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을 한잔하고 집에 오는 길에 서울의 친한 선배와 오랜시간 통화를 했다. 이 선배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하고, 지금은 대기업의 한 연구소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신다.
과거 기자 생활을 하면서 친해지게 됐는데, 서로 술을 좋아해서 퇴근 후 종종 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아마 내 기억으로는 정치 얘기 만큼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회나 직장, 혹은 어느 조직에서든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다. 정치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과 규범을 갖춘 듯 진보와 보수의 어디즈음에 위치해 있는 듯 보이지만, 극단층에 속해있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그렇다고 그들의 정치 이념을 근거없이 비난해서도 안될 일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정치인들의 범죄 모습을 수두룩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들의 뜻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분명히 잘못을 했는데, 같은 편들은 감싸고 돌기만 한다.
여기서 정치공학적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은 수많은 덩쿨로 얽혀있다. 그러다보니 잘못이 발생했을 때,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될지 가늠이 서질 않는다. 이 덩쿨이 돌고돌아 내 목을 옥죄지는 않을지, 혹시 내가 다음 선거에 나갔을 때 지지자들에게 밉보이진 않을지, 이런 생각을 먼저하기 때문에 상식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는거다.
이번 계엄 사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누가봐도 대통령이 잘못을 했고, 정신나간 짓을 했다. 그런데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그 누구도 그를 단번에 끌어내려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같은 편 의원들에게 총을 겨누고 체포 시도를 했는데도 어물쩍 넘어가려고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말한 덩쿨에 함께 엮여있기 때문에 ’툭‘하고 잘라냈다간 본인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위한다는 국민이 보통의 우리를 이야기 하는게 아니다. 국민들은 착각하지 마시라.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오직 그들만을 지지하는 ’20%의 극성 지지층‘을 얘기하는 것이다. 정당 구조가 그렇다. 극성 지지층이 없으면 지탱하기가 어렵다. 정치공학의 뼈대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국민의힘에서는 결국 탄핵도 반대, 그와 함께 치뤄지는 김건희 여사 특검도 결사 반대의 당론으로 확정 지었다고 한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극성유튜버와 김건희 여사, 그리고 천공의 뜻에 따라 국정 운영을 해온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 간다는 국민의힘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기실 너무나도 슬플 땐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하물며 너무나도 분노가 차오를 땐 욕조차도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눈물과 분노가 사그라졌다.
앞서 말한 정치 얘기를 일절 하지않던 서울의 선배가 오늘 형수와 어린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국회 앞 탄핵 집회에 나간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탄핵이 통과가 되든, 부결이 되든, 내란 수괴의 판결을 아이들이 적접 봤으면 좋겠다고도 덧붙혔다. 나는 추운데 아이들 치킨이라도 사먹이라고 10만원을 송금해줬다.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
MZ세대들의 언어를 차용하긴 뭣하지만 이즈음에서 이런 말을 하고싶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이제 믿고 거르자.“ 그래야겠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들도 또다른 덩쿨에 갇혀있는 건 매한가지니까 말이다.
나는 내 고향 안동 시민의 80%가 국민의힘 극성 지지자인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 고향엔 언제나 봄이 오지만, 언제나 봄이 오지 않고 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