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세상엔 참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그런 일은 만들어지기도 하고, 우연처럼 찾아 들기도 하는데, 직접 행한 3년 1천권 독서법 같은 경우다. 이걸 직접 해보고도 남에겐 권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창 일 할 나이에 솔직히 하루 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시 내가 가능했던 이유는 처한 상황이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었고, 여건상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가능했던 일이다.
사람들은 독서법을 배우며, 독아(讀我), 나를 읽고, 다독(多讀), 많이 읽고, 남독(濫讀), 다양하게 읽고, 만독(慢讀), 느리게 읽고, 관독(觀讀) 관점을 갖고 읽고, 재독(再讀), 다시 읽고, 필독(畢讀), 쓰면서 읽고, 낭독(朗讀), 소리 내어 읽고, 난독(難讀), 어렵게 읽고, 엄독(淹讀), 책을 덮어가며 읽는다지만 이게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마찬가지다. 솔직히 그 많은 독서법을 두서없이, 줏대없이 다 따라 하다간 아마 배가 산으로 갈지도 모른다.
가르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주장이 말 된다고 생각해 믿고 하는 일이겠지만 경험치가 쌓이면서 특히 독서에 관해선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다는 걸 깨닫는다. 속독법만 해도 그렇다. 퀀텀 독서법, 패턴 인식 독서법, 플랫폼, 초 독서법 등은 다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고 자신있는 방법이겠지만 잘못 길들여지면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을 것처럼 책 읽기가 불편해진다.
그래서 항상 독서법의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기교보다 생각이다.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고민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런 저런 잔재주로 책 겉만 핥다가 그냥 지식 나부랭이 몇 가지 얻어 내고 끝내선 안 된다. 우린 책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평생 반려자를 고르듯 말이다.
처음부터 책 읽기가 맛난 음식처럼 입에 착착 감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상컨대, 처음엔 다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맛이 날 거다. 어떨 땐 ‘웩~ 이게 뭔 맛이야.’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진해야 한다. 하나씩 진심을 다해 읽으면 우리의 진심이 책에 닿을 것이다. 생각으로 하고 기교에는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같은 재료라도 어떤 정성을 가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른 음식이 만들어지듯, 같은 책도 어떤 정성으로 읽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다르다. 내가 아는 독서는 그렇다.
이 진심(眞心)이란 걸 독서에도 적용해보자. 한 줄을 정성껏 진심을 다해 읽으면, 다음 한 줄이 여러분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한 문단을 읽고, 한 페이지를 읽으면 다음 페이지가 웃음을 보낸다. 이것이 이내 한 꼭지가 되고, 한 권의 책이 되어 선물처럼 다가온다. 읽으면서 진심과 정성이 가득했다면, 그 한 권의 책은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줄 것이다.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연인처럼 말하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알게 된다. 그리 느꼈다면 그 마음이 원하는 방식대로 읽어주자.
오늘도 난 벤치에 앉아 감성 가득한 에세이를 읽는다. 바람 하늘하늘 불어오는 리듬에 맞춰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은 느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비교적 어렵거나 난해한 책은 한 번 책 전체를 훑어 읽은 후 정독을 하거나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 숙독한다. 실용서의 경우엔 건너뛰며 발췌독을 한다.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하는 방법, 이미 당신은 알고 있다. 책을 진심으로 사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