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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지기 Nov 02. 2024

실수를 줄이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투자 심리 해부학 371 ~ 380


371.

바둑 격언에 ’묘수 세 번이면 필패다‘라는 말이 있다. 또 대응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불리해지면 판을 흔들어 재빨리 역전의 단서를 찾아내는 것, 승부수를 던지거나 기사회생의 묘수를 꿈꾸는 게 보통 사람이다. 절망적인 형세를 일거에 뒤집는 회심의 묘수, 묘수는 패망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백척간두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 힘든 상황을 세 번씩이나 넘었으니 어찌 기운이 남아있으며 바둑에 이기기를 바랄 것인가. 바둑에는 스스로 목을 죄는 자충수, 상대를 벼랑으로 유도하는 함정수, 꼼수, 무리수, 악수, 과수, 덜컥수, 헛수 등 온갖 수들이 존재한다. 서봉수 9단은 이렇게 말한다. “바둑에는 정수와 실수 두 가지뿐이다.” 자충과 무리, 이 두 가지는 실수의 대명사와 같다. 바둑은 실수의 게임이고, 좋은 수가 세 개여도 실수 한 개를 못 당한다. 실수는 실력 부족이 첫째고, 유리할 때의 방심이 두 번째이고, 불리할 때의 초조함이 세 번째다. 새로 바둑의 신이 된 AI는 두 가지를 선호한다. 두터운 수와 선수다. 두터움은 발이 느리고 선수는 발이 빠른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이 이율배반이 AI의 비밀이고 숙제다. 두터움은 “어느 날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으로 것으로 두터운 수는 알면서도 두기 힘들다. 그러나 이기고 싶은 사람은 두터운 수를 두어야 한다. <박치무 바둑 칼럼리스트>

실수를 줄이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하고, 묘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가야 한다. 묘수가 필요한 상황은 무리했다는 의미가 되고 무리는 실수할 가능성이다. 무리하지 않으면 두터워진다. 시장에서도 무리하지 않고, 애매하고 어려우면 기다리고 아닐 때 대응하면 실력은 두터워진다. 묘수가 필요 없는 상황 즉 원칙으로 일관하는 상황을 거듭해서 쌓아가야 한다. 묘수가 필요하다는 자체로 실수했다는 것이고, 원칙이 무너졌다는 의미다. ‘실수할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게 심리의 출발점이다. 돈을 잃는 것 = 심리가 흔들리는 것 = 무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보다는 잃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372.

날마다 투자라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건 수십에서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원칙으로 만들어 강물에 띄워진 자그마한 배를 그저 노 저으면서 너무 애쓰지도, 성급하지도, 희망에 달뜨지도 않은 채로 불확실성과 변동성, 공포와 의심, 끝없는 조롱과 후회의 지껄임을 견디면서 끝없이 안개가 자욱한 강에 온몸을 맡기는 것이 아닐까? 매번 행운과 우연이 작용할지, 위험과 실수의 여지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기에 그저 받아들이면서 아무런 상관없이 우상향하는 쪽에 있다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지 않는다는 지속 가능성의 고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373.

“가격과 가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라. 투자의 성공은 ‘좋은 자산을 사는’ 게 아니라 ‘자산을 잘 사는 것’에서 나온다. 가치투자자에게 투자의 시작은 가격이어야 한다. 투자는 가격이 적당할 때만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이다. 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을 두고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건 의미가 없다.” “가치보다 싸게 사려는 노력이 실패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이다.” <투자에 관한 생각> 

필연의 시간을 이해했는가? 그렇다면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가? 기다림과 대응 과정에서 본래면목을 찾아가도록, 자신을 갈고닦으면서, 날로 나아지면서 투자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의 전제는 건강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끊임없이 돌고, 돌뿐이고, 건강이 무너지면 시간을 다룰 수가 없게 되고 투자는커녕 세상도 끝장나게 된다. 투자자 최고의 미덕은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으로 건강하게, 한 걸음씩 앞으로 디디면서 하루하루를 찬란하게 사는 것이다.          

 



374.

신용거래를 한다는 자체가 자신의 주관을 버리지 못하고 과잉 확신에 차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가 되고, 이미 leverage를 사용한 과잉 확신은 처음에 버리지 못하고 나중에 버림으로써 우왕좌왕 매매 횟수를 늘리다가 결국에는 한방과 꽂힘(자신을 편하게 해 줄 것 같은 자신만의 확신) 그리고 기도(내면은 이 모든 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아니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조급하면 실수를 두게 되니 신중해야 하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두게 되니 과감해야 한다. 정한 원칙대로 기다리고, 자리가 나오면 과감하게 진입해서 흐름대로 대응하는 성급함과 두려움 사이의 中道(중도) 참 어려운 말이지만, 투자자는 비탈길을 오르면서 이 조화로움을 찾아가야 한다.          




375.

개인은 전망 이론에 따라 이익이 발생하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이익을 실현하는 쪽을, 손실이 나면 위험을 감수하고 보유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 이익은 실현하고 손실은 보유하는 처분 효과(disposition effect)는 투자 역량이 부족할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개인은 손실을 실현하게 되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심리적 불편함을 회피하곤 한다. 주가는 모멘텀(momentum) 효과를 가지기에 이익은 짧게, 손실은 길게 가져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필패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개인 심리를 극복하는 익절과 손절이 다수가 가지 않는 길이고, 소수가 되는 길이다. 보유 기간 수익률이 높을수록 청산할 가능성이 크고, 손실이 발생했을 때는 보유할 가능성이 큰 인간의 보편적 심리, 손실의 상황에서 물타기와 버티다가 이익이 발생하자마자 청산하게 되고 실제로 적은 수익률에 만족하고 청산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 최근 수익일수록 위험을 느껴 매도 확률이 높고 자기 위안을 위해 역추세 추종(contrarian) 매매로 장기 투자하는 경향이 높을 수밖에 없는 ‘악의 평범성(다수의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심리로 인해 악행을 자신에게 ’자기 위안‘이란 핑계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게 된다)’에서 벗어나 정확하게 반대로 할 수 있도록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남성은 과잉 확신에 취약하고, 여성은 안전에 대한 욕구로 처분 효과에 취약하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남성과 여성 사이 중성의 길이 존재하지 않기에 시장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없는 길을 내 안에서 만들어가는 게 투자의 본질이다. 시장이 이토록 어려운 건 이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편향을 극복하면서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토끼는 시간이다. 원칙으로 정한 자리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 통제(기다림)를 의미한다. 두 번째 토끼는 공간이다. 지지저항을 보면서 챙기고, 진입하고, 자르고, 갈아타고를 반복할 수 있는 공간 통제(대응)다. 세 번째 토끼가 바로 대충 만들어도 맛있는(물론 그 대충은 오랜 세월이 감각의 기억이기에 대충이라 표현할 수 없지만) ‘엄마의 손맛’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무도, 자기 자신조차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쌓인 감각이다.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게 되면 ‘성실함’과 ‘꾸준함’은 시간과 더불어 감각으로 남아 내면에 스며들게 되고 그렇게 내면의 평화와 더불어 그토록 원하던 부가 쌓여가게 된다.           




376.

낡은 모텔을 달방 위주로 운영하는 허리가 휜 할머니에 관한 얘기다. 재건축 업자가 할머니 모텔이 포함된 블록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해당 블록에서 할머니만 제외하고 나머지 건물주들은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구도심이고 모텔이 너무 많아 수익성이 떨어지고 건물이 낡았기에 누가 보아도 동의하는 게 상당한 이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할머니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그 블록의 재건축 계획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할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너무 철이 없어서 지금 모텔을 팔아서 돈을 쥐여주게 되면 결과가 뻔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라도 쥐고 있어야 나중에 자식들이 이 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며 거절했고, 지금도 할머니는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의 삶에서 체득한 감각’이 없이, 투자자라면 ‘온전히 자기 것으로 승화한 감각’이 없이 원칙과 감정 사이를 오가면서도 행운과 우연이 겹쳐 이익을 크게 거둔다고 해서 그 돈이 온전히 지켜지고 삶의 동아줄이 되어줄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감정이 간헐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겠지만, 시장에서 깨지면서 깨치고, 온몸이 감각으로 기억하는 관점을 명확하게 두어야 관점은 원칙이라는 단단한 뿌리로 이어지게 되고 오랜 시간 숙성된 밀가루 반죽이 어느 순간 빵으로 갑자기 부풀어 오르듯이, 대나무가 몇 년간 뿌리를 내린 후에 일단 싹을 틔우게 되면 무섭게 자라듯이 그 미래의 어느 순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377.

뿌리 없는 나무 없다. 

모든 나무에 뿌리가 있듯이 어떤 일을 하든 근본이 있어야 한다. 투자자의 근본 즉 뿌리는 시장과의, 자신과의 사투로 만들어진 자신만의 원칙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 안 탄다. 

근본이 튼튼하고 깊어야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 투자 초기의 작심삼일도, 숱한 시행착오도, 인간의 본성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쁜 습관의 도돌이표도 뿌리가 깊이 내려가는 시간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살아남는 자가 되는 건 포기하지 않으면 되고, 꾸준함이면 충분하다. 투자자의 최고 덕목은 ‘똑똑함’ ‘비범함’이 아니라 ‘성실함’ ‘꾸준함’이다. 인간의 ‘꾸준함’은 신에 대한 최고의 경배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채워가면서 욕심을 가지 쳐야 하고, 완벽함에 다가가면서 단순해져야 한다. 투자자는 숱한 기법과 성공 신화들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하나의 틀(원칙)을 세워야 하고, 선택과 집중으로 하나의 틀(원칙)을 지켜가야 한다.          




378.

”세상의 온갖 슬픈 말과 문장 속에 가장 슬픈 말은 이 말이다. ‘아! 그때 해야 할 것을!’ ‘그때 팔았어야 했는데…. 그때 샀어야 했는데….’“ <존 그린리프 휘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는 게 싫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귀찮아서 이대로 계속 있으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기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만인의, 군중의 본성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간들 하지 못했을 행위들을 후회하고 아쉬워만 한다. 개인의 무기는 융통성과 효율성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단점을 극복하기보다는 개인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치고빠지기여야 하고, 손자병법의 삼십육계 전법이어야 하고, 인간의 본성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잃지 않기 위한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개인은 양손에 단칼을 쥐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때다‘ 싶으면 올라탔다가 아니면 왼손에 쥔 단칼로 자르고, 또다시 지켜보다가 ’이때다‘ 싶으면 재차 올라타서 파동대로 흐름대로 가면 챙김의 마지노선을 정해서 오른손에 쥔 단칼로 잘라야 한다.          




379.

프로야구 선수 데릭 지터는 절대 기본을 잊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투자에서 기본 중의 기본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마치 투자자들은 내야 땅볼이 나왔을 때 1루를 커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보이며, 외야에서 공을 던질 때는 중계 플레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보이고, 2스트라이크 노볼 상황에서는 한가운데로 공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 야구에서처럼 스프링 캠프를 통해 땅볼을 잡는 것 같은 재미없는 연습을 반복해서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야구 선수들은 실력을 기르기 위해 기꺼이 단조로운 연습을 마다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기본을 연습하는 것이 투자 성공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주식은 기업의 수익과 금리가 가장 중요한 기본이며, 항상 존재하는 노이즈는 무시해야 한다. 이런 평범한 방식으로 주식에 투자하기란 지루한 일이지만, 그런 기본에 숙달하지 않고는 누구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없다. <리처드 번스타인 – 기본 중의 기본부터 연마하라>           




380.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을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다. 만약 남들이 짓는 까닭을 물어오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명나라 왕조의 질식할 것 같은 유교 사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한 시대의 이단아였던 이탁오가 했던 말이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뇌동과 추격의 티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한 줌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장의 흔들림에 따라서 짓던 개였다. 이미 다 보여준 파동을 보고 따라서 짖거나, 돈을 따라다니면서 짖어대는 개가 아니라 

’개는 밥을 먹을 때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잘 때 내일의 꼬리치기를 걱정하지 않는 법이다‘

라고 했던 박웅현의 말처럼 현재를 온전하게 사는, 시장의 흐름에 온전하게 순응하는 개가 되어야 한다. 성급함과 희망이란 인간의 본성 너머에 있는 ’큰돈 = 추세 추종 – 심리 값‘이 성공 공식이기에, 凡人(범인)이 넘지 못하는 지루함을 견뎌내야 ’개인 최대의 적‘ 감정의 기복이란 인간의 본성을 딛고 성공을 위한 필연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자기감정의 지배를 받는 동물임과 동시에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기에 무엇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명작의 탄생 과정도, 성공의 토대를 다지는 과정도, 복기도, 반복도 지루하기에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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