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질도 습관
저의 이전 글 ‘완벽해야 좋은 것인가’에서 썼던 내용입니다.
완벽해야 좋은 것일까요?
칠칠맞은 저에 대한 변명이기도 합니다마는, 많은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빈 틈이 있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유명인이 실수하면 인간적이라고 보는 것은 왜일까요.
“그래. 저 사람도 나 같은 인간이야”라는 심리가 작동한 것입니다.
인생은 수많은 실패나 실수를 거듭하며 완성해나가는 대하극이라 할까요.
이 대하극을 즐기며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패나 실수에 대해, 특히 나와 가까운 이의 그것에 대해 관대해져야 합니다.
“너, 그렇게 하려면 하지 마”라며 나 자신의 부족함을, 또 나의 가까운 사람의 실수를 나무라기보다는 관대하게 나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도 해보고, 남을 칭찬해보십시오.
파스칼은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오늘의 문명은 존재하지 못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칭찬을 받았을 때 창조욕이 생겨납니다.
칭찬 덕분으로 침묵이 소통으로 변하는 것을 떠나, 왁자지껄한 현장으로 변한 친구의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제 친구 D는 딸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를 나가는데, 엄청 긴장했답니다.
그 친구 성격이 너무 쾌활하여 모임을 주도하는 성향인데도 그랬답니다.
서먹서먹한 상황을 달래기 위해, 딸로부터 미리 들은 사윗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여 “이런 훌륭한 아들을 저희 집안에 보내주시어 감사합니다”라고 교과서적인 인사만 건넸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똑같이 긴장하며 거의 말이 없던 사돈측에서도 갑자기 말문이 터지며, “같이 휴가 갑시다”라는 말부터 서로의 칭찬이 오가고 박장대소가 이어지며 상견례의 서먹함보다는 오래 된 친구들이 만난것같은 수다(?)의 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칭찬은 침묵을, 또는 서먹함을 변화시키는 ‘아이스 브레이커’만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만들기도 하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방송 출연자의 자백(?)을 유도하여 프로그램의 흥미를 더하게 됩니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를...
심리학자 마틴 샐리그먼은 "자신감 희망 신뢰 칭찬 등과 같은 긍정 정서는 삶이 편안할 때가 아니라 시련이 닥칠때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끔 아쉬운 경우를 봅니다.
비용이 들지 않는 칭찬, 마음껏 하고 살아야겠네요.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 오늘부터 만나는 모든 분들의 칭찬꺼리를 찾아야겠습니다.
행복이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듯이, 칭찬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입에 달고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