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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Feb 19. 2024

태극기에 자동차가 숨어 있었다고?

kgm브랜딩

"죄송하지만 오늘 보여주신 광고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네요"


광고주 기업 회장님과의 첫 미팅자리였다.

그룹 회장님이니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하는 자리.

그런 자리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장님과의 이전 미팅은 휴가로 참석하지 못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 제안을 준비해야 했다.

회장님의 주문은 'KG모빌리티의 해외광고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하필 크리팀 모두가 중요한 연간 경쟁 비딩에 매달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프로덕션의 도움을 받아 1차 시안을 준비해야 했다.


'수출 국가의 소비자들에게 우리 자동차가 한국에서 만든 차임을 명확하게 알리면 된다'

사실 회장님의 디렉션은 명확했고 단순했다. 어렵지 않은 과제라 판단했다.


단순한 문제를 억지로 꼬기 보다 '한국'하면 생각나는 것들로 아이디어를 구성했다.

"죄송하지만 오늘 보여주신 광고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네요"

외부인에 대한 관대함의 표현이었을 뿐, 회장님의 말씀이 뼈아팠다.

화끈 거리는 얼굴을 감추고 원하시는 방향을 찾아내기위해 질문을 던졌다.

실무자들처럼 궁금한 점을 수시로 물어볼 상대가 아니었다.


'전형적 자동차 광고와는 '다른' 광고를 만들어 달라, 그래야 소비자가 본다'

'복잡하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한 광고를 만들어 달라'

'해외 고객들이 단번에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를 활용해 달라'


회장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옳았다.

'KG모빌리티가 한국 차임을 명확하게 알리면 된다'만 생각했지, 다른 건 간과하고 있었다.




회사로 돌아와 모니터 앞에 앉았다. 해외 고객들이 한국을 쉽게 이해할 요소에 집중했다.

모니터에 대문짝 만하게 태극기 이미지를 걸었다. 하루 종일 태극기만 봤다.

태극 문양이 언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언덕을 자동차가 부릉부릉 올라갔다.

자동차는 빨간색 사막을 달리고 파란색 하늘을 날았다.


그러다 문득 태극기에서 자동차가 보였다.

그러자 희한하게 나머지 '건'과 '곤'과 '리'가 모두 자동차와 연결된 사물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건은 타이어를 앞에서 본 모양, 곤은 횡단보도를 위에서 본 모양, 리는 중앙선이 있는 도로와 같았다.




간절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했다.

태극기에 자동차와 관련된 픽토그램이 숨어 있다니, 웃음이 나왔다.

바로 광고 시안의 초안을 만들었다.


아이디어를 영상화하기 위해 처음 만든 시안의 초안


기획 초안을 트리트먼트 하고 심기일전, 2차 보고에 들어갔다.

1차의 혹평은 온 데 간데 없이 아이디어는 곧바로 통과되었다.

예기치 않은 것은 해외용으로 기획된 광고를 국내용으로 사용하자는 결정이었다.




의도치 않은, 철 지난 애국 마케팅으로 보이지 않을까?

해외용으로 기획된 광고라 한국 소비자에게 통할지 살짝 걱정됐다.


이 아이디어는 해외 소비자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어 기획되었다.

설득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건 '고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일화'가 생각나서였다.


'조선소를 만드는데 필요한 돈을 빌리기 위해 영국의 은행 담당 임원에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한국이 영국보다 철선을 훨씬 먼저 건조한 나라임을 설명해 차관을 얻었다는 일화'


그 어느 때 보다 해외 소비자들에게 한국의 이미지가 좋은 상황이고 태극기의 인지도도 높다.

사실을 뛰어넘는 위트 포인트지만, 한국의 국기 안에 자동차와 도로, 횡단보도까지 있으니 그런 한국의 자동차 회사는 얼마나 자동차를 잘 만들겠냐는 스토리.

그 스토리를 이용해 KGM을 해외에 소개하고 싶었다.

토레스부터 차량 디자인에 건곤감리를 사용하는 점도 연관성을 가져갈 수 있는 포인트였다.

그런데... 국내에 온에어해야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2024년 설 연휴를 하루 앞둔 날, 광고는 TV에 온에어되었다.

국내용으로 이 광고를 내보내자는 결정에 동의한 것은KG모빌리티가 갖고 있는 의미 때문이었다.

KG모빌리티는 올해 창사 70주년이다.

전신인 쌍용자동차는 현대, 기아 보다 먼저 설립된 한국 최초의 자동차 회사다.

많은 국민이 아는 것처럼, 이 회사는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고 노조 문제와 기업회생절차 등의 부침이 있어왔다.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다시 한국 기업의 품을 맞아 꿋꿋하게 70년을 맞이했다.

70년을 맞는 시점에서 다시 한국의 위대한 자동차 회사가 되겠다는 새로운 포부.

그 정도는 국내 소비자가 받아들여 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또 한 편의 광고를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소비자에겐 70년을 넘어 새롭게 도약하고픈 KGM의 새로운 인사로, KGM에는 칠순의 생일 선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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