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켠의 열 여덟번째 시
사무실 불빛은 해가 저물어도 꺼지지 않는다.
빛은 여전히 환하지만, 그 아래 앉아 있는 나는 그림자처럼 옅어져 간다.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도, 내 손길을 기다리던 눈빛도
하루의 서류더미에 파묻혀 자취를 감춘다.
오늘의 나는 보고서 속 숫자로,
회의록 속 짧은 메모로만 남았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레 감추며,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존재가 되어 간다.
점심시간 창가에 비쳤던 햇살이
잠시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으나,
곧바로 쏟아진 업무의 파도는
그 작은 여백마저 삼켜버렸다.
사라진 것은 오늘 하루의 나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조금씩 지워져 온 것일지도 모른다.
동료의 농담 사이에서 빠져나온 웃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의 가벼움,
모두 어제의 기억으로 흩날린다.
책상 위에 던져진 공지 메일 한 줄이
오늘의 나를 지워버리고,
누군가의 무심한 시선 하나가
내 마음을 더 희미하게 만든다.
그러나 창문 너머 멀리서 들려온
아이들의 웃음소리,
편의점 앞을 스쳐가는 바람 한 줄기,
그 순간만큼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조용한 증거였다.
오늘의 나는, 비록 사라져가는 듯 보였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또는 내 안의 작은 불씨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언젠가 오늘을 돌아볼 때,
나는 묻고 싶다.
나를 사라지게 만든 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끝내 사라지지 못하게 붙잡아 준 건 무엇이었는지
그 대답 속에서
비로소 내일의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 한켠의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