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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26. 2024

단어 21

: 글쓰기

시인의 글쓰기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아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아쉬운 대로 철학적 글과 교육적 글의 차이만 적어보고자 한다.


철학적 글은 "의심의 글쓰기'이고 교육적 글은 '확신의 글쓰기'라고 정의해 보자. 이러한 구분에서 출발한다면 철학자에게 '쓰기'라는 행위는 세계에 '이미 쓰인 것'과 자신의 '쓰는 행위'에 대한 의심이다. 반면 교육자의 글쓰기는 '쓰여진 것-지식'에 대한 확신과 체화의 글쓰기다. 지식에 헌신적인 교육자는 자신을 글쓰기와 일치시킨다. 이 둘이 다른 점은 철학자의 글쓰기는 그 목적이 탐구 자체에 있는 반면 교육자의 글은 지식의 전달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탐구는 과학적 의미의 탐구와 다른데 과학은 언제나 탐구의 대상이 앞서 존재하는 반면 철학자의 탐구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 대상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주체로서의 철학자는 자신의 몸과 쓰이는 글자의 나타남 사이의 간격(결국 아무것도 지나지 않는 자리)에서부터 그 탐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그리고 글쓰기는 어쩌면 이 '아무것도 지나지 않는 자리'를 위한 글쓰기일지 모른다). 이 (역설적으로) 단단한 의심 위에 언어는 그 자체로 심문의 대상이 된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내려가는 것은 언제나 명확하게 의심스러운 행위이다.


따라서 철학적 글쓰기는 한 없는 모호함을 함축 im-plication 하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자명하고 쉬운 단어를 잘게 쪼개고 다시 정의하고 의미를 한 없이 늘어뜨린다.  첫 번째의 함축(혹은 점힙 im-plication)은 먼저 말의 경제성과 정확성을 위하여 사용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지연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두 번째의 'ex-plication' '펼침'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설명'이 아닌데 교육적 글 쓰기에서 설명이 '이해'를 위한 행위라면 철학적 기술로서 펼침은 설명에 앞서 '쉽게 읽히는' 것의 상처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 상처는 쉽게 읽히기 위하여 현실 realty에게 재단된 실재 real의 상처이고 따라서 읽기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 철학자의 역할이다.


물론 모든 글쓰기는 현실에 무대를 두고 있고 따라서 아무리 은밀하게 쓴다고 하여도 읽혀지는 것이 염두된다.  따라서 철학적 글쓰기라고 해서 교육자적 설명이 배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교육적 글쓰기라고 해서 철학적 숙고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적 글쓰기가 온전하게 실현된다면 결국 아무것도 쓰이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이 무한하게 길게 늘어진 글쓰기가 될 것이고 철학적 숙고가 없는 교육적 글쓰기는 지식의 프로파간다로서의 기능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적 글쓰기는 '쉽게 쓰이는', '쉽게 읽혀진'것에 대하여 쓰기라는 행위로써 질문하는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적 글쓰기는 지식의 확실성에는 약간의 철학적 여지를 남기되 '쉽게'전달하는 데에 방점이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불필요한 과장과 축소이다. 낯선 단어의 사용은 말의 정확성을 위한 것이거나 의미를 재단하는 것의 조심성에 관한 문제이지 자신의 무지를 감추거나 자신의 지식을 과장하기 위해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글쓰기에 있어서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 의심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모든 의미를 의심하는 것을 멈추는 '기술적 확신'과 쉽게 쓰기의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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