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 May 18. 2023

제 이름은 '기 준'입니다-2

전학생 큰 김정훈

전학생이 왔다. 무려 이름이 '김정훈'이다. 그 애는 '큰 김정훈'이 됐는데 이미 우리 반 김정훈 A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옆반에 김정훈 B도 있으니 김정훈 C가 돼야 하지만 중2주제에 180에 가까운 키 때문에 '큰 김정훈'이 됐다. 그리고 '큰 김정훈, 통칭 큰 김은 내 짝이 됐다. 나도 꽤 키가 큰 편이었지만 180에는 비빌 수가 없다. 큰 김은 자기소개부터 낯간지럽게 '서울에서 이사 온 정훈이라고 해. 이 도시는 처음이라 많이 알려줘. 그리고 우리 재미있게 지내자'라는 말을 했다. 사내새끼가 자기 이름을 성 때고 부르다니. 그리고 하필 이름이 김정훈이다. 다른 김정훈 A, B는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큰 김은 얼굴도 허옇고 계속 웃고 있는데, 어디가 모자란 애 같다. 

'안녕, 네 이름은 뭐야?' 역시 전학생은 바보다. 명찰에 쓰여있는데.


비가 왔다. 젠장 우산이 없는데. 그냥 체육복을 뒤집어쓰고 뛰어갈라는데 뒤에서 우산이 쓱 들어왔다. 돌아보니 큰 김이다. 

"짝꿍, 내 우산 큰데 같이 쓰고 가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점점 굵어지는 비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산을 같이 쓰고 오는데 전학생이 자꾸만 내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주는 것 같아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키 작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 아닐 거다. 그렇지만 맨 뒷자리의 자존심이 밟혀버린 지금 다 불만스럽다.

"그래서 말인데 짝꿍 너는 말수가 없는 편인 거 같아."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라 전학생을 올려보았다. 그랬더니 전학생이 난감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역시 안 듣고 있었구나."

어쩐지 민망해서 눈을 돌리니 전학생도 별 말이 없다. 버스가 왔을 때 나는 전학생이 버스를 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를 타고 도장으로 가면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아 무슨 사내새끼들끼리 고마워야. 전학생도 신경 안 쓸 텐데 잊어버려야지. 


태권도는 오래된 습관 같은 거다. 사범선생님은 전공으로 나가는 게 어떻냐고도 물었지만, 나는 안다. 내가 국가대표가 될 정도의 재능을 가진 건 아니라는 사실을. 


"쭌~ 정신 안 차리나! 오늘 눈빛이 맛이 갔네 맛이 갔어. 너 저기 빠져서 도구 정리해!"

사범선생님은 절대 나를 기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보아와서 그런지 항상 아기를 부르는 것처럼 쭌이라고 하신다. 나는 약간 낯부끄럽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다. 여기에는 내 이름으로 웃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중학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초등학생뿐이라 내가 최 선임인데, 나는 이미 다 아는 것을 그냥 복습 겸 한다. 다른 초등학생들은 단증을 따려고 열심히다. 가끔 나는 사범선생님과 합을 맞춰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도장에 나와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하다. 재능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생각하지 말자. 도구나 정리하고 오늘은 일찍 집에 가야겠다. 가는 길엔 비가 안 오겠지.


작가의 이전글 제 이름은 '기 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