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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Sep 28. 2024

친정 엄마랑 출산 전 열흘을 함께하며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시간

  조산기로 65일 입원 후 퇴원하는 날, 당장 아기가 나올까? 며칠이라도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설렘보다는 불안한 마음이었다. 퇴원하자마자 바로 돌아와 아기를 만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아직도 안되었고, 세 가족이 되기 전 집에서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조금 더 누리고도 싶었고, 1년 넘게 보지 못한 엄마랑 임신한 시절을 잠깐이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결국 그것을 얻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한 모양새로 내 마음 한 켠을 어렵게 한다. 내려놓기, 받아들이기, 현재를 살기가 마음의 평온을 위해 필요한 태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지 않다.


  퇴원한 날 엄마랑 동생이 병원에 왔다. 남편밖에 면회가 안되어 이제서야 본 가족들은 누워지내느라 두달 새 근육이 다 빠져 느리게 걷는 불쌍해 보이는 만삭의 내모습에 울려고 했다. 나는 애써 웃고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남편과 동생은 두 달 동안의 짐을 이고 지고 이동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가진통이 빈번히 느껴지는 배를 부여잡고 잠깐 쉬다가 만삭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오늘 당장이라도 아기가 나와도 괜찮은 시기까지 입원해서 버티다 퇴원한거라 자궁수축억제제 약을 뗀 후 진통이 바로 와서 아기를 낳으면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만삭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으니 집에서 간단하게 사진을 찍기로 미리 동생과 얘기해두었다. 사진이 취미인 동생은 필름카메라와 아이폰 2개를 들고, 임신 초기 소식을 알리자마자 조카 생각을 하며 샀다는 쪼그만 애기 양말을 가져왔다. 나랑 남편은 캐나다에서 가장 좋아한 폭닥한 파자마 잠옷을 입고, 캐나다에서 사온 역시나 가장 좋아하던 브랜드의 아기 모자와 입체초음파 사진, 애기양말을 늘어놓고 사진을 찍었다. 편안한 우리집 안방 침대 위에서 가족이 사진을 찍어주니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배가 여전히 아파서 10분이라는 시간만 쓸 수 있었지만, 이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입원 중 진통이 와서 바로 아기를 낳아야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이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우리의 마음이 잘 표현된건지 사진은 너무 자연스럽고 귀여웠다.


  그동안 엄마는 집에서 만들어온 반찬들로 집밥을 차렸다. 사실 우리 엄마는 주부로 사셨지만 요리가 정말 싫다고 언제나 얘기해온 사람이다. 나는 25살부터 자취를 했는데, 내 자취방으로 반찬을 보내주시거나 찾아와서 밥해주고 청소해주신 적이 없다. 결혼하고 6년차인데, 신혼집으로 음식을 보내주신 적은 두 번, 찾아와서 살림을 도와주신 적은 한번도 없다. 보통의 친정엄마들은 그러신다던데, 사실 '보통의 친정엄마'라는 것은 '살뜰하고 애교 있는 딸'처럼 사람들의 이상향이며 로망일 뿐 평균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살뜰하지도, 애교있지도 않은 스스로를 보면서도 알았기에 우리  모녀는 독립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잘 지내왔다. 그래서 퇴원 후 엄마가 우리집에 와서 애기 낳을 때까지 있으신다고 했을 때 의문이 들었다. 이삼일만 계셔도 충분한데 애기낳을 때까지 뭐하시려고 그러지? 식사를 매번 챙겨줄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 엄마가 그럴리가 없는데.


  그래서 조산기로 장기입원 한 사람들은 보통 당장 아기를 낳거나, 2,3일만 가진통으로 고생하다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해져 예정일 가까이에 아기를 낳는다면서 움직이기 힘들 2,3일만 계시다 가라고 했다. 나중에 말하길 엄마는 그 말이 너무 서운했다고 했다.


  오늘은 퇴원한지 11일차, 아기가 38주에 접어든 날이다.

그 동안 나는 또 다시 어떤것도 예측하는건 의미가 없다는걸 깨달았다. 자궁수축이 너무 잦아 하루 종일 배와 허리가 아파 끙끙거렸다. 그런데도 진진통이 오거나 양수가 터지지 않아 아프기만했다. 그러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후기처럼 2,3일이 지나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10일 간 괜찮아지지 않고 내내 가진통이 빈번하다. 배도 허리도 아프니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엄마가 계속 머무르시며 살림을 해주셨다.

  매일  아파하며 내일은 좀 나아지려나?아니면 아기를 낳으려나? 생각했지만 나아지지도 아기가 나오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 내일을 생각하는건 아무 쓸데가 없다는걸 받아들였다. 당장 10분 후에도 내 자궁은 더 짧은 간격으로 수축해서 힘들고 아프거나 조금 편안하게 20,30분 간격으로 수축을 했다. 조금 나아지면 조금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내가 오직 현재만을 사는것을 몸으로 겪으며 받아들이면서 이해하고 있는 또 다른 하나는, 타인도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 속단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여도 된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겪은 엄마는 힘든거 싫어하고, 살림 싫어하고, 엄마가 뭘 해주시는것도 좋아하지만 세 딸들이 뭘 해주기도 바라는 사람이다. 6년 전 결혼했을 때, 뜬금없이  나는 애 안봐준다고 선언한 사람이다. 우리는 아기 얘기를 하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밥을 먹다말고 애 낳을 생각도 없고 결혼도 방금 했는데 그런얘길 왜 하냐며 대화를 일단락 했었다. 그런데 열흘을 함께 보내보니, 배아파서 낳은 딸이 외국에서 임신을 하고 귀국하자마자 입원을 한게 너무 안쓰러웠다면서 성심성의껏 나를 돌보셨다.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영양 생각해서 밥을 차려주고, 청소 빨래도 해주고, 내가 누워 쉴때 침대 옆에 앉아 내 배에 손을 얹고 태동을 느끼면서 행복해했다.  결혼 후 6년 간 손주를 기다리지도, 아기를 언제낳냐는 질문을 한적도 없던 엄마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엄마도 나이가 들고 마음이 변하셨나보다.

엄마가 매일 차려준 집밥


나는 장기입원하느라 체력이 남지 않은 우리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를 키워야한다고 생각해서 산후도우미도 길게 예약해두었는데 과거 애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엄마는 사라지고 너무나 귀여울 손주를 상상하며 자주 오겠다는 엄마가 생겨났다. 오면 눈으로만 귀여워하고 귀찮기만 할 줄 알았는데 바지런히 나를 돌보는 엄마를 보면서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엄마랑 오래 수다를 떨었다. 25살에 독립한 이후 엄마랑 이렇게 시간을 많이 보낸 적이 처음인데 그간의 오해도 풀고, 달라진 마음도 나눌 수 있어서 마음이 따뜻했다. 엄마는 나를 통해 과거에 우리를 가졌던 시간을 떠올렸다. 나도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우리는 지금 독립적인 관계에 가깝지만 결국 나는 엄마 배에서 태어났다는걸 이해했다. 퇴원 후 생각보다 긴 시간을 엄마랑 공유할 수 있었다는게 감사했다.


  엄마는 일이 바빠 주말에 잠시 집에 갔다가 일요일 밤에 다시 오신다했다. 왕복 5시간 거리. 꽤 멀리 사는 딸을 보러 다시 내려오신다 한다. 다음주 수요일엔 아기를 만난다. 월요일 화요일에 또 나를 챙기러 와주신다는 엄마. 인생의 여러 시기들을 지나면서 엄마도 나도 변한다. 이제 4일 후면 우리의 삶에 다른 가족이 생긴다.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저 받아들이며, 새로운 사랑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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