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탄대독 Aug 02. 2022

사십춘기 다이어리...#2

본격적인 프로 취미러 길로 접어들어

취미에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일까? 성인이 되어 진정한 취미가 생기면, 독서니 음악 감상이니 이런 것들에 비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전 글에 이야기한 것처럼 나름의 수련으로 내공이 쌓이고 이제는 무림(공도)에서 활동할 수 있다고 판단이 들 무렵, 배달의 기사님들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의 현실에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타고 다니는 바이크 아니 원동기는 배달 오토바이보다도 느린 바이크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라이더 선배님 한 분이 바이크는 빨라야 안전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도로상에서 자동차와 부비부비 하기보다는 차보다 앞서서 한가로운 공간으로 치고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본인이 원하는 페이스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바이크가 어느 정도 속도가 나와야 안전하 때문이다라고 했다. 말로만 들으면 모르는데, 우리나라 공도에서 느린 바이크를 타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실감이 된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절대로 친절하지 않으며, 최외각 차로에서 시내버스와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또한, 현행 법규가 현실의 도로 주행 상황을 감성적으로만 받아들여 이상한 법을 만들었다는 것도 곧 깨닫게 되었다. (현행법상 오토바이는 최외각 차로로만 주행해야 한다(추월과 좌회전 시를 제외하면) 아마도 도로상의 약자를 배려하는 착한 마음과 일본의 법규를 그대로 가져와서 복사 & 붙이기를 했던 귀차니즘 때문이겠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일본과 우리의 도로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일본은 불법주차 차량도 없고 시민들 운전도 매우 성숙하고, 참고로 걔들은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로 갈 수 도 있다.)




나름 취미로 타는 오토바이라고 타에 모범이 되고 가족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나는 항상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바이크를 탔는데, 이렇게 무장된 나의 라이딩 패션 또한 조금은 더 빠른 바이크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갑옷을 입었는데, 당나귀를 타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취미로 150만 원이란 돈을 써본 것이 엊그제 였으며, 그 또한 첫 경험인데, 바이크를 더 큰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더 큰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기에 1달 정도를 망설였던 거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럴 때 사람들은 보통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기 위해 짱구를 굴리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취미로 더 큰돈을 쓰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처럼 해외여행을 가던가, 혹은 취미로 모형비행기를 날리는 분들처럼 수천만 원을 쓰던가, 혹은 룸살롱 같은 곳을 다닌단 말인가~ 이러면서 자신에게 할 변명거리를 완충한 이후에~


미들급 중고 바이크 CB500X를 구입했다. 천안의 혼다 매장에서 55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집행했다. 다행히 이전에 타던 원동기는 매물로 내놓자마자 팔렸고 130만 원 정도에 판매하여 큰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새로 구입한 혼다의 CB500X은 섹시한 빨간색으로 눈에 확 띄는 색깔이며 멀티 퍼포우즈드(Multi Purposed) 타입의 바이크다(포장도로 비포장도로 두루두루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목적이 여러 개라고 구분된다). 당시에 내가 즐겨보던 여성 오토바이 유튜버가 너무 편하다고 극찬을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파쏘라는 웹사이트에서 매물을 한참을 보다가 적당한 가격의 매물이 나와 바로 구매하게 되었다.

혼다의 CB500X (별명: 소라)

사실 다른 바이크를 타본 적이 없어서 이게 편한지 어떤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전에 탔던 바이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고 공도에서도 더 이상 배달 아저씨들에게 따이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난 이 바이크에게 “소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도 있는데, 말하면 다들 알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겠다.(일본 배우에서 딴 이름이다)




소라는 그전에 원동기 타고 다녔을 때보다 나의 지경을 100배 이상 넓혀준 바이크이다. 동네에서 우회전만 하던 나는 소라를 타고 강원도 1박 투어를 나갈 정도로 원거리 원정이 가능해졌다. 소라는 유튜버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 타도 매우 편했는데, 자동차도 2시간 이상 타면 좀 짜증 나는 데, 바이크로 2시간 이상씩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게 편해서인지 내가 바이크를 좋아해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투어 갔다 비 와서 다리 밑에서 대피 중인 사진

이때부터 나는 프로 취미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거 같다. 취미를 위해 돈이 꽤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서 차량에 블랙박스를 달았고, 멀리 가야 했기 때문에 바이크에 걸칠 가방을 구입하고, 그전에 중국산 저가의 바이크 의류를 구매했다면 이제는 조금씩 브랜드 의류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알리바바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쓸데없는 오토바이 관련 부품을 사면서 나의 지출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뭐랄까~ 평생 생활하고 가족을 위해서만 돈을 썼던 나게 (아내는 동의 안 할 수도 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에 돈을 써 본 적은 없지 않냐”라는 또 한 번의 자기변호를 해가면서 죄책감은 서서히 희석되어 가고, 난 그렇게 프로 취미의 길로 접어들었다. (돈을 많이 쓴다는 의미로 붙여 본 말이다)



오토바이 의류는 의류용 섬유중에서 가장 고가이다. 넘어지면 찰과상이 일어나지 않게 케블라 섬유를 사용하고 관절 부위에 보호 장구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꽤 비싸다. 그리고 철철 히 바꿔 입는다. 여름에는 더워서 메쉬로 겨울에는 추워서 방한의류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라를 통해 다녔던 국도 및 지방도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해 주었으며, 코로나로 교회도 못 갔던 나의 주말을 영적으로 풍요하게 해 줬다. 사실 미안한 말이지만 목사님 설교보다는 바이크 타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주여~~”라는 말을 수 십배 더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신께 감사했고, 아마도 모든 걸 다 아는 신은 교회에서 지루해하는 내 모습보다 바이크 타면서 자기에게 감사하는 내 모습에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의 지경은 남쪽으로는 문경, 동쪽으로는 고성, 강릉, 동해까지 넓어지게 되었으며, 이렇게 되기까지 5개월 정도 걸렸던 거 같다. 중간에 겨울이 없었다면, 조금은 더 빨라졌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사십춘기 다이어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