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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Aug 23. 2022

로마에서 점심식사를 위한 작별

여행일기 여섯 번째 장 프란체스코와의 작별과 와인

 로마 일정 속엔 바티칸이 존재한다. 모든 페키지 일정이 그럴 확률이 높다. 로마 안에 바티칸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 판테온을 구경한 후, 우리는 점심 식사를 했는데, 이 점심 식당에 데려다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벤 기사님인 프란체스코와의 작별이었다. 판테온에서 벤을 타면서 이 소식을 접한 나는 프란체스코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에게 조금이나마 인사를 하고 싶었다. 제 아무리 여행사 측에서 섭외한 기사님이어서 우리에게 친절한건 당연하다고 할 지라도, 그의 매너와 인자한 미소는 나에겐 더욱 고마웠다.  단순히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그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다. 내가 대충 배운 이탈리아어가 먹히는 지도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식당에 도착해서 벤에 타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내릴 때, 나는 제일 마지막에 내렸다. 왜 그러냐는 동생에 물음에 "인사하게"라며 동생을 빨리 밀어 던져버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내렸다. 등을 두들겨주며 잘 가라고 말하는 프란체스코에게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일정인지 물었다. 그는 분명 그렇다고 할테니 그때 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마지막이 아니라, 일정이 종료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당시엔 이 맥락이 이해가 잘 안되었지만 아마 내가 모든 일정이 끝난 것인지 물어본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그래서 프란체스코는 모든 일정의 끝이 아닌 벤 투어 일정만 종료되었다고 말해준 것인 듯하다.  나는 조금은 당황했지만 다시 그에게 "그러면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군요!"하고 아쉬움을 보였다. 그러자 그 역시 옅은 미소와 함께 맞다며 등을 다시 토닥였다. 이에 나는 "덕분에 로마 투어가 너무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최고의 드라이버에요!"라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너무 떨려서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그는 너무 고맙다는 표정으로, 그리고 손을 두 손을 가슴에 올리면서 행동으로까지 나의 말에 대해 반응해주었다. 그리곤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청하자 나는 한 술 더 떠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까지 이야기했다. 이번에도 유갑스럽게도 영어로 했다. 조금 덜 유감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대목은 사진이란 표현만은 이탈리아어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포토'나 '뽀또'나 다른 건 그닥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위로하고 있다. 그는 나의 요청에 흔쾌히 허락하였다.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는 중년의 남성이었는데 진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꽃중년'같은 이미지인 인물이다. 사진을 찍은 후엔 나는 식당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는데, 아주아주 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에서만 이탈리아어로 남겼다.

 Arrivederci! Buona fortuna!

다음에 또 만나요!, 행운을 빌어요! 라는 암기식으로 외워둔 표현만 그에게 전할 수 있었다. 도로를 건너면서 그에게 소리쳤기에, 그에게 나의 말이 잘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이 인사말 이후 나에게 무슨 말을 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에 그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 잘 가라는 의미의 말이었을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직원이나 가깝게 접하게 되는 외국인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는 하다못해 그 나라의 언어로 인사라도 꼬박꼬박 직원들에게 남긴다. 호텔 직원이든, 가게 알바생이든, 기사님이든, 작은 미소와 함께 그 나라 인사말을 남긴다면 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하마못해 우리도 외국인이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요." 라든지, "좋은 밤이네요. 안녕하세요."라든지의 말을 하면서 오는 외국인을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사를 하다보면 외국인이라는 표면적인 모습보단 그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느껴지고, 더 나아가 그 사람과 내가 다를 것이 없음을 느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행은 마치 내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만드는 경향이 있기에 한국(현실)에선 절대로 못할 것을 여행지(가상??)에서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그저 아무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 정도로만 이어진다면 괜찮을 수 있지만, '난 여기를 떠나면 그만식'으로 민폐를 주고, 쓰레기를 막 버리고, 등의 일들로 이루어진다면 그건 결국 여행을 망치는 길로도 이어질 뿐만 아니라 소위 '나라망신'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의 일상에서도 알바생이 버벅거리면 "그저 알바생인걸 뭐..."하면서 기다리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도 그때를 생각하며 이곳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끊임없이 되세긴다. 한국에서도 항상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등의 인사를 남기는 것처럼 외국어 스킬도 늘릴 겸 여행지에서도 인사를 하고 다닌다면 나에게 매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식당에서도 우리 가족은 술 한잔씩 했다. 반주 문화가 아주 발달한 가정이었기에 작은 와인 한 병 정도는 시켜서 마시지 않으면 입이 좀 아쉽다랄까. 절대로 내가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버킷리스트를 성공시키기 위함이다. 아무튼 그렇다.

하몽과 와인, 동생은 와인을 마실 나이가 아니다.


하몽이 점심식사로 나왔을 때, 레드 와인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레드 와인 작은 병을 시켜서 마시자, 확실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염이 심하게 있어서 와인의 향까지 잘 느끼며 마시진 못했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선을 다하며 마셨다. 그럴만도 하다. 로마에서, 더 나아가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첫 와인이었으니깐.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기에 상세한 묘사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 번 노력해보자면... 내가 마신 레드 와인들과 비교했을 때, 이 와인은 깔끔하게 첫 입에 들어온 모금이 그대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고개가 갸우뚱거리는데 진짜로 그런 느낌이었다. 상당히 건조했고, 맛이 엄청 강하진 않았지만 은은하게 남아있는 와인 맛이 입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달라붙었다. 어느 정도냐면, 와인을 한 모금하고나서 그냥 물을 바로 마신다면 와인의 향과 맛이 그대로 물에도 전해져서 마치 와인을 두 모금을 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 날 내가 마신 와인이다.

다음 나온 피자는 치즈가 잔득 들어간 도우가 얇은 피자였다. 토마토 소스와 치즈밖에 보이지 않는 이 피자는 내가 이탈리아에 왔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느낌의 피자는 과거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에도 느꼈기 때문에 이 피자는 익숙했다. 그러나 다음에 찾아온 음식이 좀 충격적이었다.

진짜 그냥 '피자'!이다.
삶은 돼지고기? 이탈리아식 수육??? 알 수 없다..


  엄청나게 퍽퍽한 돼지 고기였는데 얼마나 퍽퍽하고 기름지던지 마치 돈까스를 해서 먹어야 할 돼지고기가 삶아서만 나온 느낌이었다. 피자를 먹을 때까지도 잘 남아있던 입 안의 와인 향은 돼지고기 조각을 먹자마자 돼지고기에 흡착되어 사라져버렸다. 뿐 만 아니라 입 안의 수분까지 모조리 가지고 사라지다보니, 물을 추가적으로 마셔야만 했다. 이 돼지고기는 얼마나 기름지던지 먹고 난 후엔 꼭 입술을 휴지로 닦아야만 할 듯했다. 충격적인 식사에 정신을 못 차리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한국 여행 그룹이 식당에 들어와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는 식사가 거의 끝나서 아이스크림이 나왔고, 갈 준비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기 전 화장실을 다녀왔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아버지께서 나를 아까 들어온 한국인 그룹의 테이블을 보라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게 하셨다. 곁눈으로 흘쩍 그들의 식사를 보니 돈까스가 있지 않았던가! '돈까스용 고기를 삶아서 먹는 느낌'이 현실이 될지는 몰랐다. 그들은 돈까스를 먹는데 우리는 왜...!

의문은 많았지만 식당에서 나왔다. 식당을 나오며 식당 외관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보았는데 돈까스 메뉴는 있었지만, 내가 먹은 '마치 삶은 돈까스용 돼지고기와 샐러드'라는 메뉴는 없었다.

와인이 맛있으니깐 봐준다. 식사도 든든히 했겠다. 단백질도 채웠겠다. 벤 기사님들도 떠났겠다. 우리는 걸어서 바티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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