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시니어의 시간이 다시 온다_에이니어 열번째 글
세상이 너무 빨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AI가 등장한 이후로는 그 속도가 더 가파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속도의 시대에 진짜 중요한 건 ‘기술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아니다.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해왔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문해력이다.
숫자와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읽는 능력.
AI가 정리해주는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걸러야 할지’ 판단하는 힘이다.
이 힘을 나는 ‘해석하는 힘’이라고 부른다.
AI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분석도 해주고, 자료도 찾아주고, 정리도 해준다.
그런데 이게 위험할 때가 있다. 너무 잘 만들어주니까, 우리는 자칫 그것을 ‘정답’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AI가 가진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조각들이다. 그 조각은 사람의 선택과 해석을 거쳐야 비로소 현재의 의미가 된다. 이 해석의 과정에서 시니어가 가진 경험은 분명한 우위를 가진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이야기의 맥락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지자체나 기업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장면을 많이 봤다. 데이터 분석팀이 보고서를 가져오면 숫자는 화려하다. 그래프는 정확하고, 슬라이드는 매끄럽다.
그런데 그 자료를 현장 경험이 있는 시니어와 함께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숫자 속에 빠진 부분, 고객 행동의 뉘앙스, 시장의 온도 차이 같은 요소들이 다시 살아난다.
AI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차이가 실제 성패를 가를 때가 많다.
해석하는 힘은 기술이 주는 결과물을 다시 인간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AI가 “이 시장은 기회가 있다”고 말했을 때, 시니어는 그 문장을 곧바로 믿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이 데이터에는 누락된 변수가 있는가?”, “사람들의 감정은 어떤가?”, “현장에서 부딪혔던 문제와 충돌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이 해석하는 힘에서 나온다.
질문이 생기면 판단이 생기고, 판단이 쌓이면 통찰이 된다.
시니어 창업이나 창직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도 결국 ‘문해력’ 때문이다. 기술을 익히는 게 어렵다기보다, 기술이 던지는 결과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들이 실제로 써보면 금방 느낀다. 기술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그 결과물 속에서 내 경험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다. 그래서 나는 시니어들에게 자주 말한다. AI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나를 다시 읽는 연습을 하라고. AI는 텍스트를 쏟아내지만, 내 안의 경험은 그 텍스트에 방향을 준다.
AI시대의 문해력은 빠르게 읽는 능력이 아니라, 천천히 곱씹는 능력이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쉽게 오해한다. 숫자가 사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는 언제나 맥락이 필요하다. 맥락을 만드는 건 시간이 아니라 경험이다.
예전에 일했던 방식, 실패에서 느꼈던 감정, 사람들 사이에서 배운 흐름 같은 것들이 해석의 기준을 만들어준다.
나는 강의하면서 시니어들의 변화를 자주 본다.
처음에는 AI가 낯설어서 멀리 느끼지만, 어느 순간부터 태도가 달라진다.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기술을 통해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 눈을 뜨는 것이다.
AI가 정리해준 글을 보며 “이건 내가 말한 게 아니네”, “이건 실제 현장에서는 이렇게 안 돼”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바로 그 순간이 해석하는 힘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읽는 힘이 생기는 순간.
AI가 떨구는 텍스트는 그 사람의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이나 의도도 이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해석은 더 중요해진다.
시니어의 경험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 된다.
AI가 던져주는 결과물 위에 자신의 생각을 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창직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일의 기회가 열린다.
해석하는 힘이 강한 사람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AI가 빠른 답을 보여줘도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중요한 게 무엇인가”, “이 흐름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쌓인 해석은 어느새 나만의 전략이 된다. 기술의 시대에 더 단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의 변화는 빠르지만, 그 변화 속에서 길을 찾는 능력은 ‘해석의 깊이’에서 나온다.
AI 시대에 시니어의 시간이 다시 흐르는 이유도 그 깊이 때문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기술 위를 떠다니지 않는다. 기술 아래 깔린 원리를 읽고, 그 원리 위에 자신만의 해석을 올린다.
나는 오늘도 여러 시니어를 만나면서 확신한다.
기술은 배우면 되지만, 해석은 그 사람의 삶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삶의 시간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AI 시대에 새로운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정보가 넘칠수록 해석이 힘이 되고, 경험이 가치가 된다.
그 힘을 가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 멘토 K -