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낙제한 아들을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보낸 성장 양육 스토리
2-5. 올바른 공부 자극으로 이끌기
아들의 관심사와 재능의 씨앗에 싹을 틔우도록 적절히 물을 주면서도 마음의 거리를 두려는 노력은 스스로 생각해도 잘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공부와 학업 습관에 대한 부분은 다소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들이 제주도에서 생활할 때, 나는 30대 중반에 공공기관 신입 공채로 입사해 한참 나이 많은 사원으로 회사생활에 적응하며 야근하기 바빴다. 아들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학업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교우 관계가 좋고 각종 스포츠에 재능을 보이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음에 만족감이 컸다. 무엇보다 좋은 학교를 보냈으니 학교가 알아서 잘 돌봐주겠거니 막연히 믿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아들의 공부에는 솔직히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5학년을 마치던 해 낙제한 성적표를 받아온 것이었다. 그나마 잘 하던 수학만 최종 성적이 B 학점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나머지는 거의 C 아니면 D 학점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실망스럽긴 했지만 사실 그때만 해도 별 위기의식이 없었다. 공부를 안 시켰으니 그럴 만한 거라 스스로 합리화하며, 아들에게는 열심히 하겠다는 막연한 다짐만을 받고 다시 잘 지도해 줄 학교를 믿으며 바쁜 내 생활로 돌아갔던 것 같다.
그런데 그다음 해 또다시 낙제한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이다. 바보같이 전혀 예상을 못 한 결과라 정말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학교 규정상 2년 연속 낙제한 경우 한 학년을 유급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 가야 한다는 행정실 연락까지 받게 되었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창피했으며 부끄러웠다. 내 아들이 학교에서 정한 최소한의 학업 수준도 못 따라간 2년 연속 낙제생이라니. 그것도 나이와 학년에 맞는 공부를 따라갈 수 없으니 한 학년을 낮춰 다시 배우거나 다른 학교로 강제전학을 가야 한다니. 아이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도대체 그동안 뭘 하느라 아이가 이렇게 학교에서 함량 미달 평가를 받을 때까지 2년의 긴 시간 동안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었단 말인가.
아이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함량 미달로 느껴졌다. 부모로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무너졌다. 단순히 공부를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상태를 전혀 모르고 최소한의 수준도 못 따라가도록 내버려 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어쩔 줄 모르는 아이를 보고 있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며 이 상황의 원인을 생각하는 동안 아이가 어느 순간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생활을 룰루랄라 즐기고 노느라 공부를 안 한 탓도 물론 크겠지만 그간 엄마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말 못 하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재혼과 새아빠 그리고 곧 태어날 동생까지. 새아빠가 얼마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좋은 사람인가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충격이고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을 거였다. 그런 마음의 갈등이 부진한 학업의 결과로 나타났겠다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아이에게 화를 낼 수 없고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당시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하나 고민하던 중 강연으로 유명한 김미경 강사의 일화가 생각났다. 당신 아들이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서 자퇴했을 때 뒤집히는 속마음과 달리‘축 자퇴’라는 플랜 카드를 붙여놓고 격려했다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뛰어난 사람이 되었을 때 평범하게 성공한 사람보다 자퇴도 한 번쯤 해 본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더 멋있지 않겠냐며 아들을 격려했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역시 스타 강사 엄마라 다르다는 생각을 당시 했던 기억이 나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비슷한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생겨버린 것이다.
아들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 한편에 비록 ‘축 2년 연속 낙제’ 나 ‘축 유급’이라는 현수막은 못 걸어도 비슷한 얘기를 해보리라 마음먹어졌다.
최대한 차분하게 “이번 일을 가볍게 보지도 말고 그러나 실패했다고도 생각지 말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화나는 건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거지만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 뒤돌아보면 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되어있을 수 있어. 그러니 우리 한번 반전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자.”라는 뜻을 담아 다독였다.
돌이켜볼 때 아이를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았던 건 참 잘했던 것 같고 위기 상황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날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아이의 마음을 그리고 학업을 리셋해야 했다. 실패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지 않도록 그러나 실패에서 교훈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두 달 정도 대치동 학원에 보냈다. 선행학원은 아니고 독서와 글쓰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외고 준비반 원서강독 학원이었다. 어찌 보면 부족한 학습능력을 당장 높이기에는 별 연관성 없는 듯했으나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학업에 매달리는지 그리고 영어 잘 하는 아이들 또한 얼마나 많은지 생생히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아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대치동 학원가 분위기와 일찍부터 많은 공부량이 몸에 배 거의 기계처럼 공부하는 것 같은 또래들의 모습에 충격받은 듯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주어진 기회를 가볍게 여겼으며 영어 실력 또한 여전히 부족한지 제대로 깨닫는 듯했다.
아들의 생각이 변화되는 틈을 타 처음으로 개인 과외를 하며 2년간 부족했던 영어와 수학의 기본기를 다지도록 했다. 당시 미국의 육사 과정 학교를 졸업 후 의대를 준비하는 똑똑하고 성실한 학생에게 기초부터 차근히 배우는 시간은 단순히 공부뿐 아니라 정신교육까지 받는 것 같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자기계발서를 읽도록 했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와 같은 쉽게 읽히면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삶을 점검하도록 격려했다. 아들은 ‘공은 여기서 멈춘다.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와 같은 문구들을 가슴에 새기며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선택해야 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 학년 후배들과 다시 다니든지 아니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던지 말이다. 긴 이야기 끝에 후배들과 같은 학년을 또 다니는 건 죽어도 싫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 전학 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주변에는 가족의 필요 때문에 전학 가는 것으로 알리고 모든 짐을 싸서 올라오던 당시 기분은 마치 한국에서 도망치듯이 하와이로 떠나던 때와 비슷했다. 다른 게 있다면 오랫동안 간절히 바란 뒤 선물처럼 얻은 소중한 기회를 엄마의 어리석음과 아들의 노력 부족으로 아깝게 날려버린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_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