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브레메사

메인디쉬 ; 수다 그리고 게임

by 페트라

소브레메사란 식사를 마친 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스페인의 식사문화를 뜻하며, 요즘에는 이 이름을 딴 파인다이닝 음식점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많은 가정들이 저희보다 행복한 식사문화를 가졌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습니다.

소브1.jpg


저는 아이들이 셋 있습니다.

옛날 저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그다지 대화가 많은 집이 아니었고, 특히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직장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애환도 생기고 좋은 경험도 생기면서 각자 나눌 얘기가 늘어났습니다.

더욱이 저희 아이들은 아빠엄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식사 후 각자 방으로 흩어지지 않거나, 가정 분위기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을 구입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 제가 많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식사는 끝나가고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때로는 포크는 임무를 다했지만 이들은 은퇴를 거부하고 계속 남아 주인들의 뒷담화를 쫑긋하고 듣습니다.




얘기 내용은 세계정세에 대한 것부터 직장에서 있었던 일, 최신 트렌드, 최근 읽은 책에 대한 내용, 아들과는 삼국지, 프리미어 리그 같은 내용 등 주제를 한정할 수 없는 많은 분야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각자 직장에서 퇴근한 저녁 시간에는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마친 후 빈 접시를 둔 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리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시간은 토요일 아침에도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아빠엄마와 같이 카페에 가자고 제의하여 그 곳에서 또 못 다 나눈 얘기를 마저 합니다.




이러한 얘기를 조카에게 해줬을 때, 조카가 하는 말이 “아빠엄마랑 그런 얘기를 나눈다고요? 예능이네요”라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저희 가정에서는 예능이 가능하네요.

몇 해 전부터는 아들이 보드게임을 지속 구입해 왔는데, 현재 저희 집에는 <아줄>, <스플랜더Ⅰ>, <스플랜더Ⅱ>, <카탄>, <쿼리도>, <모노폴리>, <루미큐브> 같은 10여 가지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위와 같은 게임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소브루미.jpg

이쯤되면 밥먹자는 것은 뒷전이고 수다나 게임이 메인디시가 됩니다.

소브스플.jpg

아이들이야 퇴근 후 동료나 친구와의 만남, 집에서도 혼자만의 ‘더 좋은’ 시간을 가지고 싶겠지만 이를 양보하고 기꺼이 말도 잘 통하지 않을 법한 부모와의 대화시간을 가져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닙니다.




저희 부부도 노력은 합니다.

저는 작은 노력이고, 제 아내는 큰 노력을 합니다.

저희 집 아이들은 퇴근 후 계획을 ‘집묵’ ‘밖묵’으로 가족톡방에 남기곤 합니다.

집에서 밥을 먹는다든지 밖에서 먹을 계획이라든지 말이죠.

모든 가족들이 ‘집묵’ 하게 되었을때에 제 아내는 특별한 요리로 파인다이닝을 이끕니다.




풍성한 식탁이 이야기하기 좋은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지요.

또 여러 가지 드립커피, 캡슐커피나 각종 차를 준비하여 얘기하고 싶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저의 작은 노력은 신세대들의 관심사 등을 알기 위해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를 열심히 보는 것입니다.

그 커뮤니티를 보면서 나름 신조어를 알 수도 있고, 가족간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데 참조가 되기도 합니다.




소브레메사!

이 것은 행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너무 거창하고 추상적이고 엄청나게 큰 결정체로 잘못 여기고 있어 그 것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고 지금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엄청난 결정체가 아닌 각각 흩어진 무수한 조합, 특히나 가장 사랑하는 내 가족들과 같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 작은 순간과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바쁜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종종 식사를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생리적 필요로 생각하며, 빠르게 해결해야 할 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브레메사는 단순한 식사만을 나누는 것이 아니고 상호 공감대와 유대감을 통한 돈독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게 해주는 문화입니다.

소브파인.jpg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지요.

우리의 삶 속 작은 순간, 그리고 놓치기 쉬운 시간들에 고이고이 숨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지친 맘과 몸을 식탁 위에 널어 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파인다이닝을 하는 것, 그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확행이 아닐까요.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4화안마할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