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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Nov 08. 2023

태국 방콕, 버스정류장 옆 골목카페

8밧 버스 타고 태국 속으로(#1)


8밧 버스는 현지인들에게는 저렴한 장거리 교통수단이며 여행자에게는 합리적인 시티투어 버스가 되기도 한다. 방콕 로컬 여행에서 8밧 버스 만한 교통수단은 없다.  8밧 버스가 가는 곳이 리얼한 로컬이니 애써 목적지를 정할 필요 없다.


8밧 버스를 타고 로컬여행을 갈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카페이다. 버스 도착 정보 앱이 있지만 정확도가 낮으며 정해진 배차시간도 없으니 무더운 버스정류장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 이때 정류장 옆 카페는 최고의 정류장이 된다.  


로컬에는 소이카페들이 많다. '소이(Soi)'는 골목이란 뜻으로 2~3평 남짓 작은 로컬 카페이다. 아담한 소이카페에는 에어컨이 없지만 선풍기가 제법 시원한 바람을 불어낸다. 카페 내부라 할 것도 없는 좁은 공간 의자 2~3가 고작이다.


소이카페는 복권 파는 아저씨의 상점이 되기도 하고 하굣길 학생들의 분식집이 되기도 하며 배달라이더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현지인을 상대로 음료를 판매하기 때문에 30밧(1,000원) 내외로 저렴하다. 메뉴는 커피와 소다 종류 등이 다양하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타이밀크티를 주문한다.  

 

주머니처럼 생긴 헝겊에 차를 넣고 쥐어짜듯 차를 우려낸 후 유리컵에 착즙 한 진한 홍차와 연유, 시럽, 우유를 섞어  티스푼으로 섞는다. 이때 티스푼과 좁고 긴 유리잔이 부딪혀 실로폰 G코드처럼 맑게 울려 퍼진다. 수십 초 제법 긴 연주가 이어지고 알알이 깨끗한 얼음이 컵 안으로 시원한 폭포처럼 쏟아진다. 큰 컵 안을 수정 가득 채운 얼음사이로 짙은 주황색의 크티가 빈틈없이 채워나간다.


그렇게 완성된 타이밀크티는 달콤 씁쓸한 맛도 제법이지만 눈으로 보는 맛도 일품이다. 시원한 타이티가 나왔음에도 8밧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급하지 않다. 도로의 열기가 올라오는 늦은 오후 소이카페 앞은 한산하다. 까만 먼지가 낀 선풍기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바람과 함께 마시는 밀크티는 로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짜 맛이다.


묵직한 타이티가 얼음에 녹아 연해질 때 한 모금 마신다. 시럽의 달콤함이 쓰게 느껴질 때 아차 싶다. 언제부터일까? 꼼꼼하던 성격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느긋함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 적응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럽을 조금만 넣어 달라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속상해할 필요 없다.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얼음을 녹여 천천히 마시면 그뿐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내면의 변화가 결국 환경에 바뀌는 모습이 신기하다. 8밧 버스가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버스 앱의 알림에 제법 무거운 22온즈 밀크티를 얼음팩 삼아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오후의 열기 때문일까 어느새 하늘은 구름이 잔뜩 몰려들며 바람이 불어온다. 아마도 비가 내릴 모양이다. 때마침 30밧(1,000원) 짜리 밀크티보다 저렴한 8밧(300원) 버스가 달려온다. 비 오기 전에 만나는 8밧 버스는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적당히 녹은 소이카페의 밀크티를 마시며 8밧 버스는 시원하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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