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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Dec 19. 2023

지옥 시즌1 #3/5

03. 미래를 밝힐 새싹과 미래를 불태울 불씨

03. 미래를 밝힐 새싹과 미래를 불태울 불씨


정진수(유아인)는 ‘새진리회’라는 신흥종교단체의 의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대리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스스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고시원에서 지내는, 소소한 서민의 모습이다.


심지어 그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기도 하다. 이렇게 영웅이며 선량한 이웃 같은 그는, 입으로는 새로운 정의를 외치지만 그 이면에는 은밀하게 숨겨진 무서운 비밀과 계획이 있다.

권력에는 관심 없는 듯 행동하지만 그의 말은 이미 큰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 사회에서도 많은 기득권 세력이 ‘국민, 국민!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를 외친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어제까지만 해도 개·돼지 취급하던 유권자들을 향해 큰절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들의 탐욕과 욕심을 감추기 위해 또는 이루고자 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선량한 얼굴로 페르소나(가면)를 갖춘 것에 불과하다.


가면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런 종류의 위선적 가면은 타인과 우리 사회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다준다.


정진수의 위선된 행동도 그 개인적인 방법론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 파장은 정진수가 죽은 이후에도 비슷한 기회주의적 인간들에 의해 거대한 악의 덩어리로 남게 된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세대 간의 동질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재, 미래로 달려갈수록 이런 사회적 문제점의 주인공은 반드시 성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대가 바뀌듯 범죄의 유형도 바뀌고, 그 싹은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경우가 많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작은 불씨가 거대한 화재로 번지듯이, 원인이나 이유 없는 범죄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 치밀하게 벌인 범죄 행위나 어느 날 갑자기 뚱딴지같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도 원인과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지옥>에서 만들어진 세계관에서도 점차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10대들의 모습을 그린다. 사회적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10대’라고 말하면 모든 10대를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니고, 달리 ‘불량청소년’, ‘일베’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아 그냥 ‘10대’라고 했다.


주목한 장면은, 아버지뻘인 사람에게 집단 폭행을 가하고도 자신들의 행동이 나쁜 행동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아니 못하는 게 아니라 인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들은 취조실에서 공권력을 비웃으며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미성년임을 기득권처럼 사용하는 영악함을 보인다. 태도나 사용하는 말투, 단어들이 모두 그들의 머리를 열어보지 않고도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들은 ‘미래’,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언젠가 우리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작은 불씨일 따름이다. 그들의 내면과 개인적 성격, 환경과 가족관계 등을 하나하나 모두 이해하고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자라 어른이 된다면, 언젠가는 정진수와 같은 지능적인 범죄자가 되거나 영화 <비상선언>에서의 ‘류진석(임시완 연기)’과 같은 인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벌어진 범죄와 죄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하고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물리적인 폭행이나 폭력 범죄(살인·강도 등)보다 더 많은 대중 다수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 전체를 크게 뒤흔드는 지능적인 범죄가 늘어날 것이다.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들의 특징은 어느 날 갑자기 악당이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그 인물 자체가 선천적으로 악한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다.


시대와 사회, 국가와 권력,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환경과 시스템 등 모든 사회 내부의 주변 제반 사항이 관계되어 있다. 그 복잡성은 범죄 전문가나 경찰, 법관, 변호사, 검사 등 분야별로 전문화된 사람들조차도 견문을 폭넓게 갖지 않는 이상에는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찾아내기 어렵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 또는 특정한 단어나 의미라도 그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에는 기원이나 어원 또는 근원을 찾아야 하고, 생명체이거나 생명력이 있는 경우에는 거기에서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야 할 경우도 있다.


증거와 근거를 토대로 진실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 게다가 인위적인 조작이나 이념에 따른 왜곡까지 지뢰처럼 널린 바탕은 들어서기조차 힘든 바닥이다.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지만 실제로 이런 노력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의 노력을 도둑질해 사용하거나 실제로는 세부적인 내용을 전혀 모르면서 한두 권 읽은 책자의 내용을 앵무새처럼 떠벌리는 전문가들도 많다.


신뢰할 수 없는 권위가 사회 꼭대기부터 저 하부 바닥까지 흐르고 있고, 그 흐름 안에서 우리들의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미래를 빛낼 거대한 나무로 자랄 새싹보다 세상을 태워 없앨 수도 있는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사회 기득권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정치 세력들은 이런 데 관심이 없다. 끊임없이 우리 사회 전체를 갈라놓고 있지만, 오히려 ‘사회지도층(이 단어 정말 싫음!)’으로 군림하며 자신들의 이익 구조에 맞는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추악한 욕심이 바로 모든 범죄와 미래 범죄자들의 원인과 이유라고 말한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가수 ‘싸이(PSY)’가 부른 <챔피언>의 노랫말처럼 ‘서로 편 가르지 않는 것이 숙제’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현재의 우리 사회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점점 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에서의 경제적 계급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하면서도 큰소리 뻥뻥 치고, 군림을 당연시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보면서 그게 세상 돌아가는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배워간다.


오버나 헛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부모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지위와 거기에 따른 권력 형평성에 따라 학교에서 아이들의 폭력 사건도 다르게 처리된다.


폭력 행위뿐 아니라 온갖 악행과 거짓도 부모들의 능력에 따라 세탁되고 커버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스로 반성이나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거짓된 것들이 진실인 줄 알고 자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일탈이 정말로 무슨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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