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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 May 03. 2024

두 보고서, 무엇이 달랐을까?

한국인과 미국인, 대학원생이 쓴 보고서의 차이

환경정책, 영어 토론 수업


2006년 가을, 미국에 유학 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 게다가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매주 금요일, '환경정책' 시간이 제일 고역이었다. 3시간 내내, 토론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학생은 모두 15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대기, 수질오염, 폐기물 등 매주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미리 수업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하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망설이다, 시간이 지나갔다. 수업시간 내내 긴장되고, 교수님 눈치가 보여 좌불안석이었다. 수업이 진행된 지 3주째 되는 날, 면담을 신청했다.


"교수님, 저는 한국의 환경정책 분야에서 10여 년간 일을 해 왔고, 많은 경험과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현장에서 부족했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영어 스피킹이 익숙하지 못해, 수업시간 토론에 많이 참여하지 못하는데, 교수님께서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  Mr. sudal,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외국 학생이 토론수업에 참여하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나도 도와줄 테니, 편하게 수업에 참여하도록 하세요."


교수님과 면담 이후, 수업 참여가 한결 편안해졌다. 수업준비도 더 열심히 했다. 그날의 주제에 대해 교재와 자료를 찾아보고, 토론에 참여할 토킹 포인트도 미리 준비했다. 덕분에 짧게 한두 마디라도 토론에 참여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네이티브 스피커인 미국 학생들에 비해 나의 토론 참여는 크게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현장 경험을 가진 경력자인데, 젊은 미국인 학생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중간고사, 리포트 시험


2달 정도 수업이 진행된 후,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다.

다행히 시험은 토론이 아닌, 보고서(리포트)를 내는 것이었다. '대기오염(Air pollution)을 줄이는 정책수단의 효과와 한계'에 대해 10페이지 정도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한국의 대기오염에 관한 정책자료를 찾아보고, 이걸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영어로 말하기는 잘 안 되지만, 보고서는 남들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주 안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1주일간 자료조사, 3일간 보고서 초안 작성, 나머지 3일은 학교 안에 있는 '에디팅 센터'에서 보고서를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돕기 위해 학교에 에디팅 센터가 있었다. 본인이 작성한 영문보고서 초안을 제출하면, 하루 뒤에 수정과 첨삭 지도를 해주고, 필요하면, 직접 에디터가 상담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중간고사 보고서를 제출하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오던 교수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 하셨다.

"Hey, Mr. sudal, you excellent~~~!!"

그리고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셨다.

무슨 의미인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지난번 중간고사로 제출했던 보고서 채점결과를 나누어주셨다.


나의 점수는 "92점"이었다.

이어서 교수님은 칠판에 15명 학생들의 중간고사 점수 분포를 쓰기 시작했다. 프라이버시를 감안해 개인별 점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점수들을 받았는지 점수분포를 공개했다.   


최고점은 95점, 다음이 92점(내점수였다, 2등~~~!!), 90점, 85점, 70점, 60점,...

계속해서 점수를 적어 내려가는데, 이후가 충격이었다. 60점보다 낮은 점수도 많이 있었다. 심지어 낙제점이라고 하는 40점에도 미달하는 점수도 여럿 보였다, 38점, 35점 30점 등등....


전체 15명 중, 80점 이상 고득점이 5명, 60점 미만의 낮은 득점자가 7명이나 되었다. 놀라운 것은 40점 미만의 낙제점을 받은 학생이 4명이나 있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수업 시간에 모두들 열심히 토론했는데, 왜 이리 낮은 점수를 받았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고서 작성의 기본원칙


이날 교수님은 환경정책에 대한 토론수업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보고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해 특강을 하셨다. 이번 중간고사 보고서 중 하나를 복사해 나누어 주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샘플 보고서의 글씨체가 꽤 낯이 익었다. 내 보고서였다. 1등 한 학생도 있는데, 왜 굳이 내 보고서를 샘플로 하셨을까, 궁금했다.


"여러분, 보고서를 잘 쓰려면, 몇 가지 기본원칙을 꼭 지켜야 합니다."

첫째, 보고서에 제목을 써 주세요. 가능하면, 단원별 소제목도 포함해 주세요.
       (충격이었다. 보고서에 제목도 쓰지 않은 학생이 있다고? 소제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보고서 전체의
         제목도 없이 보고서를 쓴 학생이 있다니, 참 놀라웠다.)     
둘째, 보고서 전체 구성을 서론/본론/결론, 또는 현황/문제점/대책으로 구분하여 작성해 주세요.
       (단락 구분도 없이, 소설 쓰듯이 줄줄이 보고서를 쓴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셋째, 생각이나 주장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이걸 뒷받침하는 근거나, 논거를 제시해 주세요.
       (결론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근거 없이, 자기주장과 의견위주로 보고서를 쓴 친구도 있었다.)



이날 교수님이 강조하신 "보고서 잘 쓰는 법"은 간단했다.

"제목 달아라, 서론본론결론 구분해라,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라." 

이 세 가지가 전부였다.


교수님이 설명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의아했다.

"당연한 말씀인 것 같은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실까?"

당연한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이 있어서 하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왜 내 보고서가 샘플로 채택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교수님이 제시하신 보고서의 기본원칙을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었다.(본의 아니게 내 자랑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조금 쑥스럽기는 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토론시간에 느꼈던 당혹감과 패배감이 해소되었다. 토론을 유창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서툴더라도 의미가 중요한 말을 한다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토론시간에도 기죽지 않고, 서툴지만 자신 있게, 생각을 제시할 수 있었다.


직장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사원들의 경우, 보고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 보고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좋은 책이 많이 있다. 신가영 님이 쓴 "신입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보고서 잘 쓰는 법", 윤영돈 님이 '보고서 마스터'에서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두 책에서 보고서 잘 쓰는 법을 찾아보았다. 표현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인 교수님이 강조하셨던, 세 가지는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보고서를 잘 쓰려면, 오랜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계속 훈련하면 좋은 보고서가 몸에 베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보고서란? 보고서 잘 쓰는 법


<좋은 보고서란?>  - "신입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보고서 잘 쓰는 법"(저자, 신가영)
1. 방향이 잡힌, 잘 만든 보고서 (보고의 대상, 목적, 의도 파악하기)
2. 헷갈리지 않는, 명확한 보고서 (보고서를 통해 하고 싶은 말, 스토리라인 도출)
3. 반박할 수 없는, 탄탄한 보고서 (신뢰성, 논리성 높여줄 탄탄한 자료를 선별하여 제시)
4. 한눈에 읽히는, 깔끔한 보고서 (메시지가 명확히 보이는 레이아웃, 통일성, 가독성)


<보고서 잘 쓰는 법 4가지>  - "보고서 마스터"(저자, 윤영돈)
1. 보고의 목적과 목표를 파악하라.
2. 논리적인 목차를 잡아라.
3. 제목이 첫인상을 결정한다.
4. 자료를 충분히 갖추고 초고를 작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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