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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Sep 01. 2022

내가 작품을 보는 것일까? 작품이 나를 보는 것일까?

여행일기 아홉 번째 장, 비단의 회랑, 지도의 회랑

 촛대의 회랑을 넘어서자 이번엔 비단의 회랑이 우리를 반겼다. 비단의 회랑의 정확한 명칭은 '아리찌의 방'이다. 아라찌가 카펫 공예, 실을 짜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직물 공예 정도를 의미한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면 될 듯하다. 따라서 이 방의 구성도 엄청나게 많은 카펫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당시에 이런 화려한 색감의 비단 공예를 진행하려면 정말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과는 달리 어둡다.

이곳은 예수의 일생이 주된 주제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이 비단 속에 담겨있다. 이곳에서도 천장을 보는 것은 잊어선 안된다. 아주 아름답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천장화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천장화를 보던 당시엔 이 천장들이 '조각'된 줄 알았다. 너무 입체적이고 하얀색의 천장이 마치 촛대의 회랑에서의 석상 조각들과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들은  트롱프 뢰유(Trompe-l'oeil)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라고 한다. '속이다'라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단어로만 들으면 생소할지 몰라도 첨부한 사진들과 함께 이 기법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전시관의 모습-VISIT JEJU 사이트에서의 '박물관이 살아있다' 상세정보 참고

 제주도의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박물관을 가본 적이 있는가?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간다면 방문했을 수도 있는 이곳의 작품들은 주로 액자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들, 마치 튀어나오고 있는 듯한 이런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이 트롱프 뢰유식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예수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에서 다시 바티칸으로 돌아와서, 은은한 조명으로 이루어진 이 복도는 카펫들의 주된 색감인 주황색과 갈색빛이 사방에 퍼져있다. 작품의 보존을 위해 유일하게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는 곳이다. 햇빛 또한 차단되어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장소들은 모두 에어컨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실내에 들어왔다 한들, 시원하지 않을 테니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회랑에서의 모든 카펫들이 인상 깊지만 그중에서 인상 깊은 카펫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무고한 유아 학살>이란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작품이다. 무덤에서 나온 그의 모습에 병정들이 놀라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작품은 들어본 분도 계실 것이다. 작품 속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의 눈이 우리가 어디에 있든, 나와 눈을 마주치며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녕 예수 그리스도의 힘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작품을 만들 때, 그리스도의 얼굴 부분을 입체적으로 짰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비록 진짜 그리스도가 나를 쳐다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로 하여금 "어디에도 그는 너와 함께 하신다."라는 어렸을 적 친구 따라 교회에 가서 들은 설교를 연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작품의 위치 상, <무고한 유아 학살>이란 작품이 먼저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먼저 설명했다. 아까 말했듯, 작품은 예수의 일생을 담은 회랑이기에 시대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눈을 중심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찍은 것이다. 눈이 당신을 보고 있는가?


무고한 유아 학살, 아들을 잃기 직전의 절실한 어머니들이 눈에 보인다.

 <무고한 유아 학살>이란 작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역동적인 표정과 행동 때문이다. 이 카펫에 이러한 역동성을 담아냈다는 것이 매우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이보다 조금 더 큰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카펫이 담고 있는 내용 때문이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 대해 말해주지 않자, 예수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헤롯왕이 모든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했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런 잔혹성을 자신의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죽이려는 자의 얼굴을 밀면서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 도망치다가 머리가 잡혀버린 어머니 등등, 필사의 모습들이 작품을 통해서 느껴져서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카펫 작품들이 당신을 기다린다.

 그 외에도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의 탄생, 교황 관련 일화, 카이사르 암살, 등의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많으니 사람이 좀 적다면 여유롭게 관람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많다면 아마, '사람 파도'에 밀려다니기 때문에 그러긴 쉽지 않을 것이다.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천장과 카펫을 다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끝에 와있을 것이다. 물론 끝이라고 해도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혹여나 수많은 전시품들에 기가 죽어 지쳐있다면 조금 더 지쳐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까진 아직 지도의 회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빛이 들어오면서 더 화려하게 천장이 느껴진다.

지도의 회랑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지도들이 가득한 방이다. 지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겐 조금은 위로가 되는 부분이었다. 이곳은 부동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지역구 지도 정도를 생각하면 편하다. 교황청에 걸려있는 지도라면 하면 어떤 지도이겠는가? 아무래도.. 교황청과 관련이 있는 지도일 테고 그렇다고 하면... 교회가 있는 곳의 지도일 것이다. 주로 교황의 영향력이 강하거나 혹은 교회가 위치하여, 교황이 위치를 알아야 하는 곳들을 위주로 지도로 그려져 있다. 여기까지 바티칸 박물관을 구경했다면 잊지 말고, 천장을 바라보는 것은 습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지친 고개와 눈이 자동으로 천장을 보게 될 테니 못 보진 않을까 걱정을 크게 안 해도 괜찮다.  

 

왜 천장이 모두 반대인가?

그런데 조금은 특이한 부분이 있다. 이곳의 천장화는 보기 아주 불편하게도 모두 반대로 그려져 있다. 일본이 우리와 운전석이 반대인 것처럼 여기도 뭔가 우리와 보는 방향이 다르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옛날에는 거꾸로 보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바티칸은 우리를 위한 곳이 아니다. 이곳은 교황을 위한 곳임을 우린 잊으면 안 된다. 우리야 밖에서 안쪽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선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는 구조인 것이다. 즉, 이 천장화는 안 쪽에 사는 교황을 위한 구조이다. 교황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지역에 대한 그림이다. FIORENZA라고 적힌 글씨와 지역 그림이 보인다. 아마 모습과 이름을 보니 우리가 익히 아는 피렌체인 듯하다.


이탈리아의 모습

이곳의 천장화 역시 조각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트롱프 뢰유 기법의 작품들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이 천장화와 과거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잘라서 그려둔 지도들을 보고 있으며 다시 한번,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이들인지 체감한다. 지도의 회랑을 지나면 바티칸의 최고의 보물을 코 앞에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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