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싫어떠난30일간의제주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하고 벌써 3년이 흘렀다. 사람 좋아하고, 그 누구보다 활동적인 내가 우울증이라니. 참, 기도 안 찰 노릇이였다.
오징어 배들이 수놓인 애월리 앞바다의 한 허름한 민박집에서, 30일간, 그리고 30일분의 약봉지와 수면제, 30개의 눈물로 지새웠던 그 날들이 영겁의 날들 처럼 맴돈다. 온종일 몸을 움직이면 괜찮을거야, 하는 믿음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매일 12시간 가량 제주 구석구석을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성이시돌 목장에서, 새별오름 정상에서, 이호테우 밤바다에서, 산방산의 한 카페에서, 조천리의 한 해녀마을에서 반갑게 맞아주셨던 현지인들의 다정한 목소리도 기억할 수 있다.
책이 출간된 후 제주도로부터 정확히 9통의 메세지를 받았다. 책과 함께 걸었다며, 책과 함께 작은 숲속에 있다며, 책을 써줘서 감사하다며, 그리고 애월의 작은 서점에 들렸다가 책을 마주했다며. 돌하르방을 본 딴 인형과 갓 출하한 귤 선물을 보내주신 독자분들도 계셨다.
이게 다 무슨 일 일까.
그리고 오늘, 모든 영광이 뒤안길로 사라진 줄만 알았는데 출판사를 통해 한 독자분으로부터 또 하나의 메세지를 받게 됐다. 이번에는 오디오북을 통해 들으셨다며.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신다.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아픈 사람들을 보면 요즘도 마음이 얼마나 쓰이는지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은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거다.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의 점심메뉴와 배달비가 고민 될 뿐이다. ’배달비가 너무 아까운데, 리뷰 쓰면 서비스가 뭐가 더 나올려나‘ 하면서. 너무나 자연스러운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가 전쟁통인 아랍의 어린이들을 생각할까. 사치일 뿐이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담아, 가자지구에서‘ 라고 쓰인 편지를 남기며 죽은 어린 아이를 뭣하러 생각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을 잠시라도 생각은 할 수 있게 됐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쓴 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들은 내가 의도한게 아니였다. 똑같이 아파보니까 알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완전히 혼자였으며,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손잡아 주는 이 한 명이 없었다. 제 필요할 때에는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하는 이들이, 필요가 다해지면 가차없이 내팽겨 친다.
내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상에 누워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친구들이 한 번쯤은 과일을 사들고 올 수도 있다. 기계적으로 말이다. 그럼 또 하나 가정을 추가해보자. 만약 병원비가 밀렸거나 물리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곁엔 늙은 우리 엄마만 있을 뿐이다. 본인 장기를 팔아서라도 우리 아들 살릴거라며. 너무 뻔해서 그 어떤 서사도 필요없긴 하겠다.
아니라고, 내가 오해라고 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가 겪었거나, 겪지 못했다면 앞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는 본인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게 쓸데없이 너무 많은 친구들을 만난 거라고 했다. 지천명이 되어서야 그는 깨닫게 된거다. 내 나이 불혹이다. 내가 김영하 작가보다 몰라도 10년은 깨달음이 빨라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
온 우주에 원자와 빈 공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음을, 그리고 가장 완벽한 순간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내 책 <죽기싫어떠난30일간의제주이야기>를 쓴 뒤 3년이 지난 이제서야 깨닫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당신 말이 전적으로 모두 맞습니다‘ 하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은 삶을 살아내고 싶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