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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May 09. 2024

지우개

딸아이의 숙제를 봐주다가 오랜만에 지우개를 쓰게 됐다. 

한 번도 지우개를 지우개 이상으로 본 적이 없고 별다른 의미도 둔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따라 지우개가 계속 눈에 밟혔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물어 결국 지우개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우개를 위한 메모까지 쓰게 됐다.


실은 너는 아무 잘못 없으면서 / 누군가의 틀림을 바로 잡아주려 / 네 몸을 기어이 으스러뜨리는구나




고백하건대 만약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에게 광고의 소질이 있다거나 능력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그냥 오랜 시간의 투자 때문일뿐이다. 

평범한 사람도 같은 일을 오래 하면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나의 직장 생활을 한 달 20일, 하루 8시간씩 계산해 보니 대략 47,000시간을 일한 셈이다. 

이렇게 일하고도 전문가가 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그러니 상사들이 일 잘하는 건 부러워할 일이 아니며 존경할 정도까지의 일도 아니다. 

당신도 다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며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아직 그 마일리지를 채우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종종 경력이 짧아도 실력이 월등한 사람들을 만난다. 

사실 오랜 경력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 경험의 시간에 비해 능력치가 뛰어난 사람들이 실은 진짜 실력자다.  그럼 이 사람들은 진짜 투자의 시간이 짧은데 능력이 뛰어난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실력자가 되기 위해, 같은 시간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활용하거나 자신의 쉬는 시간을 더 투자한 사람들일 것이다. 




운동을 좀 해본 사람들은 탄탄한 근육이 실은 근 섬유 일부분이 찢어지고 손상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안다. 백날 운동을 한다고 해도 근 섬유가 찢어지는 단계까지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근육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 근육도 그렇다. 우리가 하고 있는 창의적인 일이나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도 다 근육이 만들어진다. 오랜 시간 반복하면 굳은살 정도는 만들어진다. 그러나 더 빠르게 탄탄한 근육을 만들겠다면 온 힘을 다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광고대행사의 사람들은 다들 욕심이 많다. 인정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다. 자연스레 외부와의 경쟁에 더해 보이지 않는 내부 경쟁들이 일상이 되는 환경도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그래서 다들 남들보다 잘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걔 중엔 욕심은 많으면서 욕심을 해소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잘하는 방법, 강해지는 방법은 어쩌면 근육을 만드는 필수 과정인 상처받는 방법일 수도 있다. 

누구나 알 듯 그렇게 상처로 인해 근육이 만들어지면 낼 수 있는 힘도 강해진다. 


일을 잘하고 싶다면 2가지 방법이 있다.  오래오래 경험의 마일리지를 쌓아서 일을 잘하는 방법, 아픈 것을 참고서라도 빠르게 근육을 만들어 남들보다 인정받는 방법. 선택은 본인 몫이다.




어쨌거나 지우개조차 제 몸을 으스러뜨려 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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