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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May 03. 2024

아주 오만한 글, 명품학부모 안내서

14.  세상 돋보기 1


  댓글

  퇴근길에 라디오를 듣는데, 맛집 후기는 이용자의 십 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이 쓴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집을 고를 때, 바로 그 후기를 참조하여 정보를 획득한단다. 맛집 후기의 생산 방식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업체에서 긍정적인 후기를 유도하기 위하여 후기 쓰기 참여자에게 작은 이익을 제공한다. 이에 후기를 쓰는 사람들 또한 작으나마 이익을 공여받는 입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쓰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경우, 해당 음식점을 방문하여 후기와는 상이한, 기대 이하의 경험을 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맛집 탐색은 여전히 다음에도 거의 이러한 ‘후기’를 또 뒤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은 이미 온라인에 의탁하고 있다. 소비와 판매, 정보의 생산과 습득 등 경제적 삶에 있어서나 정보 지식적 업무에 있어서나 우리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삶의 방식이나 기회의 다양성, 정보 습득의 수월성, 정보의 방대성, 대중성이 보편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정보 시대라지만 우리가 취득하는 정보는 정제되지 않은 것이 많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미끼로 오염된 정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거나 정보를 호도하고, 또 이를 대량 유통시켜 진실이 혼란 속에 뒤섞이는 부작용이 심히 우려를 사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세상을 바로 보기가 이전보다 더 어려워진 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의 시대는 그저 수많은 정보만큼이나 거짓된 정보도 함께 풍성해진 시대일 뿐일 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몇 사람(맛집 후기도 경험자의 십 퍼센트 이하의 사람들이 쓴다고 하니까)이 생산한 정보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데 있다. 부족한 맛이, 진하고 풍성하며 감칠맛이라는 거짓된 정보로 게재된 덕분에 적지 않은 대중들이 기대를 부풀린다. 그리고 줄지어 맛없는 맛집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가 또다시 실망만 다시고 그 음식점을 나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라 불리는 우리들은, 다음번에도 또다시 다른 맛집 후기를 뒤적거리고 있을 거란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맛집 블로그만 뒤지다가,  맛없는 맛집에 익숙해지다가 정말로 우리의 음식들이 저급해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러다가 후기를 구걸하지 않는 진짜 맛집이 모두 문을 닫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맛집 하나 만의 문제라면 처방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 조작된 정보, 기만의 정보 등이 우리 사회 전반에 횡행하고 있다. 사람들의 소비 성향을 자기들 맘대로 분석한 알고리즘 광고, 자신들의 정치 철학에 대중들을 가두려는 유튜브 동영상 링크가 휴대폰 메시지로 내 손바닥까지 찾아온다. 인구수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가졌다는 우리 국민들이 양극단(보수와 진보)의 앞잡이(?)들이 생산해 내는, 조잡하고 악랄하며, 왜곡되고 편협한, 그러나 끊이지 않는, 장맛비처럼 엄청나게 생산된 쓰레기 수준의 디지털 정보에 수준 높은 교양이 다 오염될 지경이 아닌가.  무시무시한 사이버 범죄, 해킹, 정보 조작, 정보 통제..., 과연 우리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보다 순수하고 풍족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종종 진짜 맛집을 안다며 앞장서는 사람의 어깨가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의 안내가 후기를 몇십 줄씩 가지고 있는 맛집보다 훨씬 만족스러울 때가 있다. 감사한 경험이다. 다만 씁쓸한 것은 이와 같은 진짜 정보가 폭증하는 맛집(?) 댓글 정보에 묻혀서 점점 더 잊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맘 카페  

  학부모들끼리의 사이버 모임방 맘카페가 어느 곳에서나 뜨거운가 보다. 여느 sns처럼 부작용도 적지 않은가 보다. 인터넷 카페엔 신체는 집에 있은 채 의식(?)들만  드나들면 된다. 맘카페가 학부모와 교사 간의 자녀 교육을 위한 진지한 대면 상담이나 전화 상담을 대체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맘카페엔 교사가 없다. 맘(mom) 카페에서 맘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다. 교사를 배제하고 맘(mom)과 맘(mom)과 맘(mom )들이 의견을 나누고, 소식을 들여오고, 소식은 이야기로 가공된다. 이야기가 그야말로 맘 편(?)하게 펼쳐진다. 맘 카페에서 어느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맘들의 적의(敵意)를 입는다. 맘 카페에서 선생님들은 서로 비교되고, 이유도 모른 채 분노를 사기도 하는가 보다. 카페에는 때로 정의로운(?) 기사가 나타나곤 한다. 팽배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학교를 바로 세우고 교사를 꾸짖어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일도 생겨나는가 보다. 온라인 카페를 나와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연결한다. 아동 인권을 대리하는 학부모로서 ‘선생님의 큰 목소리도 꾸지람도, 아동학대 사항 아니냐’ 며 법률 조항을 손톱으로 꼭 누른 채이다.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이가 불편해하니 아동 학대 사항이 아니냐'고 따져 묻는 학부모의 말투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담임교사는 난감하다. 교실에서 아이들 사이에 공감되었던 지도 사항이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과 달라진 학부모의 언어 때문이다. 아동 인권에 관한 법리 조항에 저촉되지 않는 것인가 따져 묻는 학부모의 문책(?)에, 반성과 용서와 회복의 교육적 의미를 진술하던 교사는 더욱 위축된다. 법리적 정의를 일깨워주려는 학부모는 득의만만해진다. 오늘의 통화 내용이 맘 카페에 올라간다. 그리고 이 글은 순식간에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다. 댓글이 부지기수로 달리며 맘 카페가 새로이 소란스러워진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잘못의 정도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쉬움이 크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자녀 교육을 위한 소통과 상담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학부모 카페엔 교사가 없다. 학부모 카페엔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테이블은 없다. 맘(mom)과 맘(mom)들만이 인권 법령의 힘으로 학교를  일깨우자는 결의만 점점 더 높아져 간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학생들과 이해와 나눔과 친교와 우정을 가르치는 동안, 법리, 법률의 언어를 벼린 학부모들이 교사들은 무섭다. 교사들은 무서워진 학부모들의 정서 앞에서, '정의'보다 '용서와 화해와 회복'의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라는 말을 아직 용기 있게 내뱉지 못하고 있다. 귀한 말이 아직 교사들의 입 속에 고여 있다. 학부모들의 정교하고 합리적인 논리를 두루뭉실하고 비합리적인 감성의 언어(교육적 철학)로 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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