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식사하면서
요즘 제 머릿속에 맴도는 싯구입니다.
맞습니다.
위 시는 모두 학창시절 여러 번 암기해봤을 법한, 한문학자이며 역사학자이신 위당 정인보님이 쓴 시 慈母思 중 한 수입니다.
‘補空’은 돌아가신 분의 시신이 관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채워 넣는 물건으로 옛적에는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이 주가 되었습니다.
아주 옛 시인만큼 상황은 다를지라도 요즘 제가 자주 뇌까리는 이유는 가엾은 우리 어머니 때문입니다.
동서양에서 숫자 3은 행운을 상징한다지요.
전 축복 속에서 엄청난 행운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신 당신들은 좀 쉬셨으면 하련만, 아직도 자식들에게 더 줄 것이 많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농사일이야 그만둔지 오래지만, 그 이후에도 어머니는 구순이 다가오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주말농장에서 조그만 푸성귀라도 거둬 저희에게 주려고 애쓰십니다.(어머니는 91세, 이 글은 오래 전에 썼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유족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요즘은 아파트관리비부터 기본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 비용부터 여러 가지 공제될만한 것을 고려하면 어머니의 생활규모를 알 수도 있겠습니다만, ‘안 쓰기’로 버티는 상황에서 도무지 어머니가 당신을 위해 쓰시는 돈이 있기나 한 것인지 짐짓 궁급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야 근검절약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호탕한 당신의 성격으로 그때그때 경제적 지출은 비교적 많이 하셨지만, 어머니는 평생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 오셨습니다.
고향을 찾은 제가 어머니와 겸상을 할 때면, “범석아! 이것은 작년에 말린 시래기로 만들었고, 이건 양파 엑기스로 만들었어... 맛있지? 돈 하나도 안 들었다”
물론 맛있지요. 지상 최고의 손맛이지요.
평소 저희집 작은 밥공기마저 설렁설렁 채워 먹는 저이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최고의 손맛을 맛보는 그 이상의 식욕과 무쇠라도 소화시킬 기세로 아주아주 맛깔나게 먹어야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누룽지가 기다리고 있지요.
돈 안 쓰는 것이 미덕이고, 큰 자부심이신 우리 어머니.
지금도 자식을 위해 도토리 한 개 두 개 모으는 즐거움 속에 푸욱 빠져계신듯합니다.
한번은 저와 제 아내가 어머니 동네를 걷다가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전국적으로 소문 난 순대를 사다 드린바 있습니다.
어머닌 맛있게 드셨고, 그날 저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얘기의 핵심은 맛 있는 것도 사드시고 주변분들과 사귀는데도 돈을 쓰시라고 했습니다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당신이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으는 것에 대해 신세 한탄은 커녕 오히려 기쁨과 함께 행복마저 느끼고 계시니까요.
마치, 통장에 입금 記帳되는 것을 보는 기쁨이랄까요.
저희 어머니에게는 묵은 공책이 있습니다.
그 공책에는 옛날옛날 저희 집이 아주 어려웠을때 어머니께서 새벽시장에 시금치며 상추며 배추 그리고 알타리무우 같은 것을 팔았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새벽시장에 나가시는 어머니의 짐을 차에까지 태워드리고 학교를 다녔으니 그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압니다.
짐짓 50킬로짜리 마대 두 개 또는 서너 개.
그것을 들고 또는 이고 시장 2층까지 오르내리셨으니 손가락이 휘고 목뼈가 제대로 못 버틴거죠.
그래도 당신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행복하시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 사회에 ‘제공’한 저희 3형제는 나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두루두루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자식며느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고, 일곱 손자들도 무럭무럭 장성하고 있으니 그렇답니다.
이러한 어머니가 급기야는 손자들의 생일을 파악하셨답니다.
지금까지는 손자들이라고 해봐야 별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이제부터라도 생일은 챙길거라면서요.
그래서 저는 바꿨습니다.
“어머니! 그래요. 어머니는 행복하신거예요. 앞으로 더 좋은 일만 보게 될거예요”
“난 괜찮아. 잘 지낸다. 내 걱정은 마”. 저와의 전화통화 끝맺음을 맺는 상투적인 말씀이십니다.
“나같이 행복한 늙은이가 어디 있냐?”. 제가 어머니를 찾아뵈면 하시는 틀에 박힌 말씀이십니다.
저는 어느새 어머니의 自足함의 위세에 눌려, 행복을 강요하고 고문하고 있었습니다.
자 그럼 전 이런 초긍정 마인드의 어머니와 헤어질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머니를 찾아뵐때마다 맛난 것도 사드리고 여러 가지 하고 싶습니다만, 어머니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당신이 좋아하시고 좋아하실 수도 있을 그런 일을 하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얼마 전부터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두 배 되는 밥이라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은 기본이구요.
얼마전부터는 어머니와의 스킨쉽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손가락이 휘셔서 신경이 마비된 관계로 손이 시렵다며 장갑을 끼고 주무시는 것은 본 뒤로부터는 가끔 손가락을 주물러드립니다.
어머니와의 식사가 끝난 뒤로는 “어머니 여기 앉아 보셔”하고 어머니를 앉히며 어깨를 주물러드립니다.
그냥 앉아 안마를 받으시던 어머니께서 얼마 전 꽤 좋으셨는지 “아이구 시원하다” “너는 어찌 이리 손이 따뜻하냐”를 연발하셨습니다.
드디어 준비되었습니다. 어머니도 환갑된 아들의 안마가 얼마나 시원한지를 느낄 준비말이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몇해 전부터 제 생일이면 어머니께 전화드릴 때, 큰 소리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그런 표현을 매우 좋아하시는 듯합니다.
이제부턴 버전을 바꿔가며 또다시 말씀드리렵니다.
그리고 또, 그간 편지나 휴대폰 문자를 통해 “사랑합니다”고 고백한 적은 있습니다만 어머니께 그것도 면전에서 직접 내뱉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해보렵니다.
안마는 이미 시작한만큼 제가 흔들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응원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