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똥손으로 브런치 글을 씁니다

by 페트라

저는 똥손입니다.

그 것도 파워똥손이라니깐요.

제가 먼저 스스로 사용한 저 스스로를 규정한 표현인데, 이제는 자타가 구분하지 않고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똥손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글씨부터 그렇습니다.

제 글씨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글씨인 듯하여, 학창시절 동안은 이를 고쳐보려 몇 번이나 펜글씨 학원을 다녔는 지 모릅니다.

글씨가 고쳐질 때쯤되면 개학을 해버리니 항상 도루묵이 되고 말았지요.




똥손 범서기가 그림을 그리면 눈사람이 분노할 정도이고, 요리를 하면 맛보는 이에게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하고, 행여나 뭘 고치려들기라도 한다면 다시 살 각오를 하고 덤벼들어야 합니다.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전구 갈아 끼우고, 건전지 교체하는 일 외에 난이도 있는 일은 아예 손사래를 칩니다.




손재주란 단어는 제 사전엔 없습니다.

그런 제가, 2025.3.11부터 글을 씁니다.

그 것도 다름아닌 브런치에 말이죠.

전국노래자랑같은 '전국똥손자랑'은 없을까요.




“글 좀 써보셨나요?”

2025.3.11은 아무런 일도 없는 평범한 날이었지만, 제가 과장해서 규정하자면 이런 날입니다.

B.C와 A.D가 나뉜 날이고,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게 된 날, 제 인생에 있어 비포와 애프터를 그은 날이라면...

하여튼 그렇게까지 평가할 수는 없을지라도 퇴직 이후 브런치는 저의 시간과 공간(저는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있어’ 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ㅎ)을 채워주지요.




그리고 진짜로 저를 만족시킨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제가 제일 잘 하는 일이죠.

키보드 앞에 앉아 ‘한글’을 켜는 순간이면 저의 뇌는 어느새 출장을 다녀와 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지나 온 시간을 추억하게 되고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자유로운 춤을 춥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말합니다.

“나, 마감일이 있는 사람이야”

제 브런치북은 매주 화요일 발행합니다.

‘다음 주엔 뭘 쓸까’라고 가끔 고민을 하게 되지만, 압박감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면요?

이게 은근히 재밌거든요.




더구나 글 발행 이후 구독자수나 라이킷 심지어 댓글이 달리면 희열감도 두둥실 떠다니게 되지요.

제 글이 모르는 이에게 인정받고 타인의 감정을 움직이게 했다는 것은 정말이지 즐거운 일입니다.




흔한 표현으로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지요.

그러나 제 그릇은 곱게 빚은 도자기가 아니고 가마터에서 도기장이가 버릴만한 실수작이 많습니다.

때로는 쩍 갈라져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글에 누군가 공감하고 웃어주고 라이킷도 눌러 줍니다(정말이지 브런치 작가님들은 천사들입니다).

그럴 때마다 너는 생각합니다.

“아… 사람들, 참 따뜻하다. 아니면 취향이 이상하던가”




똥손 범서기는 다짐합니다.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구요.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멋 부리지도, 기교 부리지도 않기로 말이죠.

그냥 하루를 보내고, 밥 먹고, 배설하고, 운동하고, 일 하는 그런 일상을 담는 것이죠.

'일상 에세이'를 모토로 삼은 이유입니다.




제 글에 양념이라도 한다면, ‘조금의 위트’‘조금의 정보’라도 더하고 싶을 뿐이죠.

누군가는 시시하다고 하겠지만, 저에겐 은퇴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글쓰는 범서기의 목표입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이 작가, 문장은 이상한데… 묘하게 재밌네?”



오늘도 똥손은 타박을 받지만 이렇게 항변하며 글을 씁니다.

‘그 똥손으로 브런치 글을 씁니다’


똥손1.jpg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7화도대체 칭찬할 구석이 있긴 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