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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Feb 15.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여행 가면 꼭 미술관에 들르는 내 마음에 남는 책

  해외 여행 중 새로운 도시에 가면 나는 항상 미술관에 간다. 세네시간의 시간을 떼어내어 미술관을 느릿 느릿 걸어다니지만, 사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따로 공부를 하지도 않는다. 미술사에 대해서, 화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아도 바라보는 시간이 그저 좋다. 아름답고 섬세하거나 두렵고 쓸쓸한 그림들을 보고있노라면 화가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나는 갖고 있지 않은 그런 마음 말이다. 몇년동안 고개를 꺾어 천장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나 언제나 외롭고 불안했던 고흐의 그림을 보면 울었다. 무엇이 좋은지를 머리로 인식할 줄은 몰랐지만 그림을 보면 마음에 무언가가 닿았다. 그 감각이 좋아서 미술관을 걸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마치 미술관을 걷는 것처럼 읽혔다. 스물 다섯에 사랑하는 형을 잃고 더 이상 삶을 살아갈 힘이 없어 메크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10년을 예술에 둘러쌓여 지냈던 사람의 마음. 예술에 대한 경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받는 감동과 위로를 간접적으로 느꼈다. 그의 상실감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구멍을 그림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채워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메트의 경비원이 되어 나누는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이 그에게 영감을 주는 과정도, 예술가들이 표현하고 싶던 아름다움과 기쁨과 비탄과 외로움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과 인간을 이해해가는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사람이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을 때 나는 그를 응원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할 그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나의 삶도 응원했던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해왔다.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삶을 살아내는 생각과 감정일텐데 나의 앞에 펼쳐질 시간들도 선명하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 과정에 사랑과 행복이 좀 더 자주 있기를 바랐다. 미술관을 나서면 정돈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아름다운 책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록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


나는 예수의 그림들에서 새롭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찾는 데 관심이 없다. 내가 이해한 건 다디는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


새 종교를 찾지 않았고 자기가 늘 좋아했던 것들을 계속 좋아했다. 그 덕분에 나는 형이 좋아했던 것들에서 뭐랄까, 후광이 비치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보던 야구 경기들은 좋은 경기들이었고 책들은 좋은 책들이었으며 병실을 찾아온 친구들은 좋은 순례자들이었다. 모든 게 단순했고, 모든게 포옹 같았다.

  형은 라파엘로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병실 침대 머리맡에 <검은방울새의 성모>를 붙여뒀다. 디킨스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아버지는 책을 집어 들고 슬프고 웃긴 구절들을 낭독했다. 위대한 예술이 그렇게 쉽게 평범한 환경과 섞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 전까지는 늘 그 반대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에 다닐 때는 대성당 벽에 그린 작품이나 고전이라 불리는 책으로 남긴 위대한 예술은 입을 헤 벌린 채 쳐다보는 것 혹은 눈을 크게 뜨고 뚫어져라 보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난극처럼 숭고한 이야기마저 가깝고 신비스럽지 않은 이야기, 바로 그 병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하려는 시도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모든 의미에서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미드타운의 분주한 행인들 틈에 섞였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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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나는 일주일, 40시간 내내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사회의 사무실 관습에 따라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관습에 따라 책상에서 책을 펼 수도, 머리를 식히는 산책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모두가 그러듯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책을 읽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점점 진흙탕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래지 않아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을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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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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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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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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