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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Dec 11. 2023

모로코 픽업 기사는 왜 호텔로 가지 않았을까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12화)

포르투갈을 떠나기 전, '유럽 대륙의 서쪽 끝'으로 알려진 곳을 가보고 싶었다. 바로 호카 곶(카보 다 호카)이다. 리스보아에서 신트라까지는 기차를 탔고 신트라에서 버스를 갈아탄 후, 호카 곶 정류장에서 내렸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



버스에서 내리니 노란 들꽃 가득한 드넓은 초록의 평원이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십자가가 달린 높은 탑이 보인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 탑에 도착했다. 호카 곶을 상징하는 기념탑이다. 돌을 쌓아 만든 돌탑으로, 손톱만큼의 빈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듯 빈틈이 없다. 이음새가 단단하고 견고해 보인다.



탑의 중앙에 글씨가 쓰여 있다. 구글 번역기로 돌려 보니 '여기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카몽이스)' 그리고 '유럽 대륙의 최서단'이라고 나온다. 카몽이스는 16세기에 활약한 포르투갈의 시인이며 리스보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카몽이스 광장'도 있다.


            

▲  유럽 대륙의 서쪽 끝 호카 곶 기념비

ⓒ 김연순


나는 돌탑에 손을 뻗어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돌며 걸었다. 돌의 단면이 살짝 거칠기도 하지만 햇빛에 달구어진 터라 따스하다. 이 느낌에 전율하며 돌탑에게 속삭여 주었다. "아주 먼 곳에서 우리가 왔어. 반가워."     

  

촤르륵 촤르륵 철썩이는 파도 소리 가득한 바다, 대서양이다. 유럽 서쪽 끝의 땅은 가파른 경사로 바위를 드러낸 채 대서양 바다와 맞닿아 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대서양을 마주하고 앉았다.



잔잔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꽤나 거친 파도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온몸을 감싼다. 한국의 최남단 섬 마라도를 갔을 때도 마음이 일렁거렸는데, 유럽의 맨 서쪽 끝의 땅에 우리 둘이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게 신기하고도 감격스러웠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멍을 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한국말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돌아보니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셋이서 재잘거리며 연신 하하 호호한다. 바닷가 돌담에 앉았다가 기념탑을 돌다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워한다.



슬쩍 다가가 말을 건넸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했더니, "어머, 한국인이세요? 반갑네요. 그럼 부탁드려요" 한다. 이리저리 다른 배경으로 몇 컷 찍어주니 좋아한다. 다 찍고는 그들도 우리를 찍어주겠단다.


            

▲  호카 곶 기념탑 앞에서 함께

ⓒ 김연순


여행을 다니다 보면 서로 찍어주기는 하는데 함께 찍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해보니 그랬다. 여행기간 내내 둘이 찍은 사진은 거의 다 셀카다. 내 팔도 그렇지만 남편의 길지도 않은 팔 뻗어봤자라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 밖에 없다. 대부분은 남편 얼굴이 크게 나온다. 그들의 손을 빌려 기념탑을 배경으로 멀찌감치 찍어 보았다. 찍어준 사진을 보니 흡족하다. 아주 마음에 든다. 



우리에게 부부냐고 묻더니, 너무나 부럽다고 한다. 자기들도 나중에 결혼하면 이렇게 살고 싶단다. 심지어 롤 모델이란다. 헉, 너네들도 살아 봐라, 속으로 말했다. 



리스보아에서의 마지막 날, 스테인드글라스 벽걸이와 도시의 풍경을 스케치한 책 등 몇 개의 기념품을 샀다. 이제 포르투갈을 떠나 모로코로 간다. 모로코라는 나라 자체가 낯설 뿐더러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딛기는 처음이다.



애초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땐, 스페인과 포르투갈만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가 나중에 모로코를 추가했다. 모로코는 남편이 간절히 원했다. 전생에 자기는 황량한 사막에서 모래 바람맞으며 살았을 거라며 '모로코의 붉은 모래'가 자꾸 떠오른단다. 뭐라는 거야 싶었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가본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발동해 나도 좋다고 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처음



리스보아에서 마라케시까지는 이지젯 비행기를 탔다. 어쩌다 보니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였고 마라케시까지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오길래 아래를 보니 불빛 가득한 도시가 보인다. 모로코의 수도 마라케시다. 마음이 콩당콩당거렸다. 


            

▲  리스보아 공항에서 모로코 마라케시로 가는 비행기

ⓒ 김연순


마라케시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이미 깜깜하다. 입국심사장에 들어서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가득하다. 벽과 안내판에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도형 같이 생긴 아라비아 글씨가 적혀 있다. 나란히 프랑스어도 같이 적혀 있는데 이것 역시 몹시 낯설다. 간단한 영어로 입국 심사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모로코는 너무도 낯설어 우리가 혼자 숙소를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예약해 둔 숙소에 며칠 전에 메일을 보내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픽업을 부탁해 두었다. 물론 이것도 남편이 했다. 남편은 영어로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지만 메일을 주고받는 건 비교적 능숙하게 잘하는 것 같다.



메일의 답이 왔는데 픽업이 가능하다고 했고 비용이 예상보다는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픽업할 운전기사가 우리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비행기가 연착해서 한참을 기다렸을 거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짧은 영어로 인사하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  놀라울만치 아름다운 마라케시 국제공항

ⓒ 김연순


공항 청사 밖으로 나와 보니 마라케시 국제공항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외관이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택시를 타기까지 몇 번이나 뒤돌아 보았다. 숙소까지 가는 동안 그는 곳곳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대충 알아듣고 짧게 '뷰티풀'을 연발했다.



여긴 어디? 내 짐은 왜? 



이십 분 정도 달려 택시는 멈췄고 우리에게 내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숙소 앞이 아니다. 혼을 쏙 뺄 정도로 시끄럽고 사람들이 가득한 시장통 같은 곳에 서더니 내리라는 거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얼떨결에 내렸다. 그때 어디서 인지 갑자기 사람들 서넛이 나타나더니 우리 캐리어를 웬 리어카에 싣고 있다.



그러더니 리어카를 끌고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앗! 이게 뭐지? 우리 캐리어 여기서 도둑맞는 건가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크게 뜬 채 리어카 놓칠세라 마구 쫓아갔다. 몇 분을 달려가 이리저리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리어카는 멈췄다.



그리고는 "히어"라고 한다. 주소를 보니 우리가 예약한 숙소 앞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왜 택시가 숙소 앞까지 안 가고 중간에 리어카로 짐을 옮겼는지는 다음날 알게 되었다. 


            

▲  모로코 전통 호텔인 리아드의 로비

ⓒ 김연순


숙소는 모로코식 전통 호텔인 리아드다.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하면서도 익숙한 향이 코를 간질인다. 젊은 모로코 청년이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체크인하는 동안 웰컴 티를 준비해 두었다며 응접실에서 기다리란다. 테이블에는 따뜻한 티가 담겨 있는 은색 주전자와 아라비아 문양의 유리컵이 놓여 있다.



실내에 가득한 향을 맡으며 따듯한 티를 따라 마시니 몸이 노곤해지며 긴장이 풀렸다. 극도로 긴장했던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체크인 마치고 안내에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구와 적당히 소박한 가구가 눈에 들어온다.



침대에 벌러덩 누웠는데 급격히 허기가 몰려왔다. 밖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숙소 가까운 제마알프나 광장으로 갔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광장에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곧이어 평생 잊지 못할 어마어마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  밤에도 사람들 가득한 제마알프나 광장

ⓒ 김연순



▲  한밤이어도 불 밝힌 채 사람들 가득한 제마알프나 광장ⓒ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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