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언덕 가는 길
햇살언덕에 올랐다. 늦은 가을의 아침은 약간 쌀쌀한데 햇살언덕은 말 그대로 햇살이 온화해 지금부터 겨울까지 아이들과 나들이 오기에 좋은 장소이다. 햇살언덕은 터전 뒷산을 조금 올라가 만나는 널찍한 정상부를 이르는 말이다. 뒷산이라고는 하지만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아 아이들과 10분쯤 오르면 금방 도착한다. 아이들과 자주 오는 이 장소는 햇빛이 넉넉하게 비추어 한겨울에도 항상 따뜻한 곳이라서 아이들과 함께 그렇게 이름 지었다. 햇살언덕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나무도 많지 않고 여기저기 땅을 일구고 텃밭을 만들어놓아서 예전처럼 놀 수 있는 곳도 많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나들이 장소가 언제나 그랬듯이 묘 주변으로 조성해놓은 잔디밭을 놀이터 삼아 햇살도 주우러 가고, 놀잇감도 주우러 가는 소중한 장소이다.
햇살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10분 정도의 오르막이지만 가는 길목마다 우리 아이들의 작은 놀이터들이 있다. 놀이터를 일부러 만들어놓은 곳이 아니라 우리가 맨날 가서 놀다 보니 놀이터가 된 곳이다. 뒷산을 5분쯤 오르다 보면 향나무가 둥글게 터를 감싸고 있는 아늑한 작은 선산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곳을 사자동산이라고 부른다. 작은 사자 석상이 산소 양쪽에 떡 허니 버티고 있어서 대번에 사자동산이라고 이름 지었다. 사자동산을 포위하듯 심어진 향나무는 아름드리 제법 크고, 그렇다 보니 매우 아늑해서 미세먼지가 많거나, 바람이 세게 불어 날씨가 조금 쌀쌀한 때에도 매일 나들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장소이다. 오늘은 사자동산에 이미 동생들이 자리를 잡고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었다. 사자동산에 인기 만점인 사자상은 아이들이 말처럼 올라타서 놀기도 하고, 웃고 있는 사자 이빨에 충치가 생길까 풀을 뽑아다 이도 닦아주며 동생들의 훌륭한 놀잇감이 되어주는데 오늘도 사자는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예닐곱 살 아이들이 보기에도 서너 살 아이들은 귀여워 보이는지 목적지를 향하기 전 만난 동생들을 너도나도 귀엽다며 한 번씩 안아주고 뺨을 어루만져주느라 잠시 교통체증이 생겼다.
동생들과 인사를 하고 또 잠시 오르막을 오르면 다람쥐 동산이 나온다. 이곳은 산소 양 끝에 석주가 배치되어 있는데 석주 윗부분에 다람쥐가 아래를 향하여 내려가는 듯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어 다람쥐 동산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은 광대나물 꽃이 피면 자주 놀러 오지만 지금 우리의 목표는 햇살언덕이기 때문에 이곳도 빠르게 지나갔다. 작은 아이들은 짧은 다리로 큰 아이들의 보폭을 따라가느라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썩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을 오르락거리느라 아이들은 웬만한 오르막길 정도는 어른보다 잘 탄다. 사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진정 힘과 균형감각이 필요한 건 내리막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들이 몇 번 다니며 금방 그 감각을 익히고 심지어는 나들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의 내리막길을 매우 기대한다. 가벼운 몸으로 단숨에 뛰어 내려가버린다. 간혹 넘어지는 아이들이 있지만 아프다고 울지도 않고 다음날 다시 뛰어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리막을 뛰어 내려가며 생기는 가속도는 평지를 뛸 때와 달라 아이들은 그 느낌을 매우 좋아한다. 절로 번개맨이 되고, 절로 스파이더맨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도 아이들과 똑같이 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데 그러기엔 내 몸이 너무 무겁다. 솔직히 골절이 걱정되는 나이이기도 해서 꾹 참는다. 물론 아직 내리막길이 서툰 동생들을 챙기는 임무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도 '우다다다' 해볼까?"
작은 아이들도 형님들을 흉내 내며 내리막길을 '통통통통' 뛰어보지만 이내 주르륵 미끄러지고 만다. 그러면서 교사 손을 절대 놓지 않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위험한 일에 쉽게 뛰어들지 않는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이 들 때 좀 더 과감해진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기 전까지는 손을 꼭 잡아주고 기다려 준다.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형님들 따라 내리막 끝에 도착해 있겠지만 그렇다고 천천히 내려가는 지금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는다. 언젠간 자신들도 형님이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