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학기 자연 시간이었다. 동물의 한 살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일어난 궁금증이었다. 인천대공원에 다니며 여러 곤충을 만나다 보니 곤충에 대해선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이 아이들은 동물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개나 고양이를 우리는 뭐라고 부를까?”
“포유류?”
생각보다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사람도 포유류에 속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띄엄띄엄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내친김에 닭과 같은 조류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새는 알지만 조류라는 단어는 생소했던 듯하다. 그때였었다. 심도 있는 교육은 못 들어갈 수 있더라도 동물을 어떤 식으로 분류하는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물 수업은 학교 교육과정에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기도 했고, 자연 수업은 사실 교사의 재량으로 이루어지는 편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갯벌에 한번 데려가야겠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뜨거운 계절이 지나고 갯벌에서 한참을 있다가 와도 충분히 좋은 날씨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를 직접적으로 맞닥트린 듯한 올해의 날씨는 갯벌에 갈 수 있는 날을 예정하기 힘들었다.
“다음 주엔 갯벌에 갈 거예요. 갯벌에 가서 갯벌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은 무엇이 있는지 공부하고 올게요.”
“선생님, 갯벌이 뭐예요?”
갯벌을 가본 적이 있고 잘 알고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갯벌이 무엇인지 처음 들어본 아이도 있었다. 갯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며 이야기 해주기로 약속했다. 아이들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 차로 가겠다고 했더니 갯벌을 가는 것에 대한 설렘을 더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선생님, 내일 ‘족발’ 진짜로 가요?”
‘족발?’
갯벌을 가기 전날, 한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갯벌을 족발이라고 한 것 같아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갯벌?”
“네, 갯벌이요.”
아이의 엉뚱한 단어 선정에 우선 배꼽부터 잡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왜 그렇게 요란하게 웃어대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족발은 갯벌 갔다 와서 집에 가서 엄마한테 사주라고 하렴.”
“아~!”
아이들은 그제야 교사가 왜 웃었는지 알았다는 듯이 따라 웃었다. 하지만 갯벌을 잘 알고 있던 아이들도 그때부터 정확한 단어가 헷갈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선생님, ‘개~발’ 빨리 가고 싶어요.”
“족발 가면 꼭 장화 신어야 돼요?”
이제 갯벌이라는 정식 단어는 아이들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온갖 비슷한 단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갯벌이라고 정확한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정정해서 알려주는 일은 매우 지난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갯벌을 가기로 했던 날은 드디어 왔다.
학습의 연장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활동지 파일을 각자 손에 쥐어주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탄 아이들은 선생님 차가 좋다느니, 또는 너무 좁다느니, 아빠 차에서 나는 냄새랑 같은 냄새가 난다느니 하며 각자의 소감을 선생님의 심중을 헤아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그래도 여행을 가는 듯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같이 설레고 즐거웠다.
목적지는 소래포구였다.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넓은 갯벌은 아이들에게 광활한 대자연을 만난 듯한 인상이었는지 연신 감탄사를 남발했다.
“갯벌은 바닷물이 빠져나가서 생기는 넓은 땅을 말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집중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진 않았다. 하지만 수업을 핑계 삼아 나온 것인데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갯벌은 어쩌구 저쩌구, 갯벌 속 생태계는 이러구 저러구 하며 준비해 온 수업 내용을 읊어 주었다. 물론 아이들은 갯벌 위로 흐르는 바닷물, 갯벌을 헤집어 먹이활동을 하는 바닷새들, 자세히 보면 보이는 수많은 갯벌 위 구멍들을 관찰하느라 눈과 손이 매우 분주했다. 오늘의 수업 목표는 어류, 갑각류, 조개류, 연체동물 등의 바닷속 생물들의 분류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고 활동지를 통해서, 소래포구 내 박물관을 통해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학습 내용을 심어주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선생님, 이제 내려가도 돼요?”
“응, 이제 마음껏 놀아!”
소리를 지르며 갯벌로 내려간 아이들을 맞이한 것은 수많은 농게 무리였다. 구멍 밖에서 이동을 갈망하던 게들은 아이들의 요란스러운 발걸음 소리에 굉장한 빠르기로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움직이던 게들은 아이들에게 사냥 본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아이들의 빠르기로는 농게를 잡는 것은 무리였다. 아이들이 농게를 잡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 주변 산책하는 어른들이 게를 잡아다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집게를 휘두르는 게가 무서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는데 그나마 갯벌에 와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두려움 없이 게를 잡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잡아준 게는 아이들 성에 차지 않았다. 직접 사냥을 해서 잡아야 제맛인 법이니까. 도대체 어떻게 찾았는지 모를 삽 하나를 찾아서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엔 허탕만 치던 아이들이 제법 속도가 나기 시작하면서 농게를 한두 마리 잡아내기 시작했다. 게가 나온 구멍을 움직임 없이 기다렸다가 들어가기 직전에 삽으로 구멍을 파서 미처 들어가지 못한 게를 잡는 것이었다. 아무런 준비물 없이 왔던 곳이라 게를 잡아서 담을 통도 근처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찾아 담아두었다. 게가 가만히 있는 동물이 아니기에 담아두어 봐야 곧잘 도망가기 일쑤라 소용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게를 잡고 담고 하는 일에 오랫동안 집중하며 놀기에 그만이었다.
“선생님, 이거 어떡해요?”
게를 잡기 위해 연신 삽질하던 와중에 결국 농게를 두 동강 내고 만 아이가 살짝 겸연쩍은 듯 반쪽짜리 게를 보여주었다. 설마 아이가 두 동강 낸 게 맞나, 원래 두 동강 난 거 아닌가 믿을 수가 없어서 아이와 게를 번갈아 보았다. 아이의 표정으로 보니 자신이 한 게 맞긴 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가져가서 엄마한테 게장 담가달라고 하렴.”
처음엔 게장이라는 말에 좋아하는 듯하다가 그것을 가지고 갈 생각을 하니 귀찮았는지 결국 휙 던져버리고 말았다. 게를 두 동강 낸 이후엔 게를 잡는 일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슬슬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애들에게 삽도 제자리에 두게 하고, 가져온 쓰레기들은 쓰레기통에 버리게 하며 손발을 씻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실컷 갯벌을 뛰어다니고 실컷 바닷냄새 맡은 아이들에게 올 1년의 기억 중 또 하나의 즐거운 기억으로 갯벌이 기억되었음을 아이들의 활짝 핀 얼굴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선생님, 우리 ‘족발’ 언제 또 와요?”
“아니, 갯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