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니스에서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다시 갔을지도.
딱 10년 만이었다, 우리의 재회. 눈 감고도 짚을 수 있을 것 같던 실루엣은 그대로였지만 세세히 살펴보거든 알듯 말 듯 갸우뚱하게 만드는 무언가 있었다. 잔잔한 듯 금방이라도 몸뚱이로 올라탈 것 같은 파도뭉치가 눈에 띄었다. 푸른빛 지중해 그 위로 반짝이는 윤슬이 진주알 빛깔처럼 떠오르자, 우리의 그날이 부표처럼 떠올랐다. 그래, 정말 10년 만이야.
핑크빛 외벽이 아름다운 웨스트민스터 호텔 발코니에 바로 서서 눈을 감자, 10년 전 우리가 떠오르는 듯했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진부하고도 무수한 그날의 기억들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코끝을 간지럽히던 한 줌의 미스트랄이 우리를 마침 그날로 회귀시키는 듯했다.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이왕 가는 거, 이곳저곳 가보자며 일순간 번뜩였던 내 알량한 욕심 때문이었을까, 경유지를 여럿 추가하는 바람에 도착까지 길어진 여정. 돌아 돌아서 그렇게 갔나 보다. 가기 전에는 그토록 궁금했던 모습이 막상 마주하자 언제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을 이웃집 할머니 같았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 체크인 시간을 맞추지 못한 우리는 짐을 서둘러 맡기었다. 그새 리모델링을 마친 호텔의 인포메이션 데스크는 자리를 옮기었고, 그때는 없었던 유리 벽 엘리베이터가 우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의 둘만의 자유여행, 마음속은 아직도 허니문이었지만 이미 지나친 무심한 세월의 흔적에 애써 진정시키고 있던 터였다. 10년 전 우리의 발자취를 혹시라도 알아봐 줄까 내심 기대를 했지만 친절하고도 사무적인 그녀의 말투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마침 같았다, 우리 층. 꼭 그때 그 방 같았으니까. 그저 지나치는 말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로 다시 오게 된 이곳은 마치 오래전 짝사랑을 조우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무심코 열어젖힌 발코니 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남편과 나는 삼 년을 연애했다. 그래도 사계절을 세 번 겪었으니 알만한 것은 다 알 것 같은 착각에 결혼식을 올렸었나 보다. 신혼 초 치약뚜껑만으로도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나는 그때 몰랐을까. 뺨 한편에 떨어진 눈썹마저 사랑스러웠던 그가 벗어버린 양말 한 짝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예정에도 없던 친구와의 약속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에게 지나친 무례함을 느꼈던 지난 날들. 나 홀로 밤을 나며 혼자가 되던 나날, 구슬피 불어오던 봄바람에 몰아쉬던 깊은 한숨.
그럼에도, 나는 그를 사랑한다.
어떤 시간 속에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지금까지도 꿈속에서 그를 찾아 헤맬 만큼 사랑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쓰는 사랑고백,
그렇게 우리는 10년의 사랑을 되찾아 그곳에 다시금 당도했다.
추억 속의 그곳에서 지금보다 더 까맣게 타오르던, 팽팽했던 지난 주름 애써 잊으며 튀어나온 뱃살을 숨 참아 집어넣으며 사진 찍을 때 너는 어떤 생각이 들었니.
부부, 우리를 스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들.
모르겠다. 시간과 돈과 많은 것을 쏟아부어 다시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곳들, 혹은 문을 닫은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지나친 생각들이 내 마음속 아로새겼다. 한참을 올라간 전망대에 서서 바라본 니스 앞바다에 갑작스레 눈물이 흐른다.
어쩌면 몰라,
사랑일지, 출발일지. 그 끝에 우리를 반기고 있을 새로운 희망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