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머무름을 만든다

『머무는 힘! 생활인구와 로컬관광 전략』 여덟번째 이야기

by 멘토K


여행은 어쩌면 ‘멈춤’을 찾아 떠나는 길일지 모른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람들을 길 위로 이끈다.


하지만 많은 여행지에서는 여전히 쉼을 주기보다 더 많은 활동과 소비를 요구한다.

일정표는 빽빽하고, 명소마다 인증샷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피로를 더한다.

그래서 이제는 ‘쉼’을 제대로 설계한 지역만이 사람들을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사례 중 하나는 스페인의 한 작은 마을 이야기다. 그곳에는 특별한 관광지나 유명한 박물관은 없었다.

대신 마을 광장에 느리게 흐르는 분수와 오래된 나무 아래 놓인 긴 벤치가 있었다.

여행객들은 그 벤치에 앉아 주민들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 마을의 경쟁력은 ‘쉼’ 그 자체였다.


‘쉼’이 머무름을 만드는

첫 번째 이유는 여행객의 리듬을 되찾아주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는 시간에 쫓기듯 움직이지만, 여행에서조차 바쁘게 소비하면 결국 지쳐버린다.

반면 지역이 제공하는 쉼터, 예를 들어 강가의 평상, 숲 속의 벤치, 골목의 작은 찻집은 사람들에게 숨을 고를 틈을 준다. 이 짧은 정지가 여행의 질을 바꾸고,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키운다.


두 번째 이유는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쉼터는 대개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는 공간이다.

일본의 한 마을에서는 오래된 공터를 작은 정원과 벤치로 꾸몄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을 주민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여행객은 길 안내를 받고, 때로는 마을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짧은 대화가 여행의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이유는 소비와 연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쉼의 공간이 주는 편안함은 여행객을 자연스럽게 머무르게 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 가게와 연결된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은 시내 중심에 무료로 앉을 수 있는 테라스를 만들고, 그 주변에 소규모 카페와 상점을 배치했다.

여행객들은 테라스에서 쉬다가 자연스럽게 커피를 주문하고, 기념품을 구매했다.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지역 경제를 살리는 매개가 되었다.


흥미로운 사례는 뉴질랜드의 한 농촌 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마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참가자는 일정 시간 동안 목초지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바람과 새소리를 듣기만 한다.

그러나 그 체험을 마친 사람들은 “마을이 나를 품어줬다”는 후기를 남겼고, 그 경험 덕분에 다시 마을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강력한 콘텐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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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로컬에서 ‘쉼’을 기획할 때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일까.


첫째, 공간의 자연스러움이다.

억지로 꾸며낸 휴식 공간은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오히려 지역이 가진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공간, 오래된 나무 그늘이나 오래 쓰던 평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둘째, 접근의 용이성이다.

쉼은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용료를 받거나 예약을 요구하면 ‘쉼’의 본질이 사라진다.


셋째, 이야기와 연결이다.

쉼의 공간에 작은 안내문이나 사진이 붙어 있으면, 여행객은 앉아 쉬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의 역사를 접하게 된다.


또 하나의 사례는 캐나다 퀘벡의 작은 시골길이다.

그곳에는 길가마다 나무로 만든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는 ‘이 자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100년 전에도 같았습니다’라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여행객들은 그 문구를 읽으며 잠시 앉아 풍경을 바라봤다.

단순한 벤치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체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결국 쉼은 단순히 피로를 풀어주는 기능을 넘어, 지역의 시간을 느끼게 하고, 관계를 만들며, 경제적 파급력까지 만든다.


관광객을 오래 붙잡는 비밀은 더 많은 체험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일 수 있다.


여행객이 “이곳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 지역은 이미 머무르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은 생활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하루를 머무르던 사람이 이틀을 머물고, 이틀 머물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유.

그 시작은 마을 한켠의 작은 쉼과, 그 쉼을 설계하는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 멘토K -



<위 사례 등 참고자료>

1. 게엘, J. (2011). 건물 사이의 삶: 공공 공간 활용하기 (원저: Gehl, J. Life between buildings: Using public space). 워싱턴 D.C.: Island Press.

2. 일본 국토교통성. (2018). 마치나카 활력 프로젝트(まちなか活力プロジェクト). 도쿄: 일본 국토교통성.

3. 이탈리아 관광청(ENIT). (2020). 슬로우 투어리즘 인 토스카나: 지역유산과 커뮤니티 공간 활성화. 로마: ENIT.

4. 뉴질랜드 관광청. (2021). 뉴질랜드 농촌 웰니스 & 슬로우 트래블 리트릿 사례. 웰링턴: Tourism New Zealand.
5. 퀘벡 관광청. (2019). 퀘벡 시골 Heritage Bench 커뮤니티 프로젝트. 퀘벡: Quebec Tourism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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