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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un 05. 2024

진실을 보는 여행자

(열하일기 3장-일신수필-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

   일신수필(馹汛隨筆)은 7월 15일 신광녕에서 출발하여 7월 23일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연도에서 본 이국의 풍물과 체험을 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구경하고 지나가듯, 보고 느낀 것을 생각나는 대로 썼다는 뜻이라고 한다.     


연암은 북경을 다녀온 선비들의 종류를 셋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일등 선비는 여러 성곽과 풍광은 멋지나, 도무지 본받을만한 것이 없고 황제부터 장상과 대신 등 만백성이 변발을 했고, 사람이 생긴 이래 변발한 천자는 없었는데 역시 되놈이고 짐승과 같다며 무슨 볼만한 것을 찾을 것이냐며 험담한다. 이등 선비는 청나라가 가지고 있는 성곽은 진시황의 만리장성의 나머지고, 명나라가 망하면서 야만인의 말씨가 되고 말았다며 역시 배울 게 없다며 깎아 내린다고 한다. 연암은 자신이 삼류 선비라고 하며 중국의 장관은 깨진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에 있다며 두 가지가 얼마나 효용 있게 쓰이는지 세세히 말한다. 성곽과 연못, 궁실, 벌판, 수림의 환상적인 풍광을 장관이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라고 반박한다. 아직도 명나라의 속국이었던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고, 관찰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피력한다.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레 제도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히 관찰해 쓰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않으니 이는 없는 것과 같다며 고을이 험준해서 수레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한다. 즉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 길이 닦이지 않은 것뿐이지, 수레가 다니면 길은 절로 뚫리게 마련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면서 중국의 풍부한 재화와 물건이 한 곳에 막혀 있지 않고 사방에 옮겨 다닐 수 있는 건, 수레 덕분이라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이토록 가난한 건 수레가 다니지 않기 때문이라 하는데 현재 사통팔달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시설의 발달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 걸 보면, 연암의 생각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앞선 문명을 칭찬하면서도 상여를 매고 가는 초상 제도는 간편하게 하지 않고, 비용을 너무 들인다며 본받을 것이 못 된다고 냉정히 평가하기도 한다.      

연암은 예의를 갖추고 진심을 보이는 사람한테는 진심으로 대하고, 거만하고 겉과 속이 다른 자는 아예 말도 섞지 않는다. 호불호가 확실하고 남의 눈치에 연연하지 않는다.      


명나라와 청나라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13만 대군을 갖고도 청 태종의 수천 기병에게 무너진 이야기를 하면서 명나라가 망한 건 운명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한탄한다.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는 하지만 연암도 명나라에 조금은 미련이 남은 듯한 모습도 보인다.     


고교보라는 곳에서 숙박하며 그곳 사람들이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을 원수 보듯 하는 게 이상해 이유를 알아보니, 조선의 사신이 그곳에서 은자 천 냥을 분실하는 일이 생겨 황제가 지방관을 파직시키고 의심 가는 자를 잡아다가 취조해 죽은 자가 여럿 나오게 되어 원수처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연암은 의주의 말몰이꾼들이 사신 가는 길에 붙어 생계를 꾸려 가야 는데, 너무 적은 금액을 지급받아 좀 도적질을 하지 않고는 다녀올 수가 없는 사태를 이야기하며, 은자 천냥도 그들이 도적질을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이들이 비참한 생활을 견디지 못해 전쟁이 나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걱정도 한다. 결국 하나의 사태와 사건은 작은 일의 연결로 이어져 있는 셈인 걸 연암은 간파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문제 아래 보이지 않는 문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여행자는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청돈대의 해돋이를 보며 감탄하면서 연암이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고 지은 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장편시다. 


해를 쫓아가던 과보는 뒤에 처져 숨을 헐떡헐떡

여섯 용이 앞을 인도하며 자랑하고 으스댄다.

하늘가 어두어져 참담하더니 갑자기 얼굴을 찡그려

해바퀴를 힘껏 밀어 기운을 북돋운다.

바퀴처럼 완전히 둥글지 못하고 긴 항아리 모양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소리 핑핑 들리는 것 같다.

만물이 어제처럼 모두 우러러보니

누가 있어 두 손으로 떠받들고 올려 놓았나.


천변만화, 변화무쌍한 해돋이의 모습을 장엄하면서 재밌게 표현하고 있다.      


어떤 점포에 들어가 주인과 대화하려 하니 말이 안 통하자 주인이 한 소년을 데리고 오는데, 글자를 쓰는 걸 보니 만주어였다. 말도 글도 통하지 않는 세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큰 웃음으로 얼렁뚱땅 때우고 있다는 표현이 재밌다. 그래도 과일과 계란 볶음등을 가져와 대접하며 우정을 나누는 장면은 화기애애하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만물상이다. 문명이나 제도에 대해서, 시설이나 풍경에 대해서 아주 세세히 묘사하며 설명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한다. 캐릭터가 확실해서 웃음 요소가 곳곳에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단순히 애국심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풍부한 진실한 여행자다. 


#열하일기 #연암박지원 #조선의여행자 #산해관 #수레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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