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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Nov 30. 2023

힘쎈여자 강남순 #3/6

03. 풍자와 역설의 블랙코미디

03. 풍자와 역설의 블랙코미디


이쯤에서 앞서 화두로 꺼내놓은 ‘성별’과 관련된 작가의 특이점을 다시 밝히고자 한다.


몽골에서 어린 딸 강남순을 잃어버리고 덜렁 혼자 귀국한 주체는 아버지 강봉고다.

형사 강희식은 사건 해결을 위해 강남순의 힘을 빌리고 점차 의지한다. 강남순이 ‘힘쎈’ 여자가 아니었어도 위험한 사건에 끌어들였을까? 상식적인 생각을 해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길중간의 아들 황금동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음에도 늘 피곤하고 힘이 없으며, 툭하면 쓰러질 만큼 허약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길중간의 남편 황국종은 처자식을 버리고 무책임하게 가정을 비웠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당한 이유 없이 나타나 제자리를 주장하는 남자다. 어른으로서의 역할이나 품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황금주와 강봉고의 아들 강남인은 먹을 것만 밝히는 돼지나 다름없게 표현된다.

길중간의 애인 서준희는 허우대가 멀쩡한 중년 신사이지만, 그 나이에 사랑을 판단하는 원인을 길중간의 힘과 돈에서 찾고, 처음 모습과는 달리 너무 빠르게 순종적으로 변한다.

지현수는 돈 때문에 의리와 사랑을 저버리는 비겁한 남자다.

심지어 악당 류시오는 똑똑한 척은 다 하지만, 누가 봐도 ‘힘쎈’ 강남순을 극 중간까지 체첸으로 알고 중요한 정보를 다 내준다.

브래드송은 돈 많은 사모님들을 등쳐먹는 사기꾼이다.

한마디로 <강남순>에서 등장하는 남자들 중에는 제대로 된 남자가 하나도 없다.


반면에 슈퍼파워를 가진 길중간, 황금주, 강남순을 제외하더라도,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리화자는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도전하고 극복해 가려는 여성이다.

정나영도 황금주의 비서로서, 또한 아나운서로서 훌륭한 인재임을 과시한다.

노선생 역의 경리도 순정과 신뢰를 끝까지 지키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다.

마찬가지로 악당인 김마담과 태리마저도 나름대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이다.


왜 작가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성별에 차이를 뒀을까? 여성이 슈퍼히어로인 작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자를 폄하하고자 했을까? 남성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삼류 코미디를 표방한 걸까?


나는 두 가지로 해석해 보았다. 첫째는 코미디답게 현실에 대한 풍자라고 할 수 있겠다.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불성실한 남성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남성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런 풍자의 바탕을 위해 계속해서 강조되는 ‘집안 내력’은 특수한 세 모녀에 머무르지 않고, 앞서 살펴봤듯이 드라마 극 전체에 걸쳐져 있다. 아마 남성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둘째는 젠더에 대한 역설이다. 현실 사회에서 의례적으로 느끼는 남녀 입장을 완전히 뒤바꿔 봄으로써 여성들에게 일종의 해방감과 통쾌감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우리의 현실 사회는 ‘자유’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고, ‘평등’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전혀 평등하지 않다. 그런 방식이 통하는 건 부와 권력을 거머쥔 몇몇에 해당할 뿐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조작된 수준으로 피폐해진 가짜 ‘존중’에 의해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은 허물어져 버렸다. 이렇게 모순적인 현실에 대한 역설은 성(性)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도 문제는 표현 방식이다. 이건 초등학생이나 상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노골적이다. 너무 뻔뻔하고 노골적인 묘사는 의도와 달리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힘쎈’과 ‘여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인은 ‘힘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은 힘이 세고 약한 것과 관계없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듯 의존적이거나 나약한 존재가 성별 때문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있다. 즉 ‘젠더’, 사회적 성 불평등의 원인을 남성의 특성이나 여성의 특성을 부각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황금주 모녀들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그녀들이 가진 괴력 때문이 아니다. 힘이란 사용자에 따라 달라지는 도구와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네가 술을 마셔야지, 술이 너를 마시게 둬서는 안 된다.” 힘을 통제하느냐 힘에 통제당하느냐는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부는 곧 힘이고, 권력이며, 통제력이다. 그 힘에 휩쓸려 역으로 인간성을 놓아버리느냐 인간으로서 힘을 도구 정도로 활용할 것이냐 하는 것은 사용자의 마음에 달렸다. 결국 드라마에서 성별로 차별된 캐릭터들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페이크(fake)였던 셈이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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