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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Dec 11. 2023

모로코 바닷가의 푸른 도시 에사우이라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14화)

에사우이라는 모로코의 서남부이자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항구 도시다. 마라케시와 페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파란색의 배로 가득 찬 포구와 그 포구에서 직접 구워주는 생선구이가 유명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항구도시 에사우이라에도 메디나가 있다. 메디나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이슬람의 성지인 도시 이름이지만, 아랍의 여러 도시에서는 '올드 타운'을 뜻하기도 한다.



마라케시, 에사우이라, 페스 등 모로코의 어느 도시를 가도 메디나로 불리는 구시가지가 있다. 메디나에는 진흙을 다져 만든 오래된 붉은빛 건물들, 비좁은 미로의 골목들, 전통시장 수크와 광장 그리고 이슬람 사원 모스크 등이 있어 그 자체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제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  에사우이라 메디나에서 버스킹하는 가수

ⓒ 김연순



마라케시에 머물며 인근 도시 에사우이라를 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제마알프나 광장으로 나오니 택시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에사우이라 가는 CTM 버스터미널까지는 택시를 타야 한다. 모로코에서 택시를 타려면 일단 흥정을 잘해야 한다. 안내 책자에서 그렇게 읽었다.



검색해 보니 터미널까지는 택시로 약 10분이다. 택시 기사가 다가오더니 100 디르함을 부른다. 고개를 저었다. 70 디르함을 부른다. 또 저었다. 두어 차례 실랑이를 하다 40 디르함(약 5,400원)에 합의를 보고 택시를 탔다. 적당한 가격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이렇게 흥정을 해 본 게 언제인지, 왜인지 재밌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출발 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근처를 둘러보았다. 맞은편에 간단한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이 보여 들어갔다. 희한하게도 짧은 영어조차 전혀 안 통하는 주인인데 주문할 메뉴에 관해서는 소통이 된다.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구운 후 돌돌 말아 낸 접시 하나, 그리고 우리네 호떡 비슷하게 생긴 접시 하나가 나왔다. 모로코 전통음식인 듯하다. 단맛의 시럽이 있어 그런지 맛도 괜찮았고 오렌지 주스도 시원하고 상큼했다.



고양이는 귀한 대접, 개는 천대받는 이 곳



중간에 한번 휴게소에서 쉬고 버스는 세 시간을 달려 에사우이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메디나까지는 택시를 탔는데 여기선 흥정할 필요가 없었다. 몇 분 안 가서 도착했고 7 디르함을 내란다. 적게 내니 마치 돈이라도 번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메디나의 중앙으로 들어서자 파란색과 흰색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도보의 양쪽으로 모두 시장이다.



옷이나 신발, 그릇 같은 생활용품을 파는 상점들이 가득한데 널찍한 통로에는 사람들이 오가다 쉴 수 있도록 돌 의자들도 놓여 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버스킹을 하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는데 페즈(챙 없이 머리에만 얹은 동그란 모로코 모자)를 쓴 남자 세 명이 연주를 하며 들어온다. 연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동전을 넣어 주었다.


            

▲  모로코 전통음식인 타진

ⓒ 김연순


남편은 모로코 전통음식인 타진을 주문했고 고기를 안 먹는 나는 깔라마리를 주문했다. 깔라마리는 오징어 요리다. 깔라마리를 포크로 찍어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순간, 발 밑에 뭐가 왔다 갔다 한다. 고양이다. 그런데 고양이가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스페인 식당에 비둘기가 천지라면 모로코 식당엔 고양이가 천지다. 이슬람 나라들에선 고양이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알고 보니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고양이에 대한 박해와 살해를 금지한 이후 고양이는 이슬람 국가들에서 숭배받는 동물이란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는 식당뿐 아니라 사람들이 앉는 버스터미널 의자에도 앉아 있었다. 길을 다니다 보면 고양이는 살도 통통하고 털까지도 윤기가 반짝반짝 난다. 대신 개는 천대받는다. 특히 검은 개는 악마라고 여겨진단다. 가끔 눈에 띄는 개는 비쩍 마른 채 돌아다니는데 안쓰럽고 불쌍해 보였다.


            

▲  시타델 요새에 전시되어 있는 대포들

ⓒ 김연순



항구의 끝에 기다란 성채가 보인다. 시타델이다. 중세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시타델은 도시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요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성벽에는 대서양을 향해 대포가 설치되어 있고 바닥에는 죄수를 가두던 감옥도 있다. 성채의 높은 곳에 오르니 에사우이라 항구에 정박해 있는 수백 척의 파란색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파란 배들이 이렇게나 많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니 놀라웠다.



그 옆에는 어선에서 내린 방금 잡은 신선한 물고기들을 즉석에서 파는 노점들이 있다. 그리고 즉석에서 구워 주기도 한다. 테이블과 의자들이 가득한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호기심 천국인 남편은 궁금해했고 또 신선할 테니 직접 가서 그렇게 먹고 싶어 했다.


            

▲  시타델에서 내려다 본 포구. 파란색 작은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다.

ⓒ 김연순



하지만 물고기 손질하는 걸 못 보는 나는 그 장소에 들어가지 못할뿐더러 비린내가 너무 심해 근처를 지나기도 힘들었다. 나는 다른 곳에 있을 테니 혼자 가서 먹고 오라고 계속 말했다. 남편을 그럴 순 없다며 한 바퀴 둘러만 보고 왔다. 그러곤 지금은 안 먹고 온 걸 후회하고 있다.



새 무서워하던 내가 웃음 터진 사연   


            

  에사우이라 포구의 노점들. 바로 잡은 생선을 구워서 판다.

ⓒ 김연순



사실 나는 시타델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갈매기들이 하늘을 덮을 정도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난 새들도 무서워한다. 안 가겠다는 내게 남편이 강권하기도 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가자는 생각도 들었다. 갈매기들은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고 어깨 위로, 머리 바로 위로, 심지어 얼굴 옆으로도 무리 지어 마구 날아다닌다. 움찔움찔 놀라며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굽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등에 툭, 시원한 뭔가가 떨어졌다. 내려다보니 하얀색 갈매기 똥이다. 으악, 나는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휴지를 꺼내 닦아주면서 뭐가 그리 좋은 지 연신 웃는다. 하다 하다 이젠 새똥까지 맞다니, 놀라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새똥을 닦고 한숨 돌리니 예전 생각이 났다. 아이들 어릴 때 한참 읽어 준 동화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가 떠오르며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새똥 맞은 건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웃으며 떠올리는 재미있는 추억이다.



시타델에서 나와 길게 펼쳐진 해변을 걸었다. 해변을 따라 카페 몇 개가 보인다. 한 곳에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바다엔 파도를 타며 카이트서핑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대서양 수평선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서핑하는 사람들 보니 내 마음도 시원해진다. 카페에서 나와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모래사장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하고 있다.



축구공이 날아가는 순간 내 발목도 날아갔다 



역시 모로코는 축구지, 생각하며 근처를 맴돌았다. 그러다가 급기야 끼어들었다. 사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보는 거 말고 하는 거 말이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축구하면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고 지금도 골목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꼭 끼어들어 한번은 차고 간다.



여기서도 그랬다. 아이들에게 연신 패스, 패스 외쳤더니 웃으며 공을 패스해 준다. 공을 받은 나는 몇 번 드리블을 하다가 딱 감이 오는 순간 오른발로 공을 힘껏 찼다. 뻥 하며 공은 날아갔다. 그러나 아뿔사, 그 순간 내 발목도 날아갔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몇 달 전에 발목이 부러졌고 아직 다 완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좋아하는 공을 본 순간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다.


            

▲  에사우이라 해변에서 축구하는 모로코 아이들

ⓒ 김연순



어느 정도 나아지고 있던 발목은 이날을 기점으로 다시 아주 나빠졌다. 그때 왜 그랬을까, 지금도 후회막심이다.



저녁 무렵 마라케시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쉬다가 밤 10시가 되어 저녁 먹으러 나갔다. 제마알프나 광장의 한 식당에서 파니니를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적당한 카페가 보였고 여기로 들어가자고 했는데, 남편은 또 시작한다. 저쪽으로 가면 더 전망 좋은 카페가 있을 거라며.



그러나 한참을 걸어 가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결국은 처음 내가 들어가자고 한 곳으로 다시 왔다. 내 발목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 내가 아프다는 걸 남편은 자꾸 잊나 보다. 한바탕 구박을 하며 또 하루를 마무리했다.



▲  제마알프나 광장의 카페.ⓒ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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