의 여행으로 접하게 된 이국의 신비로운 자연들을 보며 감탄하고, 갈라파고스에만 있다는 푸른발부비새를 보고 신기해 했으며, 사막의 아름다운 오아시스나 평생 한 번은 가고 싶어했던 우유니 사막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다. 낯설었던 남미가 이웃인 듯 친근해지며 나도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는 꿈을 꾸게 했다.
82일의 여행을 마치고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들은 가장 먼저 모든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해준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되려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키우고 사냐며(선생님은 비혼 여성이셨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그만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일정이 보통의 일정이 아니었으리라는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아이는 지구여행을 결심하면서 처음엔 어렵고 힘들었던 도전으로 여겼지만 마치고 나서는 스스로도 매우 뿌듯해하는 듯 했고 여행 자체를 즐겁고 행복하게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행 이후 아이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무엇이든지 해보려고 했다. 여행지에서 경험했던 스페인어가 조금 끌렸었는지 스페인어에 관심을 갖고 관련된 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고, 아마존에서 핑크돌고래를 향해 헤엄치던 아이를 보며 수영을 배워뒀더라면 자신도 한 번 시도해봤을 텐데 아쉬웠다며 다음의 도전을 위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다. 여행을 함께 갔던 아이들과 좀 더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어갔고 학교생활도 더욱 즐겁게 해 나갔다. 아이에게 지구여행은 분명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항상 소심하고 자존감이 조금 낮던 아이였는데 지구여행 이후 조금씩 적극적이고 무슨 일에든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모든 변화가 지구여행으로 인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한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며 걱정되고 조심스러운 점들은 굉장히 많지만 어쨌든 아이가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80여 일간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의 기록이었다. 인솔하셨던 선생님은 여행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을 숙제로 내주었는데 워낙에 카리스마가 있는 선생님이어서 일기 쓰기가 썩 달갑지 않은 아이들도 그것을 소홀히 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물론 밀렸다가 한꺼번에 쓰는 날도 여러 날 있었지만 거의 모든 날들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겼다. 여행의 모든 여정을 기록하는 것은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으로도 훌륭한 일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더욱 키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이의 글쓰기 실력은 지구여행 이전과 이후로 확실히 달라졌음을 느끼기도 했다. 아이는 일기뿐만 아니라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는데 뛰어난 실력의 그림은 아닐지라도 다시 추억하는 날 사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 같았다.
아이가 지구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인 팬데믹이 왔다. 그 학교에서도 이후로는 지구여행반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은 조금씩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고 세계로 가는 길도 다시 열리고 있다. 다시 여행은 시작될 것이다. 많은 아이들에게 그것이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