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지막 네오 Dec 21. 2023

지옥 시즌1 #5/5

05. 죄인, 처벌자, 방관자 그리고 구경꾼들

05. 죄인, 처벌자, 방관자 그리고 구경꾼들


‘공개 시연’이라는 것은 괴물(저승사자)들이 나타나 고지받은 죄인을 처벌하는 장면을 방송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새진리회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고, 사람들의 공포심을 유발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써 계획한 것이었다.


‘박정자’라는 인물의 ‘공개 시연’ 장면이 방송된다. 새진리회의 정진수는 ‘고지’를 받고 공포에 떨고 있던 박정자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시연 장면을 만천하에 보여주자고 설득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과 방송사의 관심은 물론, 언론의 취재 경쟁까지 치열하게 벌어진다.


개인적으로 시즌1에서 이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까만 헐크들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처럼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고, 더욱 놀라운 건 이런 비이성적인 행위와 사회적 현상이 왠지 모르게 이해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아! 그러고도 남지’라고 생각하는 게 씁쓸했다.


한 사람이 잔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방송하고, 그 모습을 취재하고, 구경하는 모습이… (사실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다. 늬들이 인간이가? 하긴 현실 세계는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 아이들 300명이 바닷속으로 빠져들어 갈 때도 모두가 구하지는 않고 TV로 구경만 했다. 방송사마다 목소리 높여 시청률 올리기에 바빴고, 국가는 없었으며, 공무원들은 보고가 우선이었고, 해경은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고스란히 바다로 가라앉았다. 2014년 4월 16일에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대참사다.)


여기에서도 <오징어게임>에서처럼 일명 V.I.P들의 모습도 보인다. 시연장 안에서는 처참한 살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VIP들에게는 가장 앞자리로 구매해서 보고 싶은 ‘쇼’ 일뿐이다. 그들은 무대와 가까운 곳에 따로 마련된 상석에 앉아 가면까지 뒤집어쓰고 ‘시연’을 즐긴다. (우리 사회에는 생각보다 이런 놈들이 많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결국 부와 권력에 의해서다. 즉 서양에서도 오래전에 ‘자유와 평등’을 앞세워 타파한 봉건주의적 계급체계는 사실 여전히 건재하다.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일 때도 VIP석이 있었고, 그곳을 차지하고 앉은 왕 또는 최고 지도자는 검투사들의 생사까지 결정했다. 당시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죽고 죽이는 싸움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쇼의 역사다.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은 이제 그 참혹한 흔적을 담은 채 관광객의 볼거리로 남았다.


세상은 ‘박정자’의 시연을 통해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완전히 나뉘게 된다.


이제 평등은 없어졌다. 사회는 죄인과 처벌자, 그리고 방관자로 나뉘게 된다. 사람들은 고지를 받아 지옥에 간다는 공포보다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고지받은 자신 때문에 지인이나 가족들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거나 사회적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게 더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고지받은 것을 숨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개 시연 이후에는 이런 ‘고지’와 괴물들에 의한 살인이 왜 시작되었는지 묻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한 사람의 잘못된 사이코패스적 계획이 사회 전체를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옥>에서의 정진수(유아인)는 그런 이유로 이제껏 본 악당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악당이다. 정의로운 척, 선한 척하는 겉모습과 달리 그의 무서운 계획은 홀로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세상으로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모두의 삶 자체를 바꿔 놓았음에도 그런 짓을 벌인 이유가 경이롭다. (이유가 궁금해유? 그럼 직접 보세유~)




4화부터 6화는 배우 박정민이 주인공이다.

박정민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다. 개성 넘치고 성실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캐릭터에 혼신을 불어넣어 연기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기괴한 사회로 변화한 지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방송사 PD로 일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배영재(박정민)가 이 기괴한 사건에 연루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배영재와 그의 아내 송소현(원진아)은 이제껏 없던 새로운 공포와 맞닥뜨리고 혼란에 빠진다.


아마 시즌2가 나온다면 시즌1에서 이제 막 태어난 배영재 부부의 아이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너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여기서 그만…


다만 예상과 상상을 덧붙이자면, 이 흐름은 예전에 방영했던 미국 드라마 <V>를 떠올리게 했다.

미국 워너브라더스사에서 1983년부터 제작했고, 국내에서는 1985년 KBS1에서 방송했다. 당시 방송되었던 공중파 미디어로는 충격적이었던 장면이 많았는데, 특히 파충류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혼종 출현은 획기적이었다.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이야기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한다. 2011년 리메이크되어 10부작으로 다시 나왔지만, 명작은 함부로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 일깨우고 말았다.


새진리회를 창시한 정진수가 사라지며 제2대 교주로 지목한 양심 없는 목사가 새진리회를 장악하고, 새진리회는 막대한 권력을 행사한다.


마치 조폭 단체처럼, 교주(두목) 외에 몇몇 위원(중간 두목들)들이 있고 행동대장이 있고, 거기에 화살촉(신의 뜻이라며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과도 이어져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며 마치 자신들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권력을 휘두른다. 신의 권능적 수준에 비교할만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치면 조폭보다는 ‘검찰’과 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지옥>의 맨 마지막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트리오로만 움직이는 괴물(까만 헐크+킹콩)들이 죄인으로 지목된 자를 처벌하려는 장면인데, 처음으로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자식을 사랑하고 지켜내려는 부모의 힘.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이보다 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들을 희생함으로써 잘못된 믿음으로 엉망이 된 세상을 다시 한번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앞서 언급한 <V>의 경우에는 1980년대 드라마답게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아직 아무런 설명이 없던 사건 원인과 관련된 존재적 특성들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즌2가 무척이나 기대되는 이유다. 시즌1에서 정진수 역을 연기했던 유아인의 얼굴을 시즌2에서는 아무래도 보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아무쪼록 훌륭한 작품으로 시즌2가 나오길 바라본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 시즌1 #4/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