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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Feb 02. 2023

제대로 읽는다는 것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문해력에 대해서

최근 긴 문장을 여러 번 다시 반복해서 읽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해야 하는 지경이다. 문장이 조금만 길어져도 집중이 잘 안 되고 종이에 인쇄된 글은 읽어 볼 기회조차 사라졌다. 과거에 나는 독서광이었는데 어렸을 때는 엄마가 책을 못 읽게 하는 것이 벌일 정도였다. 학창 시절에는 도서관에 빚을 많이 졌고, 대학 때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학점을 얻은 일도 있었다. 당시 국문학과 외에는 참여하지 않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공대생인 내가 갑자기 신청을 한 것이다. 그래서 무려 학장님과 도서관장님께서 나를 불러 인터뷰도 하셨다. 당시에 나는 1학점이 급한 상태였고 책 읽는 것은 무엇보다 간단한 일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하였는데 독후감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하여간 그렇게 읽어 해치운 글들이 참 많았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평생 책과 함께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위력과 생업의 피로감은 상당했다. 어느 순간 내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퇴근 후 회식 아니면 잠을 자는 일상이 반복됐다. 무기력증일까. 나는 에너지가 좀 부족한 인간이라 회사에서 매일 기빨리고 나니 내 시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항상 자기 전에 책을 읽었던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스마트폰으로 가벼운 로맨스 소설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문해력과 집중력은 빠르게 무너졌다. 스마트폰에서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읽는 방식은 원래도 약간 빠르게 읽는 나의 성격과 맞물려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내용을 대충 보면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양질의 읽기는 내 생활에서 사라졌고 어느새 30대를 훌쩍 넘어선 지금 이따금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고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허비하다가 작년 말 나는 드디어 마음먹었다.



 '제대로 읽기'를 시작하리라!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독서모임'이다. 그러나 낯가림도 많고 출장도 많은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하는 동호회 활동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 독서모임 한번 해보지 않을래?' 예상과 다르게 친구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었고 모임이 시작됐다. 원래 한 권을 시작하면 한 번에 읽고 끝내버리는 내 독서습관도 바뀌었다. 저녁에 틈틈이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의미 깊은 부분을 태그 해보니 문장을 꼼꼼히 읽게 됐다. 물론 여전히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다는 이 행위가 놀랍게도 낯설지만 다시금 독서에 대한 열정이 피어오르는 듯하다. 조금만 더 빨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독서습관도 몇 년 사이에 와르르 무너졌다. 다시 재건하는 데는 두 배의 노력이 들겠지? 생각해 본다. 그때의 나에게 독서는 어떤 것이었을까? 나에겐 도피처였다. 또래와 소통하는데 서툰 사회화가 덜 된 나는 책을 읽을 때면 주인공에 빙의되어 다른 세계에 있을 수 있으니 책이 제일 친한 친구였다. 그래서 더 독서광이 되었다. 그러니 책을 멀리 했다는 건 다른 도피처를 찾았다는 거겠지. 결국 책 읽는 습관은 내 결핍에서 나왔으니 어쩌면 순수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내가 아직도 완전히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책에 매력에 빠지려는 지금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는데 조금 힘들기도 하다. 자꾸 딴짓을 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나는 퇴근 후 독서하는 갓생 사는 회사원이야'라는 기분에 취하려고 한다. 새 책을 읽다 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지는데 워낙 재탕을 많이 하고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자꾸 불어넣어 주어야 뇌가 늙지 않을 텐데. 전엔 세계명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외국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좀 더 문장이 살아 숨 쉬는 것 같고 작가마다의 특징도 느껴져서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지는 기분이다. 


지금의 바람은 과거처럼은 아니어도 내 마음을 홀랑 사로잡을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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