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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Nov 20. 2023

단어 15

: 숨

모모에서 베포아저씨가 했던 말을 기억하자. 길 전체를 보아서는 안된다. 비질 한 번 하고 숨 한 번 쉬고 비질 한 번 하고 숨 한 번 쉬고.

비질과 비질 사이의 숨 쉬는 시간은 시간이 아닐 것이다. '시간-사이'일 것이고 따라서 '시간-바깥'일 것이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한것 처럼 영원이 기입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이렇게 한 걸음 걷고 숨을 쉬고 한 걸음 걷고 숨을 쉬자. 내가 걷는 걸음이 아니라 걸음과 걸음 사이에 숨으로서 진정으로 내가 깃들 수 있음을 기억하자.


“모모야, 나는 아주 긴 도로를 맡을 때가 많단다. 그럴 때면 너무나 아득해서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야.”

  그는 잠시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앞을 보고 있다가 곧 말을 이어간다.

  “그럴 때 서둘러 일을 시작하지. 점점 속도를 더해 가는 거야. 이따금 눈을 들어보지만 언제 보아도 나머지 도로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지. 그러므로 더욱더 기를 쓰게 되고 불안에 사로잡혀 버리는 거야. 그리고 마침내는 숨이 차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지. 이런 식으로 일을 해서는 안 돼.”

  여기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말을 계속한다.

  “한꺼번에 도로 전부를 생각하면 안 돼. 알겠니? 오로지 다음 걸음 한 번, 다음 숨 한 번, 다음 비질 한 번만 생각해야 돼. 이렇게 끊임없이 바로 다음 일만을 생각하는 거야.”

  다시 쉬었다가 생각에 잠긴 후 베포가 말했다.

  “그러면 기쁨을 누릴 수가 있어. 그게 중요한 거야. 즐거우면 일을 잘 해나갈 수가 있어. 그래야만 하는 거야.”

모모 | 미하엘 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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