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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야 Jan 10. 2023

나의 작은 노란 공주님

아동미술학원일지



어쩐지 도통 제 기분을 알 수 없는 표정에

맑은 눈동자로 항상 나를 빤히 쳐다본다.

자신을 바라 봐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그런 얌전한 8살 여자아이였다.


가만 보면 별다른 부탁도 요청도 없었다.

그저 내가 이렇게 하면 돼, 가르쳐 준다면

그것이 맞겠거니 조용히 따라와 줬다.

별 다른 소란도 없었고 그렇게 조용히 수업 마무리 하고 떠나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학기 중 내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고민하던 중 아동 미술 학원 선생님을 하게 되었다. 20살부터 해온 보조가 어느덧 전임 강사까지 이르렀다. 이곳은 단순히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벌써 근무한 지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보통 수업을 시작하게 되면,

모두 집중하고 자리에 앉기 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유독 그날 촐랑거리는 친구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마 짚을 지경이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의 밝은 미소와 에너지가 마냥 좋았다 제일 활발한 친구들이 많은 수업 시간에 오는

나의 작은 노란 공주님은 먼저 나를 기다리는 친구였다.


원내에 한 둘씩 그렇게 조용한 친구가 등록하게 되면 별 다른 소통 없이 불만이나 문제가 생겨도 조용히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 어려워했던 적이 많았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늘 곱게 묶은 양갈래 머리,

항상 옷이나 리본과 같은 액세서리에

노란색이 하나씩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어머님의 취향일까 싶었다.


그러나, 이내 너의 세상도 그런가 보다 하고

처음 만나고 바로 몇 달 만에 알 수 있었다.

하얀 도화지에 항상 노란 무언가가 있었고 어쩐지 기분이 좋은 날이라면 배경이 온통 노랬다.

늘 물어본 질문에만 대답하는 친구였기에 내가 더 다가가게 만들었다. 꼼꼼하고 조용한 만큼 수업도 잘 따라와 줬고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나 수업이 어려웠을지, 흥미로웠을지 도통 알 수 없는 맑은 두 눈동자가 아직도 어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처음으로 내게 건넨 질문이 있었다.


“선생님은 무슨 색을 제일 좋아해요?”

그날은 무채색과 포인트 색상 한 개를 골라 그리는 단색화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늘도 유독 어둡고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노란 우비와 우산을 가져온 그 아이가 퍽 귀여웠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다가온 질문은 나를 당혹시켰다.

내가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

나는 무엇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는가

마치 내가 내 삶을 살아가면서

너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묻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너는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다 알고 있는 듯 마냥 행동하는가 뭐랄까 중요한 경고 같기도 했다.


분명 별거 아닌 듯하게 던진 조약 돌였는데

수 차례 물수제비가 되어서 내게 돌아온 날이었다.

그렇게 계속 맴돌았다.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가

그래서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선생님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 라고 하며 그저 웃어넘겨야지 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너였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하원하는데

넌 날씨가 쌀쌀해져서 겉옷에 우산에 우비에 챙길게 참 많아 정신없는 사이에 내게 다시 다가왔다.

혼자 알아서 잘 챙겨 입는 너였기에 다가온 네가 당연히 도와달라고 혹은 인사하려고 내게 말을 거는 줄 알았다.


“선생님은 분홍색이 제일 잘 어울려요.”


종종 아이들은 내게 마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난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이었다.

원내에서 나는 “분홍반을 담당하는 선생님”이었다.


어쩌다 한 두 번 정도 분홍색 니트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걸 기억했나 보다.


내가 모르는 나를 어린아이가 찾아서 꺼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검은색이 잘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었나 보다.

어쩌면 선생님이 꼭 내게 잘 맞는다고,

나를 다독이는 작은 위로 같았다.


누군가를 꾸준히 관찰해본다는 것도 내게 큰 배울 점으로 다가왔다.  


넌 꼭 오후 4시 30분 같았다.

막 해가 지기 전,


그렇게 가장 노란 햇빛이 내게 찬란히 스며들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그렇게 똑같이 흘렀는데

저마다 농도가 다르게 자라나 보다.

내 기억 속의 가장 예쁘고 다정했던

진한 노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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