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로 세상이 떠들썩 했다. 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 사용해 보고 적잖히 놀랐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 놈의 반골기질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마다 ChatGPT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니 그 무리에 끼여있는 내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했다.그러함에도 이와 관련된 일련의 상황들은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ChatGPT가 등장하자 prompt engineer라는 직함이 생겨나고, 누군가는 구글 익스텐션으로, 누군가는 prompt list를 한 곳에 모아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또 누군가는 좋은 prompt를 만드는 방법 등을 강의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정보의 차이를 이용하자 금새 자본화가 가능해지는 모습이었다.
그런 기회의 시장에서 충분히 무엇을 할 수 있을만큼 정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맘은 움직여지질 않았다. 마치 ChatGPT가 만능이나 되는 것처럼 떠드는 소리들이 소음처럼 느껴지고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챗지피티나 미드저니 prompt 사용 결과를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그냥 재미삼아 해 보는 많은 사람들의 작업들에 의해 낭비되고 있을 전력들과 지구가 염려되는게 ‘나’라는 인간이었다. 기술의 수혜를 누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음 한 구석은 불편한 인간, 그게 나였다.
또 하나 분명하게 알게 된 점은 ‘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왜 그런지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그 craze가 주는 느낌이 싫다. 그런 열광에는 항상 버블이 끼이는 느낌이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커리어와 관련해 생각하게 된 점도 있다. 자기 전문분야 혹은 관심사가 있으면 챗지피티 같은 도구들은그야말로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이미 예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각자 자기 분야와 관련해 활용법을 콘텐츠로 쏟아내기에 바빴다. 구독자 수가 얼마 되지 않던 자들도 챗지피티 컨텐츠로 아주 좋은 기회를 맞았다. 엄청난 뷰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도미노 효과를 체감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 도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그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많은 기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 기회들을 놓치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훗날 원하는 것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도록 내 에너지을 응축시킬 수 있는 시간 말이다. 다른 이들이 이 시간에 챗지피티를 통해 어마무시한 성공을 한다해도 그 반열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 이전에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후회할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에게 겨울 같은 시간이다.
나무들도 추운 겨울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자신의 에너지를 응축하듯 나 또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겨울을 보내야 진짜 내가 사랑하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