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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Nov 01. 2023

단어 14

: '담배-고구마' 냄새

가끔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이 내게 냄새 때문에 미안해하시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저 담배 냄새 별로 안 싫어해요". 이렇게 대답해서 못 믿는 눈치면 어렸을 때 얘기를 들려준다.


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에  겨울이면 아파트 단지 입구에 군고구마 아저씨가 왔다. 그렇게 살짝 탄 고구마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더 좋았던 것은 단지로 들어올 때 나는 고구마 냄새였다. 군고구마 아저씨가 매번 오는 건 아니라서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반가웠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이었는데(엄청 추웠던 거 같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다가 군고구마 냄새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군고구마 아저씨는 없었고 어떤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너무 춥기도 했고 무언가 태우는 따뜻한 냄새가 그렇게 느끼게 했나 싶다. 그때부터 담배 냄새를 맡으면 실제로 군고구마 냄새가 난다. 아마도 그 냄새 속에서 그 기억을 찾아내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은 내가 느끼는 이 현상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감각은 신체반응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에서 내 감각은 내 코가 자극되는 것을 해석함에 있어서 "담배 냄새"에 관련한 또 다른 지시 대상(군 고구마)을 불러온다.


지각의 과정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해 보자. 내가 냄새를 맡을 때 어떤 냄새의 다양성을 "담배 냄새"라는 개념 아래 모으고 "담배 냄새가 난다"라고 판단한다. 이 지각의 과정이 신기한 것은 실제로 동일한 담배 냄새는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수한 차이들이 있다. 그러나 지각은 그 무수한 차이에서 그 차이들이 내 의식에 자리할 수 있는 지각의 구조를 생성해 내고 "담배 냄새"를 다른 여타의 냄새들로부터 구분해 낸다.


이러한 지각은 음악에서 사람이 멜로디로 음을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새는 음의 옥타브가 달라지면 그것을 같은 음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반면 사람의 지각에서 '1옥타브 도'와 '2옥타브 도'는 "도"라고 하는 같은 음의 관념아래에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음'을 인지하는 데에 있어서 인간의 지각은 "자극의 절대적 특이성 보다도 상대적 차이를 인지하고 그 '차이의 구조'를 생성한다"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쉬르가 "의미는 긍정적(positively)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negatively)으로 규정된다"라고 말한 것이나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가 말한 뿌리(;동일성) 없는 줄기(;차이) 식물인 "리좀"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담배 냄새"로 돌아와 보자. 이 담배냄새는 이러한 "차이의 구조" 혹은 비유적으로 "다름의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감각의 사실 "나는 담배 냄새에서 고구마 냄새를 느낀다"는 또 다른 기이한 것이 있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담배 냄새"라는 "독특한 멜로디"에서 "군고구마 냄새"라는 다른 구조의 멜로디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아래로 포섭하는 데에 있다.


내가 실제로 "담배 냄새"에서 맡는  "군고구마 냄새"는 "담배 냄새"라는 관념을 촉발한 자극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담배 냄새"라는 관념을 해석하는 데에 개입되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하나의 가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 "감각의 적극적인 해석(이야기의 투영)은 또 다른  감각을 실제로 생성해 내는 것인가?"  


이야기가 감각의 구조에 개입된다는 것은 이야기(Mythos)에 투영된 감정(emotion)이 감각에 개입된다는 말과 같다. 여기서 감정을 뜻하는 emotion은 느낌을 뜻하는 feeling과는 다르다. Didi-Huberman(디디-위베르만)에 따르면 "émotion"은 "me mettre hors de soi" 즉, "나를 나의 바깥에 두는 것"이다. 'É-'는 바깥이고 '-motion'은' 움직임, 행위'를 의미하니 말이다. 이러한 통찰과 이야기가 감각에 투영되는 것을 연결해 보자. 특정한 "담배 냄새"는 하나의 감각(sensation)이라면 "군 고구마 냄새"는 이야기이자 감정(émotion)이다. 즉 "담배냄새"에서 "군고구마 냄새"가 나는 것에서 '감정(émotion)'이 '감각(senastion)의 느낌(feeling)'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 '느낌(feeling)'이 '감각(sensation)'을 생성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담배 냄새에서 군 고구마 냄새가 나는" 현상은 감각의 구조가 형성됨에 있어서 "이야기"와 "감정"이 개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내 개인적이고 독특한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각 자체가 어쩌면 얽기 설기 엮인 이야기의 구조이고 우리의 언어와 신체는 그 오래된 이야기를 감각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움직이고 경험하는 모든 독특함은 새로운 감각을 써 내려가는 행위일 것이다. 또한 감각은 더 이상 수동적인 수용의 의미가 아닌 적극적인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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