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영 May 21. 2024

존재욕과 소유욕

광고대행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이력서 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있다. 바로 포트폴리오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지난 시간 내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 포트폴리오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


인사권자로서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볼 때마다 집요하게 검증하는 것이 있다.

해당 캠페인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얼마의 기여를 했는 가다.

보통의 광고 캠페인은 여러 사람의 인사이트와 전략, 아이디어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주목 받을 수 있지만 정작 아이디어의 전략 방향을 잡아준 사람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내용은 포트폴리오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솔직한 지원자 중에는 자신의 기여도를 가감 없이 표기하기도 한다. 오히려 이런 지원자는 믿음이 더 간다.




김어준의 저서 '건투를 빈다'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스웨덴은 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에게 인간의 소유욕과 존재욕에 대해 가르친다. 인간에겐 소유욕과 존재욕이 있는데 소유욕은 경제적 욕망을, 존재욕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

아이들에게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건 병적 사회라고 가르친다. 스웨덴의 사회 시스템이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지 않도록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많은 산업들이 비슷하겠지만 광고 역시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광고주는 광고대행사와 함께, 광고대행사는 프로덕션이나 BTL대행사들과 함께 캠페인을 만들어 간다. 

광고 대행사 내부에서도, 누군가는 광고주를 상대해 그들의 Needs를 파악하고, 누구는 파악된 니즈의 전략 방향을 만든다. 또 다른 여러 사람들은  전략 방향에 맞는 아이디어를 낸다.



20년간 가까이 근무하면서 느낀 대기업 시스템의 비열성은 상대적 평가에 있다고 느꼈다. 공정이라는 허울에 가려져 있으나 이 방식은 필요 이상의 경쟁을 유발시킨다. 남을 짓밟고 이기려는 경쟁심을 자극해 생산성을 효율적으로 올리고 싶은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경쟁은 그 만큼의 단점도 있다. 우리 부서가 잘하지 않아도 다른 부서가 못하면 상대적으로 우리가 돋보일 수 있다. 그래서 부서 이기주의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구조가 된다.

우리가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에 의하면 기업은 최소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내야 하는 집단이다.  어떤 누구도 기업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가르친 적은 없다.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라고 배운 사회이니 적은 돈을 주고 더 많은 일을 원하는 갑의 요구는 그렇게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존재욕과 소유욕의 정면대치는 대기업이나 갑과 을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일들에서도 발현된다. 나의 일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협업을 뒤로하는 일, 나의 성과를 위해 남의 성과를 작게 만들고 싶은 욕망들이 그런 것들이다.

일에 대한 욕심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심으로 변질되면 결국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하게 된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우리의 일은 혼자 할 수 없다. 눈앞의 소유욕을 충족해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며 얻어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잃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적어도 나의 경험에서는 그렇다.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 있으나 나만을 위해 채운 소유욕이 인간관계의 비극적 결론을 맺는 것처럼,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고자 하는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느라 지구는 병들어가고 있다. 

작게는 회사에서 부터 크게는 지구까지, 결국 이 모든 욕망의 결론은 비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작가의 이전글 지우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