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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Feb 27. 2024

가야 태자 월광기(記)

제19화.  도솔지왕이 된 월광

  아라가야의 정벌이 마무리되자 진흥왕은 오래도록 비워두었던 서라벌로 돌아갔다. 서라벌 길은 금의환향의 길이었다. 흥분과 만세의 도가니였다. 서라벌의 온 백성이 모두 길거리로 나온 듯 보였다. 서라벌로 돌아오자마자 진흥왕은 이번 정벌 전쟁에 대한 논공행상을 위해 어전회의를 열었다. 이사부는 더 오를 벼슬이 없어 식읍을 더해 주었으나 새로이 직급이 승차되었다. 벼슬이 높아진 장수가 부지기수였다. 이로 인해 월성(月城)은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났다. 그러나 세상은 진흥왕이 딱 한 사람에게만은 공평하지 않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런가 하면 그런 소문은 뭘 모르는 소리라는 빈축의 목소리도 함께 나돌았다. 가야 정벌 전쟁에서 사다함은 누구 못지않게 공이 큰 청년 장수였다. 그러나 진흥왕은 논공행상의 자리에서 사다함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이사부가 사다함의 공이 작지 않음을 거듭거듭 주창하였으나 진흥왕은 그저 듣고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상찬이 모두 끝나도록 사다함에게는 그 어떤 벼슬자리를 제수한다거나 식읍을 내린다는 등의 언급이 한 마디도 없는 채로 논공행상의 자리는 파했다. 이후로 월광은 사달함을 월궁에서 본 일이 없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진흥왕이, 사다함이 왕족 김세종의 아내 미실과 남몰래 부부의 연을 맺은 사실을 알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이들은 사다함에게 큰 벼슬을 내리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서 더 큰 그릇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진흥왕의 속마음이리라 했다. 조정이 연일 들끓자 진흥왕은 마지못해 사다함을 불러 적당한 벼슬을 제수하겠다 하였으나 사다함은 받지 않고 산중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친구 무관랑의 묘소를 찾아가 통곡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신이 세상에 나간 것을 몹시 후회하더라는 것이었다. 얼마 후 사다함이 사망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월광과 진흥왕 뿐 아니라 그 후로 사다함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사다함의 사망 소식이 점점 서라벌 전체에 퍼졌고, 신라 사람들 모두가 그 소문에 몹시 술렁거렸다.   

  

  연화 공주가 사람을 보내왔다. 일간 꼭 늘 뵙던 그 전각에서 보았으면 좋겠다는 전갈을 좇아 연화 공주가 기다리는 전각을 찾았다.

  “참으로 무심하십니다.”

  “참으로 미안하오.”

  연화 공주는 토라진 눈빛으로 월광을 채근했다.

  “서라벌에 오신 지 보름이 지났는데 어찌 그리 무정하신지요?”

  “난 아직도 내 백성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모르겠소.”

   월광의 의외의 대답에 연화 공주는 토라졌던 마음을 버리고 그를 걱정했다.

  “잘 해내실 줄 믿습니다.”

  연화 공주는 이제 스스럼없이 월광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아니오. 난 도대체 모르겠소. 무력은 전장에서 신국을 위해 미친 듯이 칼을 휘두릅니다. 자신이 흉맹할수록 망국 금관의 백성들이 신라국 백성들이나 벼슬아치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거라 했소. 그렇다면 나의 대가야 백성들은, 서라벌의 횡포로부터 나의 백성들은, 어찌 지켜야 한단 말이오. 또한 아라가야의 여령왕은 자신 혼자 기꺼이 죽음으로써 아라가야의 백성들을 온전히 구했소. 노왕(老王)은 그의 병사들에게 어떤 저항도 하지 말라 명을 내려 두었었소. 서라벌은 노왕의 희생에 감화할 것이오. 아라가야를 끝으로 이제 가야누리에는 어떤 가야도 없소. 대가야는 금관처럼 또 아라처럼 서라벌에 항복하지 않았소. 정복되었소. 그러니 대가야의 백성들은 금관가야의 백성이나 아라가야의 백성들과 달리 살아가는 일이 곤궁할 것이며 서라벌은 저들을 흉포하게 다스릴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공주님. 나는 나의 백성들을 어찌 구해야 하겠소?” 

  월광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난 연화 공주가 정색을 하고 월광을 바라보았다.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소녀도 어마마마께 태자님의 어려움에 대해 여쭈어보겠습니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인가. 이번엔 연화 공주의 고운 목소리도 월광에게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다. 다만 연화 공주의 자신을 향한 측은지심이 위로가 되었으며, 자신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공주의 눈빛이 서글플 뿐이었다.     


  다시 월궁의 대전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다. 가야누리를 어찌할 것인가를 두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월광의 예상대로 서라벌의 대신들은 아라가야의 여령왕에게 크게 감화되었다. 아라가야에서 백성은 물론, 가축과 농작물과 산하마저 함부로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진흥왕의 명령이 내려졌다. 이제 남은 것은 대

가야였다. 대가야를 어찌 다스리는 것이 좋겠느냐는 진흥왕의 하문(下問)에 신하들은 제각각 다른 의견을 쏟아냈다. 그런 중에도 응당 엄중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진흥왕은 고개를 저었다. 진흥왕은 좌중의 소요를 누르고 입을 열었다. 

  “다들 틀렸소이다. 불은 불로 다스리고 물은 물로 다스린다 하였소. 이는 대가야는 곧 대가야로 다스려야 한

  다는 말과 같소. 이러한 일에 대해 다시들 논의하여 보시오.”

  진흥왕은 월광을 대가야 속왕(屬王)에 제수하려 했다. 그러자 대신들은 치열하게 진흥왕의 뜻을 반대했다. 대가야는 끝까지 서라벌에 대항한 반골로 너그러운 통치는 부당하다는 것이었으며, 또한 신라에는 이제껏 속왕이란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굳이 속왕을 둔다면 속왕은 적어도 성골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진골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월궁의 모든 신하들이 들끓었지만 그들은 모두 끝내 진흥왕을 이길 순 없었다. 진흥왕은 대신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결국 월광을 신라의 대등이자 대가야의 속왕에 제수하였다. 진흥왕은 월광에게 속왕의 왕호로 도솔지를 내렸다. 도솔지는 월광에게 법흥이 내린 아호이기도 했다. 월광은 곧 대가야의 도솔지왕으로 제수된 것이다.      


  도솔지왕이 된 월광은 연화 공주를 만나고자 몇 번이나 계림지를 건너 전각을 찾았다.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 연화 공주는 끝내 만날 수 없었다. 곧 가야궁으로 떠나야 할 날이 가까웠지만 연화 공주는 끝내 전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월광은 점점 조급증이 났다. 조급증은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월광은 연화 공주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서라벌을 떠나 가야성으로 가야만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서라벌 대신들의 사나운 눈초리를 등 뒤로 받으며 도솔지왕 월광은 신라의 병사들과 신라의 장수들 그리고 몇몇 대가야의 신하로 임명된 신라의 신하들을 앞세우고 상가라도 가야성으로 향했다. 대가야로 향하는 도솔지왕의 마음은 서글폈다. 자신은 대가야의 왕으로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즉위했어야 옳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것이 서글펐다. 또 하나 연화 공주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쉽고도 아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지켜낼 수 있게 되었구나. 나의 백성들을 나도 지켜낼 수 있게 되었구나?’     


  도솔지왕이 상가라도 거리에 이르자 대가야의 백성들이 만세를 연호했다. 마침내 도솔지왕이 가야성에 입성하자 모후 이뇌 왕후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았다.  

  “결국 뜻을 이루었소. 감축하오.”

  “어마마마, 성군이 되겠습니다. 가야를 다시 번영케 하겠습니다.” 

  도솔지왕의 눈에 눈물이 얼비치었다. 도솔지왕 월광은 어머니인 이뇌 왕후에게,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양승과 아량이 참으로 오랜만에 도솔설지왕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도솔지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자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돌곽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궐에 못 보던 얼굴의 신하들이 입궐했다. 모두 대가야 출신의 신하들이라 했다. 도솔지왕은 그들을 임명한 바 없었다. 신라계 신하의 우두머리인 집사시랑이 입을 열었다.

  “도솔지 임금님. 소신 서라벌에서 올 때 진흥제께 이미 임명장을 받아온 바 있어, 금일 그 임명장에 따라 가야계의 신하들을 입궐토록 하였습니다. 여기 그 임명장이오니 직접 수여하심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집사시랑은 내가 모르는 것을 어찌 알고 있소?”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양승과 아량이 집사시랑을 꾸짖었다.

  “모두 진흥제의 명이옵니다, 고정하소서.”

  도솔지왕은 어이가 없었으나 그래도 가야인 신하를 임명하게 된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 것에 일일이 마음 쓸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솔지왕은 대가야의 땅에 다시 부강을 이루고 싶었다. 그러나 도솔지왕은 곧 깊은 회의에 빠졌다.

멸망한 나라 대가야의 속왕이란 얼마나 허울 좋은 껍데기인가 깨닫게 되었다. 서라벌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도솔지왕에게 보고하라는 게 많았다. 부당하게 높은 세금을 백성들에게 부과하라 거듭 요구했다. 그런 요구에 대해 도솔지왕은 처음엔 분기(憤氣)를 드러냈다.

  “어찌 대가야 땅의 백성들에게만 두 배나 높은 세금을 징수하란 말이오? 고율의 세금은 백성들의 고혈임을 

  아셔야지요.”

  도솔지왕 월광이 새로운 세금 징수안에 대해 반대하자 가야궁의 신라계 신하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대가야는 큰 땅입니다. 서라벌이 강성한 군대를 기르는 것은 대가야를 백제로부터 지켜내고자 함인데 어찌 

  세금이 많다 하시는지요?”

  “대가야는 가야누리 중 물산이 가장 풍부하고 오랫동안 가야누리의 중심이지 않았습니까? 다른 가라고을과 

  같은 세금을 내겠다는 게 도리어 불공평하지 않을는지요?” 

  “서라벌을 융성하게 하는 것은 서라벌의 속왕으로서의 도리가 아닐런지요?”

  “어찌 대가야 백성들만 자꾸 굶주리라 하시오.”

  마지막까지 양승과 아량만이 저들에게 맞섰다. 신라계 신하들은 도솔지왕에게 기본적인 예의도 허문 채, 도솔지왕의 의견마다 진흥제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냐며 되묻기 일쑤였다. 가야성엔 비록 진흥왕의 임명장이긴 하나 분명 대가야계 신하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누구 하나 도솔지왕의 편에 선 신하는 없었다. 도리어 그들도 신라계의 의견을 옹호한다는 것이 기막힌 일이었다.

  “지금은 농번기인데 성 쌓는 일에 대가야의 백성들을 그리 대규모로 동원한다면 대가야의 올해 농사는 다 글

  러지고 맙니다. 지금 서라벌은 웅진과 관계가 개선 되어 전쟁의 위험이 없거늘…, 전쟁에 대비한다 해도 농

  한기를 틈타 해도 될 일이 아니겠소?”

  도솔지왕은 백성들이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고 축성 작업에 동원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신라와 백제의 새 경계에 성 쌓는 일에 동원되는 것은 대부분 대가야의 백성들이었다. 서라벌에서 대가야의 백성들을 징집해달라 끊임없이 요구하며 괴롭혔으며 신라군의 모진 감독 아래 대가야 백성들은 심한 노동에 시달렸다. 진흥제는 대가야가 백제와의 국경에 잇대고 있으니 성을 쌓아야 한다며 대가야의 백성 동원에 농번기와 농한기를 가리지 않았다. 참다못한 양승이 아량과 연명(聯名)으로 서라벌에 상소를 올렸으나 그들은 진흥왕의 진노를 살 뿐이었다. 이 일로 인해 양승과 아량은 도솔지왕 월광에게 폐만 끼치게 되었다며 스스로 벼슬에서 한꺼번에 물러났다.

  “도솔지 임금님. 임금님께선 서라벌에 대해 충심이 있기는 한 것인지요?”

  신라계 신하들의 무례한 도전에도 도솔지왕을 거드는 신하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솔지왕은 무력감에 빠졌다. 마침내 월광도 속왕이란 진정 허울 뿐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한 날은 형장에서 형리가 죄인을 문초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형리도 역시 신라계였으며 도솔지왕 앞에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다. 형리는 끌려온 사람들에게 어찌 패국(敗國)의 백성들이 상국의 백성들에게 오른 값으로 물건을 파느냐며 일방적으로 신라인을 편드는 것이었다. 이야기인 즉 신라계 사람들이 상가라도 상인들에게 물건값을 시비 걸며 물건들을 밀쳐 쓰러뜨리고 깨뜨리며 횡포를 부려 집단으로 싸움이 벌어진 사건이라 했다. 속국의 백성이니 그렇잖아도 대가야 상인들은 신라계 사람들에게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신라인들에게서 물건을 지키려다보니 물건으로 달려드는 사람을 막아서다보니 사람을 넘어지게 하여 다치게 했다는 것이었다. 형리 앞에서 신라인들은 기세가 등등했으며, 상가라도 상인들은 대가야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죄인 시 되고 있었다. 

  “임금님, 저희의 억울함을 구해주십시오.”

  도솔지왕이 나타나자 상가라도 대가야 상인들은 눈물로써 도솔지왕을 향해 달려가 도솔지왕의 발아래 엎드렸다. 그러나 형리는 그 모습을 보고 도솔지왕에게 잠깐 목례를 표할 뿐 무례를 물리지 않고 도솔지왕 앞에서도 여전히 대가야 상인들에게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이 어찌 그러하오?”

  도솔지왕이 형리에게 묻자 따르던 신라계 신하들이 도솔지왕의 앞을 가로막았다.

  “임금님, 아랫것들의 일이옵니다. 어서 가시지요.”

  “어서 발걸음을 옮기시지요.”

  이번에는 대가야 출신의 신하들마저 신라계 신하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비로소  도솔지왕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는 왕도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닌 허수아비일 뿐이란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대가야 출신의 신하들조차 그의 신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가야의 백성들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대가야 출신의 가야성의 신하들이었으나 그들마저 진흥왕의 신하들이었던 것이다. 오직 도솔지왕 자신만이 가야궁의 왕으로서 무엇인가 할 수 있을 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대가야의 백성들을 곤궁과 고난에서 조금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가야의 백성들은 오히려 알량한 자신들의 속왕을 지키느라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깨닫게 된 도솔지왕의 절망감은 날로 깊어만 갔다. 지방에 현령을 임명하는 것도, 신라 출신 현령들의 횡포를 다스리는 것도, 심지어 자신이 지방을 순행하는 것조차도, 신하들은 진흥왕의 재가가 있기 전엔 아무것도 안 된다며 도솔지왕의 위치를 거듭거듭 일깨웠다. 게다가 진흥왕 역시 별일이 아닌 일로 도솔지왕에게 대가야를 보다 현명하게 다스리라며 공문을 내려 자주 채근하곤 했다. 도솔지왕은 이제 그만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 전에 도설지왕은 이제 자신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지, 백성들이 자신의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폐를 끼쳤는지 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다. 도솔지왕은 청을 넣어 서라벌을 찾았다. 그는 진흥왕의 얼굴을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가야성 밖의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살펴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 고개 숙여 청했다. 진흥왕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도솔지왕 월광을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도솔지 속왕께선 상가라도 안에서 자의(自意)로 순행하실 수 있소이다.”

  도솔지 왕은 성 밖을 보고 싶다 했으나 진흥왕은 겨우 상가라도 안에서의 순행만을 허한다 했다. 도솔지왕은 진흥왕의 묘한 대답에 덧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진흥왕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하며 홀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도솔지왕은 이번 상가라도 순행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하리라 마음먹었다.

  “대왕의 은혜 하해와 같사옵니다.”

  가야성에 돌아온 도솔지왕은 즉시 말에 올랐다. 주위를 물리고 미루와 약간의 호위병만을 이끌고 가야성 밖으로 나섰다. 호위병들도 신라인이 아닌 대가야 출신들만 따르도록 했다. 신라의 신하들과 신라의 장수가 거듭 따르겠다 하였으나 도솔지왕은 이들을 거듭거듭 물리쳤다. 신라의 신하와 신라의 호위 병사들을 떼어 내자 도솔지왕은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가야성을 나서서 상가라도 거리를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돌멩이 하나가 날아들어 도솔지왕의 가슴께를 맞히고 떨어졌다. 도솔지왕은 느닷없는 공격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웬 놈이냐?”

  미루가 몸을 날려 모퉁이로 사라지는 자를 쫓았다. 호위병들이 순식간에 도솔지왕을 둘러싸며 칼을 빼어 들었다. 도솔지왕이 말에서 내려 돌멩이를 주워들었을 때 비로소 돌멩이가 종이에 싸여 있음을 알았다. 도솔지왕은 천천히 종이를 풀어보고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폐하, 소인을 용서하소서.”

  호위병 하나가 눈치 빠르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도솔지왕을 들쳐 업었다. 결국 도솔지왕의 가야성 밖 상가라도 순행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처소로 미루가 들어와서 허리를 굽혔다.

  “놈을 하옥해 두었사옵니다.”

  도솔지왕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를 풀어주시오.”

  미루가 망설이며 바라보자, 손짓으로 미루를 물렸다. 미루가 나가고 나서 도솔지왕은 다시 돌을 싼 종이를 펼쳐보았다가 접어 베게 맡에 놓아두었다. 

  ‘그래. 나는 대가야를 망친 원흉이다. 나는 그의 말대로 신라의 허수아비가 아닌가? 나의 배신으로 신라군들이 몰려와 수많은 대가야의 젊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대가야의 문을 여신 이신아시 대왕 이래로 아버지인 이뇌왕에 이르기까지 대가야의 열조(烈祖)를 뵈올 낯이 없지 않은가? 아라가야의 임금 여령왕의 꾸지람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글의 말미에는‘대가야의 지사’라 씌였고, 그 위에 굵은 획으로 수결이 맺어져 있었다. 도솔지왕은 침상에 놓인 속왕의 관이 부끄러웠다. 다음날부터 도솔지왕은 관을 쓰지 않았다. 도솔지왕은 모후를 찾았다. 그리고 대가야의 억울하게 죽은 백성들과 병사들의 영령을 위해 불법에 의탁하고 싶다 고했다. 처음엔 몹시 놀란 모후가 다 듣고 난 뒤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후의 얼굴 위로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도솔지왕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도솔지왕은 진흥왕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속세를 떠나 불가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는 탄원이었다. 진흥왕이 쉽게 허락하지 않으리라 여겼으나 도솔지왕은 두 번 세 번이라도 계속 탄원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의외였다. 서라벌에서 노신 거칠부가 왕의 칙서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도솔지왕은 천천히 칙서를 펼쳐 들었다. 대가야국을 폐하여 대가야부로 하며 대가야부는 임시로 거칠부가 맡아 볼 것이라 씌여 있었다. 그러니 대가야 속왕 도솔지왕의 간절한 탈속(脫俗) 탄원을 허한다는 것이었다. 


  월광에게 늙은 대가야의 두 사람이 달려왔다. 양승과 아량이었다. 

  “대왕 폐하. 모든 처음은 다 그리 어려운 법입니다. 마음을 굳건히 하시고 뜻을 돌이키소서.”

  “대가야를 정령 폐하시면 대가야는 앞으로는 절대로 열릴 수가 없나이다.”

  월광이 눈물로써 화답했다.

  “대가야는 이미 문이 닫혔소. 진흥제는 이 땅에서 복야(復倻)가 일어날까 그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잠재우

  려, 나를 잠시 이 자리에 둔 것뿐이오. 이미 가야는 배를 뒤집을 수 있는 격랑의 강물이 아니라 진흥제가 배

  를 띄우고 그 위에서 평안히 잠도 청할 수 있는 잔잔한 호수가 되었소. 다 내 잘못이오. 나를 막아서지 마시

  오.”

  “지사들을 모으겠나이다.”

  아량의 말에 월광이 서글픈 미소를 띠었다.

  “애꿎은 대가야의 백성들만 고달프게 될 것이요. 내 마지막으로 서라벌에 대가야의 백성들도 서라벌의 백성

  들과 같은 신라의 백성으로 대해 달라는 간청하였소. 진흥제가 들어주시지 않을는지요.”

  월광의 말을 듣고 더는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양승과 아량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우리가 너무 오래 살았나 보오, 아량.”

  “모진 목숨이었소, 양승.”

  아량과 양승이 몸을 일으키자 월광은 가만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허무해 가야궁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모후의 눈물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여인의 미소가 떠올랐다. 어디에 있을까? 연화 공주는 또 어디선가 나의 소식을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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