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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May 18. 2023

제 이름은 '기 준'입니다

근데 이름 부르지는 마세요

내 이름은 '기 준'. 흔하지 않은 기 씨 성에 외자 이름이다. 나는 이런 내 이름이 싫다.

왜 인지는 앞으로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본다. 얼굴이 낯익은 아줌마 한 분이 서계신다.

"얘, 너 이름이 뭐니? "

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다. 지겹도록 반복해 온 이야기를 할 때이다.

"기준이요"

이제 성을 물어볼 테지.

"어머, 기준이구나. 그럼 성은"

역시는 역시다. 살면서 싸인 나의 데이터 속 가장 쉽게 정리되는 대화 패턴.

"성이 기, 이름이 준 이라 기준이요."

툭 내뱉듯 대답하면 이제 되돌아오는 말은

"어머어머 이름이 외자구나. 기씨성은 많지 않은데 이름 안 까먹겠다 얘"



이름으로 인한 귀찮음은 학교에서도 끊이질 않는다.

'Mars, however, has some differences fro, Earth. First, Mars is about - ' 

'이거 이거 다들 졸고 있네, 이 뒤부터는... 보자 보자~ 그래, 기준 니가 읽어봐라'

지휘봉으로 출석부를 쓱 훑던 영어 선생님이 말하신다. 역시나 또 나다. 


이번엔 체육시간이다. 

까만 스포츠고글과 위아래 트레이닝 셋업을 입고 목엔 호루라기를 건 체육선생님이 우리를 불러 모은다. 

"야야 얌마들아 기준을 기준으로 헤쳐 모엿!"

야아 아아아...

"이 놈들이 빠져가지고 목소리 제대로 다시 한다. 기준 구령 안 하냐 "

하 난 또 기준이다. 왜냐면 기준이기 때문이다.

"기 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는 내 방이다. 여기만큼은 내 공간이니-

"야 기준 밥 먹어" 

빌어먹을 형이 벌컥 문을 열고 말하기 전까지는 내 공간이었던 방도 침략당했다. 피곤하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중2가 피곤을 말하냐고 따지기엔 너무 피로하다. 물론 저 빌어먹을 형도 한 몫한다. 

형에게 나는 '야 기준'이다. 물론 형이 '준아'라고 부르면 닭살 돋아 죽어버릴 거지만 그렇다고 '야 기준'이 듣기 좋은 건 아니다. 나는 내 이름이 싫다. 기준이라는 이름은 마치 기준과 원칙을 준수해야만 할 것만 같고 또 제일 싫은 이유는 누가 이름을 물어볼 때 두 번씩 대답해야 하는 것과 수학시간에 심심찮게 문제 풀이에 당첨된다는 것. 나는 눈에 띄는 건 무조건 싫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대체로 싫고 남 앞에 나서는 건 상당히 싫다. 이런 나에게 '기준'이라는 이름은 너무한 것 아닌가. 형은 멀쩡한 '기 윤성'이면서 왜 나는 '기 준'이지? 

이렇게 엄마에게 따져 물었을 때 '준이가 어때서. 엄마는 이쁘기만 한대, 할아버지께서 귀하게 지어주신 이름이니까 소중이 해야지.'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들었다. 나는 나중에 꼭 개명할 거다. 김정훈으로. 유치원때부터 다니던 우리 태권도장 사범쌤의 성함이 임정훈이셨는데(국가대표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 기운을 받을 겸 정훈이란 이름에 가장 흔한 성을 붙여서 김정훈. 흔한이름인데다가 나만의 이유가 있으니 제일 좋다. 물론 아빠에겐 절대 비밀이다. 할아버지 말씀이 법이라고 생각하는 아빠가 알았다간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빈처럼 사람을 시켜 개명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하여튼 난 내 이름이 싫다. 남들은 좋다 하지만 내가 싫은데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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