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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19. 2023

태국 방콕, 전기 없이 만든 커피

살림남의 방콕 일기 (#174)


태국의 대표적인 커피산지는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로 주로 해발 고도 1,000m 이상의 산에서 재배된다. 사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는 형제처럼 가까어디 지역 커피가 더 맛있다 없다판단하는 것은 크게 의미 없다. 물론 고도 토질에 따라 맛과 향에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어떻게 커피를 우려내느냐,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방콕 쇼핑몰에서 열리는 작은 커피 페어, 지역 커피업체 30여 곳이 참석하여 커피 홍보 부스를 꾸려놓았다. 태국의 커피산업은 한국보다 작다지만 커피를 생산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입점한 카페는 대부분 로스터리 카페로 다양한 원두를 블랜딩해 커피를 내려 맛을 보여준다. 드문드문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 외산 커피들도 있지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커피는 치앙라이 도이창에서 생산된 커피로 국내 커피로 페어를 개최할 수 있는 자신감이 내심 부럽다.


태국에서 내놓으라는 실력자들이 참석했을 자리, 덩치가 포근해 보이는 바리스타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손바닥만 한 도기 커피를 볶아낸다. 로스팅팬은 뚜껑 없는 주전자 모양으로 본체에는 작은 핀홀이 있어 구워진 연기가 빠져나가며 손잡이 끝 홀을 통해 커피를 넣고 뺄 수 있다. 치앙마이 매왕(MaeWang)에서 직접 재배해 잘 말린 아라비카 생두를 맷돌에 갈아 껍질을 부수고 손으로 하나하나 분리된 콩을 통에 골라 담는다. 수줍은 민트색의 생두는 커피 로스팅 팬 손잡이 안으로 집어넣은 후 골고루 흔들어 가며 굽는다.


10분쯤 구웠을까. "딱딱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구워지는 향기가  홀에 은은히 퍼진다. 고작 손으로 한 움큼정도 될 만큼 작은 양. 판매하는 양보다 많이 볶아내어야 하니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 연기를 온몸으로 맡으며 수십 차례 똑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갓 볶은 원두는 식히기 위해 나무 접시에 담아주고 다시 굽기 시작한다. 미리 구워진 원두로 핸드그라인드에 곱게 갈아내 모카포트에 담아 끓여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그렇게 잔에 담겨 나온 진한 커피는 기계를 거치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만 귀하게 완성된다.


치앙마이 매왕(MaeWang)은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도이 인타논(Doi Intanon)과 인접한 곳으로, 생산된 커피는 고도 1,500m 이상에서 재배된 품질 좋은 아라비카 커피라 설명한다. 하지만 직접 손으로 구운 탓일까. 로스팅된 커피는 다크에 가깝다. 비싼 아라비카 커피를 다크로 마신다는 것이 분명 아쉽지만 명불허전. 좋은 커피는 어떻게 해서 마셔도 뛰어나다. 쓰거나 떫지 않고 고소한 너츠와 초콜릿의 풍미를 끝까지 가져간다.

 

커피를 로스팅하고 추출해 내는 기술은 한국보다 떨어지지만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하고 로스팅해 추출하는 전 공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로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커피페어전통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정성껏 만들어내는 카페는 수많은 최신식 에스프레소 머신이 즐비한 전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다. 어쩌면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커피의 맛보다 거칠지만 손으로 커피를 수확하고 손으로 커피를 말리고 손으로 커피껍질을 까고 손으로 커피를 볶고 손으로 커피를 추출해 내는 손맛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구수함이 보리차처럼 진하지만 직접 흔들어대며 콩을 볶는 모습에 그 맛이 더 감동적이다. 이제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커피만 마시는 것을 넘어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커피의 다양함을 배울 수 있어 즐겁다. 커피의 맛은 결국 마시는 사람의 입맛과 기분에 결정되는 것이니 정확한 무게와 시간을 측정한 섬세한 커피보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거친 커피가 점점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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