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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Jun 27. 2023

매일 바라보는 이다일

학나경 인터뷰 #24

이다일은, 학나경을 운영하면서 가장 인터뷰해보고 싶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이다일은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왜 바라보게 되는지를 꾸준히 되묻고 무의식에서 캐낸다. 이다일은 스스로의 시선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그가 바라보는 것들, 그가 바라보는 타인이 궁금했다.

로운.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다일. 평일에는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개 산책을 한다. 요 근래 특히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 평소보다 더 많이 걸어다닌다. 데이트 할 때도 그렇고, 개랑 하는 산책 시간도 훨씬 길어졌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멍하니 걷는 게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지루하게 걷는 건 또 못 견딘다. 그래서 산도 별로 안좋아한다. 산은 올라가는 내내 나무밖에 없어서 풍경이 단조롭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심을 걷는 건데, 풍경이 바뀌는 게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로운. 무엇을 하면서 걸어다니는가?

다일. 크게 3개로 나뉜다. 여자친구랑은 데이트를 하면서 걷는 것이고, 강아지랑 걸을 때는 바닥에 있는 게 잘 보여서 자연스럽게 바닥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 도심엔 돌 사이에 꽃이 진짜 많다. 개가 냄새를 맡으면서 돌아다니니 나도 보게 된다. 되게 새롭다. 그런 풍경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좀 받는다. 혼자 걸을 땐 멍 때릴 수 있는 패턴을 찾는다. 을지로를 자주 가는데, 을지로에 있는 건물들은 창문이 동일하다. 보도블록도 마찬가지로 같은 모양의 블록들이 겹쳐져있다. 그런 무늬들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니까 걸으면서도 멍 때리게된다. 그러다 되돌아보면 이런 재밌는 것들이 있었구나 하고 즐거워한다. 생각을 안하려고 걷는 건데, 걷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걸 생각하게 된다.


로운. 요새 하는 생각을 들려준다면.

다일. ‘시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같은 걸 봐도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게 신기하다. 이렇게나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 막막한데, 또 재밌다. 요가를 배우며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내 삶이 나를 통해 흐르게 해요’라는 말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한다. 아등바등 무언가 선택하려고 할 때는 지치고, 어렵고, 답답했는데 흘러가는대로 그러려니 하기 시작하니 나름 즐겁다. 특히 내 동거견을 보면서 더 깊게 느낀다. 주어진대로 온 마음을 다해 즐거운 아이다. 아주 작은 일도 온 마음을 다해서 즐겁기. 오래된 내 인생 모토인데, 동거견에게 배우고 있다. 나는 아직 멀었다고 느낀다. ‘시선’과 ‘흘러가는 순간’에 대한 생각은 결국 ‘자기확신’에 대한 생각으로 모인다. 어떻게 하면 내 시선에 이 순간에 확신을 가질 수있을까. 

로운. 본인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은 같은 주제를 놓고 보아도 항상 다른데, 사람마다 시선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하고, 한 사람의 시선 역시 맥락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신기하다. 가령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술에 대댛해 이하기더라도, 내가 한창 조주기능사에 대해 공부할 때는 그 술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의 종류들이 궁금하고, 주식 공부를 할 때에는 그 술을 만든 회사가 궁금했듯이. 그런 측면에서 나의 시선이란 것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일. 오히려 맥락마다 달라지는 시선들 때문에 오히려 자기확신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확신은 영원한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 조주기능사를 공부하면서 술을 본다면, 그 순간에 ‘아 나는 정말 조주기능사에 관심이 있구나’ 라면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지금 이 순간 나의 생각에 대해 확신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되는지에 따라, 지금 나를 둘러싼 상황 속의 나에 대한 확신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로운. 그럼 시선은 결국 지금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매개체인 것이겠다.

다일. 맞다. 근데 어떤 경우는 새롭게 나를 깨닫게 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취향의 사진을 좋아했다는 걸 알게됐다. 한편으로는 나를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것들에는 개인의 주관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기 마련이다. 프레임은 더 넓은 시선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한계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순간만큼은 프레임 속에 집중하게 만든다. 프레임이 가지는 ‘가둔다’는 부정적 의미와 달리, 이다일은 프레임이 주는 ‘집중’의 성격을 발견해냈다.

로운. 누가 물어보지 않더라도 먼저 사람들과 깊이 있게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다일. 풍크툼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유독 내게만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가’ 묻고 싶다. 모두에게 삐죽한 하나는 있을텐데, 누군가는 그 뾰족함을 숨기고 싶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감성적’이라며 오글거려한다. 사회가 꽤나 많은 이야기들을 그저 오글거리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느낌이 있다. 나의  풍크툼은 길가의 쓰레기와 끄트머리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괜히 찍어 모으기도 했고, 힘든 날이면 감정이입을 하기도 했다. 손끝, 삐죽 튀어나와 빛을 받은 잔머리, 책상의 끝, 하루의 끝, 종이의 모서리, 코끝, 소매와 옷단, 그외 많은 끄트머리들을 좋아한다. 끄트머리에서 느끼는 불안함과 해방감을 좋아한다. 아슬아슬하지만 곧 자유가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것말고도 각자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즐겁게 대화하고 싶다. ‘난 커서 가면라이더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같은 대화를 하고 싶다. 왜 어른의 꿈이 가면라이더면 안되는가.

로운. 풍크툼이 의미하는 것이 어떤 유형의 것이라면, 나의 풍크툼은 그늘이다. 이다일처럼 꽂혔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주의깊게 관심을 두진 않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니 그늘이라는 존재에 의지를 많이 해오고 있었다. 그늘은 그림자인데, 평소에도 그림자를 보면 사진을 찍고 싶어지기도 하고 실제로 좋은 그림자를 발견하면 카메라 렌즈부터 들이밀곤 한다. 또 그늘은 빛을 충분히 받지 않는 부분인데, 그런 관심 받지 않는 영역도 신경을 많이 쓰곤 한다. 정보를 많이 파악하고 싶어하는 편이라, 어떤 부정적인 면모를 표현할 때도 그늘지다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런 그늘진 부분의 정보들까지 다 궁금해한다. 사람의 그늘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서 사람들의 그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겁다. 또 무엇보다, 그늘은 시원하지 않은가. 모든 것의 그늘은 나에게 관심거리다. 설령 그것이 가끔은 벅찰 때가 있더라도.

다일. 나는 길가의 쓰레기를 보면 많이 찍는다. 대학교 선배가 알려줘서 알게 됐는데, 그 후로도 대화를 끝맺기 전까지는 나도 왜 쓰레기를 찍는지 몰랐다. 나의 풍크툼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다보면 더 많은 의미를 캐게된다. 원래 풍크툼의 의미 자체가 설명할 수 없는데도 꽂히는 것이다. 그걸 혼자서 캐물어가면서 생각이 확장되더라.


로운. 이다일의 풍크툼인 길가의 쓰레기와 끄트머리가 강렬하게 느껴지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다일. 쓰레기는 소외받고 손가락질 받는 것 아닌가. 우울증 때문에 관심갖게 되었다. 나 역시도 스스로 그렇게 버려졌다고 생각해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다. 끄트머리는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됐다고 볼 수 있는데, 미술관에 갔던 어느 때에 그림 하나에 꽂혔다. 몇 걸음 뒤에서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다보니 내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내 주변 시야에 그 사람들이 받는 빛의 실루엣들만 보였는데 그게 엄청 예뻐서 눈에 들어오더라. 우울한 상태에서 끄트머리가 밝은 사람들이 보이다 보니 거기에 꽂힌 것 같다. 근데 이런 것도 이 대화를 하면서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로운. 감정이입을 했다는 것이, 중경삼림의 경찰같기도 하다.


로운. 본인이 되고 싶은 모습의 이상향이 있다면?

다일. 자기 주관이 뚜렷한데, 그게 고집이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많은 분들의 워너비인 윤여정씨 같은 사람?, 변화하는 사람이고도 싶다. 얼마전에 한 호텔 디자이너의 인터뷰 아티클을 읽었는데 ‘나’라는 틀에 갇히기 싫었다는 답을 보고 생각을 많이 했다. 주관은 갖되 나에게 갇히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로운. 나에게 갇힌다는 표현의 의미가 궁금하다.

다일. 이상향이라는 게, 내가 정한 나의 모습을 내가 강요하는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캐릭터를 유지하도록 밀어붙이는 걸 나한테 갇힌 거라고 생각한다. 난 좀 그런 편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재밌어하는 부분이 변하기 마련인데, 나도 거기에 맞춰서 변해야하지 않나 싶은데 가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어두운 톤의 사진을 좋아하는데, 바다 사진을 찍더라도 내가 어두운 톤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둡게 보정해야하나 싶은 때가 있다. 이런 모습이 내가 나에게 갇힌 것 같은 순간이다. 이게 이어지면 실제 나와 괴리감이 점점 생겨서 싫다.  모든 상황에서 이 캐릭터를 유지해야한다는 건 고집인 것 같다. 윤여정 선생님이 그런 면에서 정말 멋있는 것 같다 자기 확신이 뚜렷한데 고집부리지 않는 사람이지않나. 그게 멋있다.


로운. 이다일이 지닌, 학나경의 요소를 제외하고 가장 특별한 색깔이 있다면.

다일.  시도와 자기 긍정.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 영화를 찍었을 때도, 광고가 하고 싶어 무작정 광고 회사들을 찾아다녔을 때도, 작가가 되고 싶어 일기장 속 짧을 글들을 인쇄했을 때도, 사진이 좋아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3D를 공부해볼 때도 큰 고민 없이 일단 시도했던 것 같다.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시도한다. 물론, 나이와 삶에 찌들어 주저하는 일도 많아졌고, 현실적으로 시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조금의 가능성만 있어도 일단 하고 본다. 이렇게 망설임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데에는 자기 긍정도 한 몫 한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긍정이 재밌는 삶에 도움이 된다.

로운. 사회가 중시하는 학나경이라는 요소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어떤가.

다일. 사회가 중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시선이지만, 중요도만 따진다면 역시 중요하다. 정확히는 학나경을 둘러싸고 공고화 된 요소들이 중요하다. 학교가 좋다는 건 학교가 아니라 그 학교가 주는 학연, 인식, 인프라 같은 요소들이 좋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 경력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좋은 게 좋은 거지. 다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둘러싸고 있는 요소가 중요한 거라면, 학나경 없이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요소들이다.

이다일은 학나경 운영진만큼이나 개개인이 가진 시선에 관심을 갖는다. 스스로도 스스로가 즐거워하는 것들을 찾고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타인들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갖고 있는 시선들을 꺼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이다일은 그 순간의 시선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다. 지금의 시선이 결국 나중에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다일이 발견하는 시선들은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가 담아낸 시선들이 궁금할 따름이다.

작성자 손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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