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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Jul 08. 2024

외국에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돌아오니 물건이 너무 많다

2년 전 비우고 비웠던 집, 뭘 비운거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2년을 살고 귀국한지 2주가 지났다. 2년 사는 동안 네 번의 이사로 11평 집에 정착하면서 꼭 필요한 물건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위해 짐 정리를 하는 내내 바빴다.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주방용품, 청소기 등 생활 가전, 이불 등)은 캐나다에 2년 살러 오는 가족에게 일괄로 넘겼고, 캠핑용품과 악기들은 한인 중고거래 단톡방과 한인 카페를 통해 처분했다. 한국 가서도 입을 옷과 사용할 물건들은 배로 옮기는 비용(35kg짜리 박스 당 12만원 +통관비용)과 중고거래 후 새 것을 사는 비용 등을  비교해서 한국으로 보냈다. 2년 전 배로 10박스를 가져왔는데, 이번에 귀국할 때는 5박스를 보냈다. 2년 동안 미니멀리스트가 되었고, 옷도 많이 비워서 몇 박스나 한국으로 보낼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꼭 쓸 물건만 담아도 5박스가 나오는게 의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10박스 20박스씩 보낸다고 하니까 우리 부부의 짐이 적은 것은 맞지만 그래도 많구나 싶었다.


  그렇게 출국할 때처럼 힘겹게 귀국 준비를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35도의 무더운 날, 당장 쓸 물건과 여름 옷을 담은 1개의 이민 가방과 2개의 캐리어, 1개의 배낭과 함께. 그리고는 2년 전 남겨 둔 짐이 있는 새 집에 들어섰다. 임산부의 몸으로 한국의 더위를 2년 만에 겪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2년 전 집을 다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설 때의 눅눅하고 뜨거웠던 공기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2년 전의 짐은 시부모님이 이사를 해주셔서 새로운 집으로 옮겨져 있었지만, 익숙한 가구들과 변함 없는 여름의 온도에 모든 것이 똑같이 느껴졌다.


  더위에 지쳐 씻고 옷을 갈아입고 대충 끼니를 하고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비몽 사몽 간에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포장 이사 되어 있는 새 보금자리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우리 부부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짐이 적은 편이라 포장 이사 견적도 저렴했는데 대체 이 많은 물건들은 무엇인지. 분명 2년 전 100명의 사람들과 중고 거래를 하면서 당근 온도는 치솟았고, 양가에 쓸만한 가전들을 드렸고, 우리가 쓸 물건은 캐나다로 보냈고, 2년 동안 미니멀한 사람이 되어서도 남은 물건은 배에 타길 기다리며 캐나다에 남아있는데 말이다.


  주방 수납에는 10잔도 넘는 와인잔들이 크기 별로(레드와인잔, 화이트와인잔, 스템리스 잔, 샴페인잔), 머그컵, 도자기 잔, 주스 마실 때 쓰던 잔, 물 마실 때 쓰던 잔 등이 빼곡했다. 코렐의 밥그릇과 국그릇, 도자기 소재의 밥그릇과 국그릇과 반찬접시들, 한 때 부지런히 모으던 빈티지 코렐 접시들, 양식에 어울리는 검은 색 도기 접시, 오븐에 들어갈 사각 접시, 동그란 접시 네모난 접시, 길쭉한 접시 등등.. 무늬 없는 하얀 색의 코렐 세트로 2년을 모든 끼니를 해먹으며 지내다 와서 보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식기에 놀랄 수 밖에. 물론 요리가 취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압축팩에 들어가있는 이불과 커텐도 어찌나 많던지. 적당한 차렵이불로 4계절을 다 지내다 돌아오니 여름용, 겨울용, 극세사 있는 겨울용 이불과 평상시의 커텐, 연말 분위기의 커텐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러웠다. 회사 생활을 할 때만 입는 정장과 캐주얼 정장들은 또 어찌나 많던지. 왜 일주일 동안 매일 다른 블라우스와 셔츠, 다른 바지와 치마와 원피스를 입고 살았던걸까? 내게 잘 어울리고 관리가 쉬운 옷 몇벌을 자주 세탁해서 입으면 되었을텐데.



  팬트리 공간과 신발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잡동사니 물건들도 많았다. 다이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물건들, 살림을 편하게 해줄 것 같은 물건들(예를 들면 전자렌지 청소를 쉽게 해준다는 식초를 넣는 플라스틱 인형)이 이곳 저곳에 널려 있었다. 밴쿠버에서는 배송이 10일씩 걸리니 뭔가 사고 싶다가도 당장 쓸 수 없거나 비싸서 살 마음을 접었던 그런 잡동사니들이 1000원 2000원 3000원의 가격표를 달고 널려 있었다.


  2년 동안 적당한 미니멀리즘을 체득하고 홀가분하게 살던 우리는, 20분 안에 모든 집안 청소를 끝낼 수 있었던 우리는, 모든 물건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던 우리는 마치 전생처럼 남겨진 과거의 잔해를 보며 그만 질리고 말았다. 마침 시작된 장마와 함께 새 집에서의 짐 정리가 너무도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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