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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May 21. 2024

시드니로부터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일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린 여느 때와 같이 휴가를 떠났고,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정했을 뿐이었다. 이른 여름휴가에 아이들이 동행하였고, 오랜만의 여정 탓인지 흔들리는 비행기 속에서 떨리는 것은 손끝뿐이 아니었다. 마침 떠나기 약 이 주 전부터였을까, 그때부터 시작된 작은 애의 고열이 마음을 많이도 망설이게 했다. 갈팡질팡 하던 차, 낫지도 않은 애를 억지로 입원실에서 데리고 나온 나는 예정된 비행 편에 몸을 실었다.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일정이었다.


가는데만 열 시간이 넘는 비행 일정은 몹시도 고되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작은 애의 뜨거운 이마를 어루만지며, 그래도 가야 해, 도대체 그때 난 무슨 마음이었을까. 단순히 이미 지불해 버린, 환불 불가한 여행경비가 아까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날리는 것도 아쉬웠고, 이다음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떠났다. 그저 그런 뻔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떠났다.




떨리는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온 시드니의 하늘은 새파랬다. 파래도 너무 파란 그런 하늘, 청명한 하늘 아래 잠시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이 둘을 챙기느라 어떻게 왔는지도 모를 만큼 혼이 빠졌지만 그 와중에 아이 둘을 억지로 한데 세워놓고 인증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인지하고서야 도착했구나 싶었다.


유모차만 아니었어도 조금 덜 번잡했을 여행짐을 이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식사를 아이 둘을 데리고 먹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렌트한 레지던스의 규모는 꽤 괜찮았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잔뜩 신이 난 첫째가 커다랗게 난 창문으로 달려가더니 함성을 지른다. 멋지다 엄마! 때마침 파도처럼 일렁이던 설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도 미처 나는 몰랐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여행의 일정은 우리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서툰 영어로 여정을 이어나가면서, 뜨거운 햇살 아래 피부가 상할까 열심히 바른 선크림이 지워질 때까지 일정을 이어나갔다. 아이들은 지쳐 유모차에 쓰러질 때까지도 힘든 줄 몰랐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느라 와인 두병을 금세 비우고는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 여행의 마지막날이 밝았다.


오페라하우스를 향해 걷다 보면 보타니컬 가든의 녹음이 펼쳐진다. 나무 위로 열매를 열심히 쪼아 먹는 새들 덕분이었을까, 바닥에는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즐비하다. 길을 걷다 발견한 새들이 신기한지 열심히 쫓아가는 아이들. 그 위로 내리쬐는 햇볕이 반짝거렸다.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한다면 이토록 단순하고 간단할 수가 있을까. 나는 언제나 모든 것에 서툴러했지만, 그 순간 느낀 감정만큼은 확실했던 것 같다. 아이들만을 위해 사는 삶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도 아니었다. 곁의 사람들, 그들과 동행하는 삶. 생각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억수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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