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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04. 2022

표정의 기원을 찾아서

웃는 표정과 슬픈 표정은 왜 생겨났을까?

어느 더운 여름날, 지루한 수업 시간에 점점 멍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목소리는 점점 안 들리고 얼굴 근육에는 힘이 빠졌다. 그러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무념무상의 순간에 접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렸다. 선생님은 나보고 칠판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멍 때리고 있었던 것이 탄로 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며 다른 친구들도 본받아야 한다고 칭찬하셨다. 


선생님께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나의 무표정이 선생님을 속였다는 것에 약간 쾌감이 들기도 했다.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받아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10년 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선생님은 내 표정을 보고 수업에 집중 안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아셨던 것이다. 그래서 정신차리란 의미에서 상을 주신 것이었다. 


***


한때 표정은 세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다고 생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몇 포유 동물도 표정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이용해 서로 의사 소통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의 표정은 인간과 비슷해서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표정은 일종의 바디 랭귀지로서 기본적인 의사 소통 수단 중 하나다. 아직 체계화된 언어를 갖지 못했던 옛날, 목소리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조 의사 전달 수단으로 표정을 이용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과 간단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려 했다. 


영장류의 손은 아기를 안고 있거나, 나무를 잡고 있거나, 먹이를 움켜쥐고 있거나, 적과 싸우는 등 무언가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나 항상 쓸 수 있는 근육은 많지 않다. 그런데 눈에 잘 띄는 곳에 한가한 근육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얼굴 근육이다. 


얼굴 근육은 눈, 입과 같은 방향에 위치해 있기에 서로 간에 표정을 보거나 보여주는데 적합하다. 우리가 흔히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얘기하라고 하는 것은 그래야 서로 표정을 보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언어가 발달해서 목소리만으로도 의사 소통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전화나 음성 채팅을 해보면 알 수 있듯이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으면 무언가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자들은 1시간 동안 통화하고도 만나서 자세히 얘기하자고 한다. 목소리만으로는 상대방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데 충분한 정보를 얻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엉덩이 근육도 얼굴 근육만큼이나 한가하긴 하다. 어쩌면 한때 엉덩이 근육으로 표정을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부 원숭이 암컷은 엉덩이를 빨갛게 부풀려 발정기임을 알리는 수단으로 쓴다. 하지만 인간은 눈과 엉덩이가 반대 방향에 달린 것이 불편해서인지 잘 쓰지 않는다. (그래도 엉덩이는 여전히 눈길을 많이 받는 편이다.) 


얼굴 근육의 장점은 또 있는데, 그다지 크지 않아서 에너지 소모가 적다. (엉덩이 근육은 너무 크다.) 또 연습만 하면 근육 움직임을 얼마든지 미세하게 조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굴 표정은 인간에게 아주 유용한 정보 전달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표정은 수만 년 동안 조상들이 그 유효성을 검증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울고 웃는 법을 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표정을 흉내내며 더욱 정교하게 표정 짓는 법을 배우며 성장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거울을 쳐다보듯 서로가 서로의 표정을 흉내내다가 일종의 결맞음 상태에 이르렀다. 마치 바벨탑 이전에 모든 인류가 하나의 통일된 언어를 사용했듯이, 이제 세계 공통의 표정을 짓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짓말에 능한 인류다. 입으로 거짓말을 하듯, 표정 또한 실제 감정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즉 우리는 거짓으로 화난 표정을 지어 상대방의 기를 죽이고, 상대방은 거짓으로 슬픈 표정을 지어 우리의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 표정에 속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표정을 해석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언어의 해석이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 있듯이, 표정의 해석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같은 표정을 보고도 누구는 순진한 표정이라고 하고 누구는 음흉한 표정이라고 말한다. 이런 검증 과정을 무사 통과하기 위해 사람들의 표정 연기는 지금처럼 정교하고 다양해졌다.


이제 인간의 다양한 표정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적지만 분명 에너지가 소모되는 행동이다. 모든 생물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따라서 표정에는 분명히 중요하고 확실한 의미와 목적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의미와 목적은 분명히 생존 또는 생존 자원의 득실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표정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고, 감정은 생존에의 위협이나 먹잇감의 득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슬픈 표정 


슬픈 표정은 내 몫이었거나 내 몫이 될 줄 알았던 생존 자원을 상실했다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 짓는다. 예를 들어 먹을 것을 잃어버리거나, 사냥터를 적에게 빼앗기거나, 협업 파트너가 배신하거나, 집단에서 쫓겨나는 등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이 생기면 우리는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인다.


슬픈 표정을 지을 때는 흔히 눈물을 함께 흘린다. 눈물의 성분은 대부분 수분이다. 그런데 수분이 부족하면 인간은 죽는다. 따라서 소중한 눈물을 아무런 목적없이 흘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눈물은 1차적으로 눈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또 스트레스 호르몬이나 신경 전달 물질을 배출시켜 생화학적으로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눈물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해도 우리는 눈물을 자주 흘리지 않는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보다 남들이 볼 때 주로 눈물을 흘린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눈물은 건강 유지 보다는 표정의 일부로 의사 전달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훨씬 더 많이 쓰인다고 볼 수 있다.


눈물은 슬픈 표정의 일부로 매우 강력한 의사 전달 수단이다. 특히 여자의 눈물은 그 어떤 말보다 더 강력한 언어라는 것을 남자들은 잘 안다. (매번 속기 때문에. 단 여자는 여자의 눈물에 안 속는다.) 눈물에는 자신이 많은 생존 자원을 잃었다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강조하겠다는 목적이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울고 나면 눈물을 멈추게 된다. 상대방에게 나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되어 만족감과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울고 나면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이유다. 


아직 언어가 없던 시절, 다른 사람에게 내가 생존 자원을 상실했다는 정보를 전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생존 자원은 대부분 음식이었다. 따라서 음식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여줘야 하지만 이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음식만큼 중요한 생존 자원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물은 음식 못지않게 중요한 생존 자원이다. 따라서 물을 신체 밖으로 흘려보내서 자신이 소중한 생존 자원을 잃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이해하기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신체에서 눈에 잘 띄게 흘릴 수 있는 물은 눈물, 콧물, 침이다. 그중 콧물은 쥐어 짤 수가 없고 침은 그냥 흘려 버리기엔 아깝다. 따라서 가장 눈에 잘 띄고 버려도 덜 아까운 눈물을 흘리기로 했을 것이다. (눈물, 콧물, 침 다 흘리면서 울기도 한다.)


좀더 따져 보면 신체의 물은 생화학적으로 에너지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세포 속에 글리코겐의 형태로 에너지가 저장된다. 그런데 글리코겐이 세포에서 빠져나갈 때 물도 같이 빠져나간다. 따라서 눈물이 난다는 것은 몸속 에너지, 즉 나의 생존 자원을 잃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로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닥쳤음을 상대방에게 호소한다. 이를 통해 상대방에게 도움이나 양보를 요청한다. 눈물샘을 자극하여 눈물을 내려면 얼굴, 특히 눈 주변의 근육들을 긴장시켜서 눈물샘을 쥐어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슬픈 표정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소리를 내서 우는 것은 내 표정을 안 보고 있는 상대방에게 집중해 달라고 호소하는 의미일 것이다. (이건 큰아들이 아기였을 때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슬픈 표정을 짓는데 능숙하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닌데 거짓 슬픈 표정을 지어 상대방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슬픈 표정이 진짜인지 엄격하게 검증하려 한다. 정말로 도움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상대방을 속이려면 단순히 슬픈 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눈물 정도는 있어야 한다.  1980년대 일본의 아이돌 스타인 마츠다 세이코는 이 사실을 잘 몰랐다. 그녀는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할 때마다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다. 그런데 매번 얼굴만 찡그릴 뿐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방 알아봤다. 모두 그녀가 감격한 것이 아니라 감격한 척 연기한 것이라는 걸.


그녀는 눈물 연기를 배워야 한다. 와이프에게.     


기쁜 표정


기쁜 표정은 슬픈 표정과 반대다. 이는 한마디로 생존 자원을 얻었거나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짓는 표정이다. 우리는 식량을 얻거나, 맘에 드는 협업 파트너를 만나거나, 집단에서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등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사건이 생겼을 때 기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왜 기쁠 때 양쪽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때론 이빨과 입 속까지 보여주는 것일까? 아마 이 또한 슬픈 표정과 마찬가지로 식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옛날 초기 인류에게 가장 기쁜 일은 식량을 구해서 배불리 먹었을 때다. 배가 가득 차면 최대 3주의 생존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집단의 구성원에게 음식이 찾았다는 사실과 식량의 종류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내가 식량을 찾은 곳을 찾아가 역시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던 시절에는 그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식량이 있다는 사실과 식량의 종류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아마 입 속에 있는 식량을 보여주는 방법이 가장 확실했을 것이다. 입 속의 고기 조각, 털, 핏물, 열매 껍질, 물고기 비늘 등은 식량의 종류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이다. 이를 상대방에게 잘 보여주려면 입술을 벌려 입안을 보여줘야 한다. 


만약 여러 종류의 식량을 구해 입에 넣었다면 입을 더 크게 벌려야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식량은 더 긴 시간의 생존을 보장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은 확실히 더 큰 기쁨이다. 지금도 매우 기쁜 일이 있으면 크게 입을 벌려 웃는 이유다. 


우리는 사이가 안 좋거나 믿을 수 없는 사람 앞에서는 쉽사리 웃지 않는다. 그들이 농담을 건네거나 선물을 줘도 기쁜 표정을 쉽사리 짓지 않고 경계한다. 왜냐하면 믿지 못할 사람에게 입 안의 식량을 보여주면 남은 음식을 뺏기거나 숨겨둔 사냥터가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나 가족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마음 놓고 크게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상대방을 신뢰하는 척해야 할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야 상대방과의 협업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웃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억지로라도 웃는다. 가끔은 와이프 앞에서도.     


화난 표정


화난 표정은 누군가 생존에 위협을 가하거나, 생존 자원을 뺏으려 할 때 이를 지키기 위해 짓는 표정이다. 누군가 내 식량을 뺏으려 한다면 싸워서 지켜야 한다. 하찮아 보이는 열매 하나라도 그게 이번 주의 마지막 식량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싸우기 위해서는 온몸의 근육에 힘을 주어 긴장시켜야 한다. 언제든지 상대방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송곳니와 강한 턱은 아주 훌륭한 무기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 상대방에게 뾰족한 송곳니를 보여주고 턱 근육에 힘을 주어 긴장시킨다. 개가 밥그릇을 뺏겨 으르렁거릴 때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표정이다.      


억울한 표정


억울한 표정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 부족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한 후 배분 받은 고기가 다른 사람보다 적을 때, 우리는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불공평한 배분을 계속하면 나의 생존에 악영향이 있으니 이를 시정해 달라는 의사를 부족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가 없었으니 표정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억울한 표정은 입을 꼭 다물고 아래 입술이 약간 튀어나온 모습이다. 이 표정은 내 입 속에 식량이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겠다, 내 입 안에 들어온 음식을 다시 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운명을 같이하는 집단 구성원이라면 자신이 어떤 열매를 얼만큼 채집했고, 어떤 사냥감을 얼마나 잡았는지 서로 정보 공유를 해야 한다. 때론 입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배분을 적게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즉 억울한 표정으로 협업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와이프를 보면서 생각해냈다.)     


놀란 표정


놀란 표정은 생존에 영향을 줄 지도 모를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을 때 나온다. 여기서 갑작스럽다는 것은 감각 기관에 들어온 정보를 상세히 분석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즉 아직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뭔가 좋지 않을 사건일 수도 있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놀랄 만한 일이 생기면 신체는 일단 살아남기 위한 대비를 한다. 우선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다가오는 물체를 막거나, 몸을 움츠리고 눈을 감아 중요 신체 기관을 보호한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 상대도 놀라게 하고 같은 편에게는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알린다. 또 두뇌는 다른 일을 멈추고 현재의 상황 파악에 집중한다. (깜짝 놀라고 나면 좀 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다.) 신체는 심장 박동수를 높이고 근육을 긴장시킨다. 그리고 회피해야 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할지 결정될 때까지 긴급 출동 준비를 한다. 


우리가 놀랐을 때 ‘헉’하면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몸속 세포들에게 산소를 충분히 공급해 두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놀란 얼굴 표정은 숨을 빨리, 크게 들이마실 때 생기는 얼굴 근육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으로 놀란 척하기도 한다. 누군가 깜짝 놀랄 만한 뉴스라고 얘기하면 우린 별것 아님에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해야 협업 관계가 유지되어 다음에도 또 정보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리액션이 약한 연예인은 먹고살기 어렵다.)     


괴로운 표정


괴로운 표정은 슬픈 표정과 비슷하다. 두 표정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마 괴로울 때는 탄식을 내뱉는 것이 슬픈 표정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면 통증을 줄이기 위해 몸에 힘을 빼야 한다. 이때는 놀랐을 때와 반대로 숨을 내쉬면서 근육의 힘을 빼야 통증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느린 호흡은 근육을 이완시켜서 통증 감소에 효과적이다. 자연 분만을 하는 산모들이 라마즈 분만법을 따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아프거나 괴로우면 자연스럽게 탄식과 함께 숨을 내쉰다. 숨을 길게 내쉬기 위해 얼굴 근육을 움직이다 보니 얼굴을 찡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입맞춤


입맞춤은 표정이 아니다. 하지만 얼굴 근육을 이용한 정보 교환 수단이긴 하다. 우리는 서로 친밀감을 보여주기 위해 키스를 한다. 하지만 키스는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다. 원숭이와 같은 포유류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강한 유대감을 표현할 때 키스를 한다. 


먼 과거, 키스는 가족이나 배우자처럼 친밀한 사람에게 자신의 입안을 확인시켜 주는 행위였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상대방 몰래 음식을 먹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중요한 생존 자원을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키스의 역사를 좀 더 과거까지 올라간다면 아마 입에서 입으로 먹잇감을 건네 주던 것에 이를 것이다. 소중한 먹잇감을 건네 줄 정도라면 상대방을 대단히 신뢰할 만한 협업 파트너로 인정하는 셈이다. 무대 위의 연예인이 관객을 향해 입술을 내밀고 키스하는 시늉을 한다, 이는 관객 모두를 자신과의 운명 공동체로 여긴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다. 


키스 중에 프렌치 키스는 좀 더 깊은 유대감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혀가 내 입 속을 더듬게 해서 구석구석 숨겨놓은 음식이 있다면 서로 공유한다. 음식이 없더라도 서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이를 통해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의사가 표현된다. 그런 행동이 수백만 년 지속되었다. 이제 입 속에 음식을 남겨두지 않는 현대인들도 프렌치 키스를 하다 보면 강력한 유대감이 든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난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


인간은 입으로 쉴 새 없이 거짓말하듯 얼굴로는 가짜 표정을 짓는다. 이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속여서 나에게 유리한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슬픈데도 기쁜 표정을, 기쁜데도 슬픈 표정을 지을 줄 안다. 인류 최초의 거짓말은 얼굴에 쓰여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거짓 표정을 지으려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프로파일러들은 용의자의 순간의 표정에서 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간파한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표정은 숨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수록 우리는 거짓 표정을 더욱 잘 짓기 위해 노력한다. 


***


우리 집에도 거짓 표정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생존 자원을 취하는 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와이프다. 와이프는 특히 화난 표정을 잘 꾸며낸다. 


난 와이프가 나에게 진짜로 화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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